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무기가 등장한 주부터 주기약의 관심은 줄곧 그에게 쏠려 있었다. 그녀는 아미 문하에서 멸걸사테의 환심을 적지 않게 얻은 덕분으로 스승에게 직겁 역학(易學) 원리의 진수를 건해 받고 있던 터였다. 장무기에게 관심을 쏟고 있는 만큼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짐짓 낭랑한 목소리로 스승과의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 P122

꺽다리 영감이 장무기를 향해 버럭 고함을 질렀으나 땅딸보 영감은 다시 싸워봤자 추태만 부릴 게 빤한 터라 일찌감치 패배를 인정했다.
"귀하의 신공은 과연 세상을 덮을 만하오. 이 늙은 것이 평생 처음 보았소. 우리 화산파가 졌소이다."
상대방이 정중하게 포권의 예의를 갖추니, 장무기도 얼른 두 손을 맞잡아 답례했다.
"죄송합니다! 이 후배가 운이 좋았지요. 방금 네 분께서 손속에 사정을 두셨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던들 이 후배는 정반양의도검 아래 목숨을 잃었을 겁니다." - P135

하태충 부부는 속으로 걱정이 태산 같았다. 선우통이 비록 간악한 인물이라고는 해도 역시 명색이 화산파의 장문인이 아닌가? 자기네 부부가 실수를 저질렀다고는 하나, 일개 문파의 대표 격인 사람을 죽였으니 그것만으로도 강호 무림계에 보기 드문 대혼란을 일으킨 셈이다. - P141

장무기는 그녀가 자신에게 칼부림을 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칼끝을 피하거나 가로막겠다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의천검의 예리한 칼끝이 가슴에 와 닿자, 그제야 대경실색을 하고 피하려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 P161

송원교가 사문의 아우들과 다른 제자들을 향해 자신의 뜻을 전했다.
"오늘 거사에서 우리 무당파는 이미 최선을 다했다고 보네. 생각하건대 마교의 운수가 다하지 않아 하늘이 저런 해괴한 젊은이를 태어나게 하셨는지도 모르겠네. 만약 이대로 싸움을 계속한다면, 우리 명문정파가 마교와 또 다를 것이 뭐 있겠는가?" - P176

은리정이 살기를 띠는 순간, 장무기는 또 한차례 선지피를 토해내더니 두 눈을 스르르 내리감고 앉은 채로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출혈이 너무 심했던가, 핏기 잃은 얼굴빛이 허옇게 질린 채 점차 혼수상태에 빠져들면서도 격탕하는 심정을 이기지 못하고 흐리멍덩한 의식 속에 잠꼬대하듯 한마디 중얼거렸다.
"작은 아저씨……… 날 죽여줘요!"" - P177

"네가…… 네가 무기란 말이냐?"
이제 장무기의 전신에 기력이라고는 반 톨도 남아 있지 않았다.
머지않아 죽어가리라는 사실을 아는 만큼 더는 감출 필요도 없었다.
"작은 아저씨…… 난… 난 정말 아저씨가 보고 싶었어요.... 시시때때로…… 그리웠어요!"
은리정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손에 들고 있던 장검을 소리나게 던져버리고 몸을 굽혀 장무기를 안아들었다.
"네가 무기로구나! 네가 무기였어…… 아하하………! 네가 내 다섯째 형님의 아들 장무기였다니……!" - P178

이제 육대 문파 모든 사람들은 광명정에서 떠나갔다.
저들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자 결국 명교와 천응교 신도들만 남게 되었다. 광명좌사자 양소와 백미응왕 은천정이 서로 마주보고 눈짓을 교환하더니 가지런히 목청을 드높여 큰 소리로 외쳤다.
"저희의 교를 보호해주시고 신도들의 목숨을 구해주신 장대협의 크신 은혜에, 명교와 천응교 전체 신도들은 삼가 머리 조아려 사례하오!" - P189

"내가 소개해드리지! 이분으로 말씀드리자면 천하에 간 덩어리 크기로 짝이 없는 기남아요 명교 좌우 광명사자, 사대 호교법왕, 오산인, 오행기, 그리고 또 천지풍뢰 사문을 통솔하시는 장교주님으로서, 아미파를 광명정 산 밑으로 쫓아내시고 멸절사태의 수중에서 의천보검을 거뜬히 탈취하신 분이지. 이런 인물이라면 사태의 법호쯤 물어보신다고 해서 자격이 없다거나 실례가 되지는 않으렷다?" - P239

먼저 소림을 토벌하고, 다음은 무당 차례, 先誅少林, 再減武當,
오로지 우리 명교, 무림의 왕자라 일컫도다! 惟我明敎, 武林稱王!

은천정, 철관도인, 설부득을 비롯한 사람들의 입에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제히 외마디 소리가 터져나왔다.
"이화강동(移過江東)의 계략이다!"
나한불상의 휘황찬란한 금박에 깊숙이 새겨진 열여섯 글자. 그것은 마치 사나운 악룡이 어금니를 드러내고 발톱 춤을 추듯 공포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누군가 소림파를 궤멸시킨 다음, 그 책임을 명교 측에 뒤집어씌우려고 꾸며놓은 계략이 분명했다. - P330

장무기는 속에서 울화통이 불끈 치밀었다. 저런 불여우 같은 것, 명교 교주의 신분을 사칭하는 건 그렇다 치고, 아예 내 이름 석 자까지 팔아 태사부님을 속이려 들다니! 세상에 저런 발칙한 계집이 어디 또 있단 말인가?
한편에서, 장삼봉은 ‘장무기‘ 란 이름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어떻게 해서 이 젊고 곱상한 처녀가 마교 교주가 되었단 말인가? 더구나 무기 녀석과 이름자까지 똑같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구나. - P368

설부득이 그녀의 성난 표정을 귀엽게 보았는지 낄낄대고 웃으면서 약을 올리기 시작했다.
"히히히! 우리 장교주님은 청년 영웅이시고, 조낭자는 우리 교주님보다 몇 살 아래가 되시겠지? 어떻소, 우리 교주님한테 시집을 오시는게? 이 땡추 눈에 조낭자는 꽃처럼 보름달처럼 아리따운 규수이시니, 우리 어엿한 청년 교주님하고 아주 썩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되시겠어." - P388

"태사부님, 저 시주분께서 한사코 우리 무당파의 무공을 보고 싶은 모양이온데, 굳이 태사부님께서 번거롭게 나서실 것까지는 없지 않겠습니까? 불초 제자가 몇 수 보여드려도 넉넉할 듯 싶습니다."
얼굴이 온통 흙먼지로 땟국이 낀 도동은 바로 청풍으로 변장한 장무기였다. - P398

장삼봉은 도동의 얼굴을 뚫어져라 굽어보았다. 눈빛에 광화(光華)를 드러내지는 않았어도 형형하고 은은히 비쳐 나오는 이상야릇한 정기가 서려 있었다. 그것은 내공이 절정에 도달한 사람에게만이 나타나는 광채였다. 장삼봉은 이런 눈빛을 가진 인물을 평생 서너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밖에 만나보지 못했다. 하나는 장삼봉이 어린 장군보 시절에 모셨던 스승 각원대사였고, 또 한 사람은 곽정 대협, 그리고 신조대협 양과 등 고작 몇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이 세상을 떠난 지금에 와서 장삼봉 자신 말고도 이런 광채를 품을 만큼 등봉조극(登峯造極)의 경지에 이른 또다른 사람이 있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 P399

"내 선친 취산공(翠山公)이 태사부 어른의 다섯째 제자 분이셨으니, 내가 ‘태사부님‘ 이라 부르지 않으면 또 뭐라고 호칭해야 옳겠는가? 우리 부자관계가 이렇듯 떳떳할진대 무슨 부끄러움을 느낀단 말인가!"
그러고는 곧 돌아서서 장삼봉 앞에 무릎 꿇고 이마를 조아렸다.
"철없는 아이 장무기, 삼가 태사부 어르신과 셋째 사백님께 문안 여쭙니다. 일이 창졸간에 벌어져 미처 아뢰지 못한 죄, 용서하여주십시오." - P4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