"적의 적은 곧 친구라 하지 않았소? 좌 장문께서는 악불군 손에 두 눈을 잃으셨고, 임 소협이 두 눈을 잃은 것도 따지고 보면 악불군 탓이오. 소협이 벽사검법을 익힌 것을 악불군이 안 이상, 세상 끝까지 달아나더라도 반드시 쫓아와 죽일 것이오. 이제 오악파의 장문인이 되어 하늘을 찌르는 권세를 얻었는데 소협 혼자서 무슨 힘으로 그에게 항거하겠소? 하물며… 하물며 악불군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 아침저녁으로 소협 곁에 딱 붙어 감시하는데, 소협에게 날개가 돋아난들 베갯머리에서 일어나는 암습을 막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오." 그때 악영산이 높이 외쳤다. "둘째 사형, 사형이군요!" - P26
"아버지가 정말... 정말 당신을 죽이려 했다면 그 뒤에도.… 기회는 많았어요. 그런데 왜 가만히 놔두셨겠어요?" 임평지는 차갑게 대꾸했다. "그 후로 나는 살얼음판을 걷듯 신중하게 움직여 그자에게 손쓸 기회를 주지 않았소. 모두 당신 덕분이지. 내가 종일 당신과 함께 있었으니 죽이고 싶어도 쉽지 않았을 거요." - P29
노덕낙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좌 장문은 바로 이 몸의 은사시오. 나는 그분의 셋째 제자요." "이제 숭산파로사문을 바꾼 모양이구려." "사문을 바꾼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숭산파 사람이었소. 단지 은사의 명으로 화산파 제자인 척했을 뿐이오. 은사께서는 악불군의 무공을 가능하고 화산파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나를 보내신 것이오." - P30
"이제 혼자가 되어… 세상에 의지할 곳도 없으니 모두 그를… 그를 괴롭힐 거예요 대사형..… 내가 죽으면 대사형이 그를… 그를 보살펴줘요. 남들에게 괴롭힘 당하지 않도록…." 영호충은 멈칫했다. 임평지의 검에 찔려 숨이 끊어져가는 순간까지도 그를 향한 정을 잊지 못하다니! 당장 임평지를 붙잡아 천 갈래 만 갈래 찢어 죽이고 싶을 만큼 이가 갈리는데, 목숨을 살려주는 것도 과분한 무정한 악당을 괴롭힘 당하지 않도록 돌봐달라니 될 법이나 한 소리인가? - P38
갈 장로가 기뻐하며 말했다. "두 형제, 악씨 계집애를 붙잡았나? 큰 공을 세웠군!" 골짜기를 쩌렁쩌렁 울리는 우렁찬 목소리가 대답했다. "악씨는 악씨인데 계집애가 아니라 부인이오" "응?" 갈 장로는 어리둥절해하더니 놀란 소리로 외쳤다. "설--- 설마 - 악불군의 마누라를 붙잡았나?" 영호충의 놀라움은 그보다 훨씬 컸다. - P51
영호충이 어렸을 때부터 키운 악불군이었으나 그 성품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했다. 비록 동귀어진 수법으로 반격을 했지만, 영호충은 정말로 사부의 배에 검을 찌를 만큼 배덕한 성격이 못 되었다. 필시 사부의 몸에 닿기 직전에 검을 멈췄을 것이다. - P67
영호충은 남편을 꺾고도 차마 찌르지 못해 물러났지만, 남편은 도리어 그가 방심한 틈을 타 독수를 썼다. 방문좌도들도 마다하는 비열한 행동을 당당한 오악파 장문인이 서슴없이 저지르는 것을 보자 너무도 수치스러워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굳세고 의지가 곧은 악부인이었지만 남편의 이런 모습을 보는 순간 기운이 쭉 빠지고 모든 희망이 달아나는 것 같았다. - P75
"충아, 앞으로 사람을 만날 때는 그저 좋게만 생각지는 말거라!" "예!" 그렇게 대답한 영호충은 목 뒤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악 부인의 안색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사・・・ 사모님!" 놀란 그가 목청이 터질 듯이 악 부인을 부르며 부축해보니, 뜻밖에도 날카로운 비수가 가슴 한쪽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악 부인은 비수가 심장을 관통해 절명한 것이었다. 영호충은 넋이 나가 입을 떡 벌렸지만, 비명도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 P77
"좋아요, 오늘 한 번은 살려주겠어요. 포장로, 막 장로, 우리가 악불군을 붙잡았다가 풀어준 이야기를 강호에 널리 퍼뜨리시오. 그리고 악불군이 벽사검법을 익히기 위해 스스로 몸을 망가뜨려 남자도 여자도 아닌 괴물이 되었다는 사실도 천하영웅들에게 낱낱이 알리시오." - P81
"오냐, 이번만은 한발 양보할 테니 두 여자를 모두 맞아들이도록 해다. 태감이 되면 아무하고도 혼인할 수 없으니 화상이 되는 것이 낫겠지. 하지만 혼례를 올린 뒤에 내 귀여운 딸을 박대하면 절대 안 된다! 첫째 부인, 둘째 부인도 나누지 말고 평등하게 하되, 네 나이가 더 많으니 의림더러 언니라고 부르라고 하마."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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