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마침 원진이 곤륜파 고수 두 명과 싸워가며 쫓기듯이 급속도로 산봉우리 위에 올라왔다. 그는 하태충 부부가 상처를 입고 땅바닥에 쓰러진 채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고 당장 한칼에 한 사람씩 찔러 죽였다. 곤륜파 장문 철금선생 하태충과 남편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태상장문(太上掌門)’ 여왕으로 군림하던 그 아내 반숙한은 원진의 칼날 아래 이렇듯 속절없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 P23
그들은 장무기가 방금 그 삼초 구식의 공세를 푸는 데 평생토록 쌓아두었던 혼신의 기력을 모조리 쏟아부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또 지금 소나무 가장귀에 의지해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 흔들리는진동에 힘입어 남모르게 단전에 뒤죽박죽 헝클어진 체내의 진기를 고르느라 무진 애를 쓰고 있다는 사실도 알 턱이 없다. - P35
장무기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자기가 조민을 받아들이기로 허락한 이상, 지난날 그녀가 저지른 모든 잘못은 장무기 자신이 도맡아야 했다. 순간, 아버지 장취산이 사랑하는 아내의 옛날 업보 때문에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심정을 뼛속 깊이 이해할 수가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양교주와 양부 사손의 원한 역시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도겁선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내가 떠메지 않는다면 누가 감당한단 말인가? - P39
"큰아버님, 제가 왔습니다! 양아들 무기가 이제야 구해드리러 왔습니다. 큰아버님, 나오실 수 있습니까?" 땅속에서 사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못 나간다. 얘야, 어서 이곳을 떠나거라!" - P56
도액선사가 담담한 기색으로 대꾸했다. "장교주는 너무 겸사하실 필요 없소이다. 귀교에 장교주와 백중지세로 맞먹는 무공을 지닌 분이 더 계시다면, 두 분이 손을 맞잡고 나서기만 해도 우리 세 늙은 대머리들을 너끈히 죽일 수 있을 것이외다. 하지만 노납의 짐작이 틀림없다면, 현재 이 세상에 장교주와 같은 불세출의 고수는 다시 없으리라 보오. 그러니 몇 분쯤 더 가서해서 한꺼번에 덤비는 게 좋을 듯싶소." - P86
"양좌사, 은형, 그리고 무기야. 나 사손의 두 손은 온통 더러운 피로 물들어 있다. 진작 죽었어도 여한이 없을 몸이다. 오늘 그대들이 날 구하러 왔다 하나, 소림사 세 분 고승들과 싸우다가 만일 쌍방 간에 사상자가 더 생긴다면 이 사손의 죄만 가중될 뿐이다. 무기야, 어서 빨리 본교 형제들을 거느리고 소림사에서 물러가거라. 그렇지 않으면 내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자리에서 경맥을 끊고 자결하고 말 것이다." - P105
주원장도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교주님, 우리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조정 관부에 반역을 저지르는 큰일입니다. 교주께서 저 군주마마를 철석같이 믿고 계시지만, 수천수만 명의 우리 형제들은 믿지 못합니다. 설마 저 군주마마께서 우리 일이 막바지 고비에 직면했을 때도 과연대의멸친하는 각오로 자기 부모 형제들의 목에 칼날을 얹을 수 있겠습니까?"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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