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 공자, 성고께서는 우리더러 공자를 죽이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하지만 공자의 무공이 너무도 높아 털끝 하나 건드릴 수가 없군요. 제 일격은 빗나갔지만 공자께서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주셨으니 감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친구들, 모두 똑똑히 보았지? 우리는 영호공자를 죽이지 않은 것이 아니야. 죽이려고 했지만 힘이 달려 죽일 수가 없는 것뿐이라고! 이 노두자가 못하는 일이니 자네들은 더더욱 어렵지, 안 그런가?" - P24
"12월 15일에 다 함께 소림사로 가서 성고를 구해낼 생각입니다. 그동안 맹주 자리를 놓고 우리 편끼리 싸움이 끊이지 않아서 골칫거리였는데, 영호 공자께서 나타나셨으니 말끔하게 해결되었습니다. 공자께서 맹주를 맡아주시지 않으면 누가 감히 그 자리에 앉겠습니까? 설사 다른 사람이 맹주가 된다 해도 성고께서 아시면 별반 기뻐하시지 않을 테지요." - P25
노인은 두어 걸음 물러나 검을 거두더니 이상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놀라움과 부끄러움이 뒤섞이고 안타까움도 옅게 묻어 있는 표정이었다. 한참 후에야 비로소 그가 입을 열었다. "영호 공자는 고명한 검법뿐 아니라 놀라운 담력과 식견도 갖췄구먼, 참으로 탄복을 금할 수 없네!" - P55
"기다리시게! 이 늙은이가 화산파와 왕래가 뜸하기는 하네만, 악 선생은 필시 내 체면을 보아줄 것일세. 이 늙은이와 소림 방장이 공자를 화산으로 돌려보내주겠다 약속한다면 믿을 수 있으시겠나?" 그 말에 영호충은 크게 마음이 흔들렸다. - P60
정한 사태의 눈동자에 기쁨이 출렁였다. "우리… 우리 항산파… 항산파를… 맡아, 맡아….." 겨우 한마디 하는데도 숨을 헐떡여 말을 끝맺지 못했지만, 그 의미를 알아들은 영호충은 화들짝 놀랐다. "저는 남자인지라 항산파를 맡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안심하십시오. 앞으로 항산파에 어려움이 닥치면 온 힘을 다해 돕겠습니다. 항산파의 일이 곧 제 일입니다!" 정한 사태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닐세. 나는… 나는 영호충에게 항산파… 항산파 장문…자리를 넘기는 것이네…. 소협이… 받아주지 않으면… 나는 죽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일세." - P69
"얘야, 내려오너라!" 서쪽 끝에 있는 편액 뒤에서 누군가 살며시 내려섰다. 곱고 나긋나긋한 그 모습은 바로 헤어진 지 오래된 영영이었다. 그녀를 보는 순간 영호충은 머리가 핑 돌며 현기증이 일었다. 거칠고 허름한 옷을 걸치고 안색마저 초췌해진 그녀를 보자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 P113
"하지만 내가 인정하는 사람들 중 으뜸은 방장이 아니오. 당금 무림에서 내가 으뜸으로 여기는 사람은 바로 내게서 일월신교의 교주 자리를 빼앗은 동방불패요." . . . 임아행이 말을 이었다. "노부는 무공이 고강하고 머리 회전이 빨라 세상에 적수가 없다 여겼소. 그런데 동방불패의 속임수에 넘어가 호수 바닥에 갇혀 하마터면 영영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소. 그렇게 무시무시한 인물을 인정하지 않을 수야 없지 않겠소?" - P129
악불군이 큰 소리로 나섰다. "임 선생은 간교한 계략으로 승리를 얻었으니 결코 정정당당한 승리가 아니오. 정인군자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행동이오." 상문천은 껄껄 웃었다. "우리 일월신교에도 정인군자가 있소? 임 교주께서 정인군자라면 진즉 그 더러운 물에서 당신과 어울리셨을 거요. 그랬다면 무엇 하러 이런 시합을 하겠소?" 악불군은 말문이 막혔다. - P148
영호충이 몸을 일으키자 임아행이 검을 건네주었다. 영호충은 검을 받아 검끝을 아래로 향하고 말석에 섰다. 충허 도인은 넋을 잃은 듯 이대전 밖에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며 지난번 무당산에서 본 영호충의 검법을 떠올렸다. 그가 좌선을 하는 듯 꼼짝도 하지 않자 사람들은 저마다 의아해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한참 후, 이윽고 충허 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시합은 할 필요도 없소이다. 네 분은 이만 산을 내려가시오." - P165
‘나를 다시 화산파 문하에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소사매와 짝지어 주겠다는 거야! 그런 뜻으로 충영검법을 펼치셨는데 내가 어리석어서 깨닫지 못하자 농옥취소와 소사승룡까지 펼치셨구나.’ - P179
악 부인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식었다. "그렇다면 사형은 산이를 미끼로 그 아이를 유혹하셨군요. 그 아이가 산이 생각에 비무에서 져주리라 생각하고 말이지요." 귀가 눈에 뒤덮여 있는데도 영호충은 사모의 말 속에 담긴 분노와 야유를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사모의 입에서 이런 말투가 나온 적은 여태껏 단 한 번도 없었다. - P207
"무당파 충허 도장께서 축하하러 오셨습니다." 깜짝 놀란 영호충이 황급히 마중을 나가보니, 과연 충허 도인이 제자 여덟 명을 데리고 올라오고 있었다. 영호충은 허리를 숙여 예를 갖췄다. "도장께서 왕림해주시다니, 뭐라고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충허 도인이 웃으며 말했다. "자네가 항산파 장문인이 된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을 이루 말할 수없었네. - P274
"두 분께서 친히 와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방생 대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영호 소협이 소림사에 세 번이나 방문하였으니 우리도 항산을 방문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겠소?" 영호충은 소림파 승려들과 무당파 도사들을 암자로 안내했다. - P274
"영영, 와주었군." 영영도 생긋 웃었다. "경사스러운 날인데 당연히 와야지요." 주위를 둘러본 그녀는 사뿐사뿐 걸어가 방증 대사와 충허 도인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방장 대사님, 장문 도장님, 영영이 인사 올립니다." 방증 대사와 충허 도인은 반례를 하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아무리 좋아하는 사이라도 오늘은 오지 말았어야 했건만… 덕분에 영호충이 더욱 어렵게 되었구나.‘ - P282
"소문에는 그 당시 화산파의 사형제 두 명이 천주 소림사에 손님으로 와 있었는데, 어떤 기연을 얻었는지 그 《규화보전》을 보게 되었다 하오." 영호충은 깜짝 놀랐다. ‘그렇게 중요한 비급이니 천주 소림사에서 쉽게 보여주지는 않았겠지. 그렇다면 화산파 선배들이 훔쳐본 것이 분명하구나. 방증 대사께서는 내 입장을 고려해 훔쳐보았다는 말을 입에 담지 않으신 거야.‘ 방증 대사는 그의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두 사람이 번갈아 보기에는 시간이 촉박하였기에 두 분은 비급을 나누어 읽은 뒤 화산으로 돌아가 함께 연구를 시작했소. 한데 뜻밖에도 마치 완전히 다른 비급을 읽은 것처럼 그 내용이 판이하게 다르고 흐름도 전혀 이어지지 않았소. 두 분은 서로 상대방이 잘못 이해했다고 굳게 믿었지만, 비급의 반만으로는 무공을 익힐 수가 없었소. 이 일로 말미암아 친형제나 다름없었던 사형제는 원수지간이 되었다 하오. 화산파가 기종과 검종으로 나뉜 것도 이때부터였소." - P306
그가 ‘악 선생이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어부지리를 얻었다‘며 사부를 모욕하자 잔뜩 화가 난 영호충이지만, ‘심모원려‘라는 단어가 나오자 별안간 사부가 둘째 사제인 노덕낙을 변장시켜 소사매와 함께 복주성 외곽에 술집을 차리게 했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사부가 무엇 때문에 그런 명을 내렸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복위표국을 노린 것이 분명했다.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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