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첫줄부터 세심하게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글 속에 기록된 것은 기를 단련하고 내공을 운용하는 연기운공(練氣運功)의 요결이었다. 천천히 읽어가던 그는 한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석 줄까지 소리내어 읽었을 때 그것이 바로 태사부 장삼봉과 둘째 사백 유연주가 가르쳐준 무당 구양공(武當九陽功)의 구결내용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세 번째 문장 아랫부분은 앞서 배웠던 것과 조금씩 다른 내용으로 이어져갔다. - P28
"그래요! 그 사람은 아주 영특하게 생겼지만, 교만하기 짝이 없죠. 내가 그 사람더러 우리하고 함께 평생 같이 살자고 했는데, 그사람은 싫다고 뻗댔지 뭐예요. 어디 그뿐인 줄 아세요? 날 욕하고 때리고 내 몸뚱이를 깨물어서 피투성이로 만들었다니까요." - P72
"당신 이름이 뭐죠? 어째서 이런 데까지 왔어요?" 장무기는 금방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중원 땅에 들어선 이래로 마주치는 사람마다 모두 내게서 양부의 행방을 탐지해내려고 온갖 수단방법을 다 써왔다. 위력으로 협박하고 미인계로 유혹하고 써보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수법이 악랄하기 이를 데 없어 이루 견디지 못할 고초를 안겨주었다. 이제부터 나는 내 출신 내력을 철두철미하게 숨겨야 한다. ‘장무기‘ 란 사람이 죽은 셈치면 이 세상에 금모사왕 사손의 거처를 아는 사람은 다시없을 것이다. - P75
"얼굴이 밉든 곱든, 잘생겼든 못생겼든 나는 털끝만치도 마음에 두지 않소. 그저 당신이 내 동반자가 되어 마음속에 있는 것을 다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말벗이 되어준다면, 당신이 내가 싫어 저버리지만 않는다면…… 나는 물론 당신을 좋아할 거요. 하지만 날 속이느라 그런 말을 한다면….…" - P86
주사매라 불린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주 고상한 말씨로 다소곳이 입을 열어 물었다. "두 분의 존함은 어찌되시는지요? 무슨 까닭으로 우리 정사저에게 상처를 입히셨습니까?" 그녀가 다가올 때부터 줄곧 낯이 익다는 느낌을 받은 장무기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퍼뜩 짚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렇구나! 바로 그 소녀였어. 한수에서 태사부와 함께 나룻배를 타고 건너가다 몽골군에게 쫓기던 상우춘 형님을 구해준 적이 있었지. 그때 함께 있던 뱃사공의 어린 딸이 나한테 곰살궂게 밥을 먹여주었는데, 지금 저 여자가 바로 그 소녀가 틀림없다. 이름이 주지약(周若)이라 했던가? 태사부님이 무당산으로 데려갔을 텐데 어떻게 아미파 문하에 들어갔을까? - P113
장무기는 격심하게 떨리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한수의 흐르는 강물, 나룻배 위에서 밥을 먹여주던 그 은덕, 영원히 잊지 못하는데…….." 이 말을 듣는 순간, 주지약의 몸뚱이가 부르르 떨리더니 고개를 돌리고 다시 한 번 그를 바라보았다. - P149
이제 장무기의 귀에는 더 이상 그녀의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의 온갖 상념이 뒤죽박죽으로 헝클어져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렇구나, 그랬어! 거미가 바로 호접곡에서 날 붙잡고 놓아주지 않던 그 몹쓸 계집아이 아리(阿離)였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다. 거미의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고 자리 잡은 그 사람이 바로 나였을 줄이야.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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