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 P159

찾아가서 말로써 오늘 제가 먼저 가는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만 대화란 항상 의외의 방향으로 나가버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써 알리는 것입니다. - P193

사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저 자신이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어렴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는 옛날의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옛날의 저를 오늘의 저로 끌어다 놓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하였듯이 당신을 햇볕 속으로 끌어 놓기 위하여 힘을 다할 작정입니다. - P193

토요일 오후, 제기랄, 괜히 마음이 느긋해진다. 내일 오후가 되면 이 빚을 갚아야 한다. 일요일 오후엔 별수 없이 초조해지거든. 그러니 이 토요일 오후를 실컷 이용해야 한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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