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의 날개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7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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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빠가 죽었다

정확하게는 살해당했다. 에도바시 다리 앞에 있는 지하도에서 칼에 찔렸는데 거리도 먼 니혼바시 다리까지 가서 그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중간에 파출소가 있었는데 도움도 청하지 않고 마치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니혼바시 다리에 있는 기린상까지 걸어갔다. 범인은 금세 특정됐다. 6개월 전 아버지 회사인 가네세키 금속의 구니다치 공장에서 일하다 계약이 만료되어 퇴사한 야시마 후유키. 하지만 야시마는 경찰의 불심검문을 피해 도망치다 트럭에 치여 깨어나지 않고 있다. 아버지의 지갑과 서류가방을 가지고 있었으니 범인이 분명할 것이라고 형사들이 말한다.


엄마는 아빠의 죽음에 당황했고, 여동생은 울기만 한다. 나라도 정신차려야 하는데.. 형사들이 수사하던 중에 야시마가 작업중 사고를 당했다는게 드러나고 회사사람은 아빠가 지시해서 산재신고를 하지 않고 해고했다고 주장한다. 결국 아빠는 야시마가 복수심 때문에 살해했고, 죽어 마땅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나는 아빠에 대해 하는게 하나도 없다. 아빠는 정말 그런 사람이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 1958 ~ . 일본 소설가.


가가 교이치로 형사에 대한 기대감

가가 형사 시리즈 장품 중 세 번째로 읽는 책이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책은 워낙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어서 머리 아프고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책을 읽은 후에 머리 식힐 겸 읽는 편이다. 특히 이전에 읽었던 《악의》는 게이고가 쓴 소설 중에서도 걸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가 교이치로 형사가 활약하는 《기린의 날개》도 기대가 컸다.


400 페이지짜리 책이다. 판형이 작고 줄간격도 넓어서 다른 책 400 페이지보다야 양이 적겠지만 그래도 꽤 두껍다. 하지만 굉장히 빨리 읽을 수 있는 것이 게이고 소설의 최대 장점. 보통 이 정도면 3~4일은 걸리는데 하루에 다 읽을 수 있었다. 게이고가 쓴 소설은 이런 면에서는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사건은 단순하게 끝나는 듯 하다. 범인도 명확해 보인다. 하지만 다케아키(피살자)가 죽기 전에 종이학을 접어서 칠복신 순례를 한다든지, 구태여 니혼바시 다리까지 가서 죽는다든지 하는 알 수 없는 행동들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면서 가가 형사는 다케아키의 죽음에 의문을 갖게 된다. 특히, 유력한 용의자였던 야시마 후유키가 죽은 후, 공소권 없음으로 끝날 것 같은 사건을 가가 형사는 끝까지 파고 든다. 그 후에 밝혀지는 진실은..


니혼바시 다리에 있는 기린의 모습


흥미진진한 전개, 엉뚱한 결말

게이고는 엄청난 다작 작가이다. 그가 쓴 책을 꽤 읽었는데 소설의 질이 고르지 않다. 기본적으로 몰입감이 뛰어나고 쉽게 읽히기는 하는데 걸작이 있는가 하면 졸작도 있다. 《기린의 날개》는 어떠냐고 물어 본다면 전반 3/4는 꽤 괜찮지만 후반 1/4는 만족스럽지 않다. 초중반 부분은 정말 재미있다. 특히 다케아키가 야시마의 산재처리를 해 주지 않아서 비난을 받으며 남아 있는 가족들이 이지메를 당하는 장면이라든지 매스미디어가 사건을 자극적으로 보도하기 위해서 야시마의 애인인 나카하라 가오리를 설득하는 장면에서는 사회문제를 다루기도 한다.


하지만 사건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되는 3년 전 수영장 사건은 너무 나중에 나왔다. 힌트도 전혀 없었다. 독자는 다른 곳에 머리쓰게 만들고 전혀 엉뚱한 곳에서 마무리지어 버린다. 이걸 충격적 반전이라고 해야 하나? 내 생각에는 아니다. 그냥 구성을 잘못해서 독자를 배신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역 광장에 보물이 묻혀 있다고 찾으라고 하더니 사실은 광화문 광장에 파묻어 놓은 꼴이다. 반전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서로 다른 플롯 두 개를 억지로 붙여 놓은 것 같다. 게다가 이지메 문제라든지 매스미디어의 폭력같은 것은 건드리기만 하고 지나간다. 의식있는 사회파 소설 작가라는 타이틀을 잃지 않기 위해서 끼워넣어 놓은 것 같다.


인물의 행동에서 제일 이해되지 않는 것은 다케아키가 '죽은' 점이다. 아들의 잘못된 행동을 참회하며 블로그 댓글을 이어 쓰고 칠복신 순례를 한 것까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아들에게 메세지를 남기기 위해서 구태여 니혼바시까지 가야 했을까? 아직 죽지 않은 상황이었고 걸어서 꽤 먼 곳까지 갈 힘이 있었으면 충분히 살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을텐데.. 중간에 파출소도 있었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을텐데.. 결국 마지막에 억지로 감동을 남기기 위해 만들어 놓은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이다.


소설 속 기린은 동물 기린이 아니라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이다. 수컷을 '기'라고 하고 암컷을 '린'이라고 한다. 성군이 태어나거나 죽을 때 출현한다고 하며 중국의 전설 속 황제인 '황제'의 정원에 처음 나타났다고 한다. 일본 판타지 소설 <십이국기>에 등장하는 '게이키', '다이키', '렌린'의 마지막에 붙은 '키'와 '린'도 기린에서 따온 것이다.


가가 교이치로 형사같지 않다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해 주는 건데, 나 역시 야시마가 범인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해, 고바야시 주임이 말한 동기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고 말이야. 하지만 그걸 증명했다고 해서 사건의 전모를 밝혔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 아오야기 씨가 왜 이 거리를 드나들었는지를 알아내지 못하면 그 가족으로서는 사건이 종결됐다고 볼수 없어. 

p.159


《기린의 날개》가 가가 형사의 캐틱터를 잘 살렸는지도 의심스럽다. 위의 인용문을 보듯이 가가 형사는 단순히 범인을 잡는 것이 아니라 범행의 실질적인 원인, 범인의 심리를 파헤치는 것이 특징인데 《기린의 날개》에서 활약하는 가가 형사는 좀 다르다. 내가 《기린의 날개》를 읽으면서 범인은 야시마가 맞지만 살인을 한 이유는 다른 전개를 기대했다. 가가 형사도 그런 뜻으로 '하지만 그걸 증명했다고 해서 사건의 전모를 밝혔다고 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이면의 진실을 파헤치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가가 형사는 그저 추리력이 뛰어난 민완형사에 머무르고 말았다. 어쩌면 이전에 내가 읽은 가가 형사 시리즈 두 권 《악의》와 《거짓말, 딱 한 개만 더》에서 가가 교이치로 형사에 대해서 과대평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게이고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영화화되었다.


★★★☆

게이고 소설 특유의 몰입감은 《기린의 날개》에서도 변함없다. 장르적 재미 역시 충분하다. 하지만 범인이 힌트도 없다가 전혀 뜬금없이 등장하고 마지막 억지 감동을 만들어 내기 위해 무리하는 바람에 개연성이 흐트러졌다. 가가 교이치로가 활약하는 《악의》에 비해서 많이 떨어진다.


조금 아쉬운 감이 있는 평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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