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조금 불량하지만 좋은 친구들

쇼타와 아쓰야, 고헤이는 좀도둑이다. 오늘도 물건을 훔쳐 달아나던 중 도주를 위해 훔친 차량이 길에서 퍼져 버렸다. 한밤중에 말이다. 어쩔 수 없이 밤을 지내기 위해 살피던 중 낡은 집을 한 채 발견하고 그 곳에서 밤을 나기로 한다. 잠시 쉬려고 하는데 편지함으로 뚝 떨어지 편지 한 통. 읽어 보니 고민을 적어 놓은 편지이고 답장을 기다린다. 세 사람은 장난삼아 답장을 적어 우유배달함 속에 넣는다. 그런데 답장에 대해 또다시 도착한 편지.


아무도 다녀가지 않았는데 도착한 이해할 수 없는 편지 때문에 세 사람은 혼란에 빠진다. 머리를 맞대고 생각한 결과 편지는 1979년에서 온 것이고 그들이 있는 집은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소통하는 방법은 편지. 세 사람은 과거의 여자가 보낸 상담 편지에 적절한 대답을 해주기 위해 머리를 맞대어 답장을 하지만 여자는 제멋대로 편지를 해석하고 세 사람이 한 조언에 따르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공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이제 시작한다.


히가시노 게이고. 1958 ~ . 일본 소설가.


추리소설이 아니다

이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소설 중에서도 제일 먼저 읽은 소설이다. 일본소설을 거의 읽지 않던 내 눈에 한참동안 인터넷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 맨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매우 눈에 거슬렸다. 궁금함에 주문해서 읽은 것이 벌써 5년 전. 최근에 게이고가 쓴 소설을 꽤 읽었는데 내용이 거의 생각나지 않아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게이고가 쓴 소설 중에서도 굉장히 특이한 위치에 있는 소설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게이고 소설은 대부분 추리를 통해 지적인 쾌감을 주는 작품은 있을지언정 정서적인 감동을 주는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미스터리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범죄자도 형사도 등장하지 않고 피가 튀는 장면도 없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게이고 소설 중에서도 상당히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모든 사건은 과거에서 온 상담편지로부터 시작한다.


다섯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어느날 나미야 잡화점에 들어가 과거의 고민에 답을 하는 좀도둑 세 명. 이 세 사람은 그다지 다른 사람의 고민을 해결해 줄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하지만 고민상담을 원하는 편지를 읽은 후 답을 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기도 하고 때로는 고민상담을 하는 사람에게 화가 치밀어 생각나는대로 멋대로 휘갈겨 답장을 하기도 한다. 과거에 잡화점의 주인인 나미야 유지가 답장을 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이렇게 상담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섯 명. 다섯 개의 사연과 다섯 개의 상담이 하나의 단편을 이루고 다섯 개의 단편이 모여서 하나의 옴니버스 세계를 수놓는다.


올림픽에 나가길 원하지만 암에 걸린 남자친구가 걱정되어 곁에 머무를지 고민하는 펜싱 선수. 세 친구는 일본이 그 대회를 보이콧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꼭 남자친구 곁에 머무르라고 조언한다. 가수가 되고 싶은 꿈과 가업을 이으라고 하는 아버지의 요구 사이에서 방황하는 무명의 아마츄어 가수. 불타고 있는 고아원에서 장래에 유명가수가 되는 여자 아이의 동생을 구한 후 죽을 운명이지만 그의 노래만은 전설적인 명곡으로 남는다. 불륜으로 태어난 아이는 자신을 사랑했던 엄마의 마음에 감동을 받아 새로 살아갈 힘을 얻고, 야반도주를 하려는 부모 때문에 고민하는 비틀즈 매니아는 결국 부모를 떠나고 만다. 가난을 이기기 위해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회사원은 세 사람이 한 충고를 받아들여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둔다. 각자의 사연은 다르지만 나미야 잡화점의 상담가는 어설프게 적절해 보이는 해답을 주고, 고민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충고를 따르기도 하고 상관없이 행동하기도 한다.


과거와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설정은 이제는 굉장히 식상한 소재이지만 게이고는 짜임새있게 소설을 써냄으로써 많은 감동을 준다.

촘촘히 엮인 플롯

첫 에피소드를 읽을 때만 해도 과거와 현재가 우체통과 우유통으로 연결되어 있어 과거의 고민을 세 얼간이 좀도둑이 엉뚱한 대답으로 해결해 주는 단편소설집인 것처럼 보인다. 다섯 편에 연결점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그 이상을 보여 준다. 첫 편에서 등장한 '달토끼'가 다음 편에 나오고 두 번째 편에서 등장한 '생선가게 예술가' 역시 다음 편에 나온다. 얼핏 궁금했던 전편 주인공들의 후일담이 다음 편에 반복적으로 드러나더니 마지막 편에서는 다섯 명 모두가 등장하고 '환광원'이라는 고아원과 '나미야 잡화점'을 중심으로 모든 인물이 연관되어 있다는게 드러나며 감동을 준다.


위와 같은 점에서 게이고가 쓴 이전 단편들에서 주인공 한 명이 사건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것과는 좀 다르다. 사건이 하나씩 완결되지 않고 플롯이 촘촘히 엮여 있어서 뒤로 갈수록 궁금했던 것이 풀리며 흥미로워진다.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이전 단편의 주인공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후일담을 확인하며 잔잔한 감동을 주는 것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장점. 한참 인물관계도를 머릿속에서 그려가며 읽다가 마지막 편을 다 읽고 책을 덮고 나면 '나미야 잡화점'을 거쳐간 사람들이 떠오르고 뿌듯함이 느껴진다.


다른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영화화되었다.

★★★★☆

추리소설도 아니고 시리즈 중에 한 권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품이고 굉장히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아 이제는 스테디셀러 반열에 오른 책이다. 일본에서는 아마도 한국보다는 인기가 많지 않은 것 같은데 히가시노 게이고를 추리소설가로 보기 때문일 것 같기도 하고 한국과 일본의 정서가 좀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다. 미스터리도 적절하고 감동스럽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읽은 책이기도 하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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