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 장혜령 소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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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경험이 모이면 역사가 된다

복잡한 역사없이 평탄하기만 한 삶을 가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밖에서 보면 평안해 보이고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도 한때는 굴곡진 삶을 살았을 것이고 지금도 삶의 혼란 속에서 헤매고 있을 수 있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보이는 삶의 경험을 여러 사람이 똑같이 경험을 한다면 그것이 역사가 된다. 그 기억이 아름답다면 좋을테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수십년간 좋지 않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사실 아름다운 기억만 공유하고 있는 나라가 어디에 있을까? 《진주》는 아름답지 않은 우리의 기억을 개인적의 삶을 통해 끄집어 낸다.


나와 가족에 관한 일기

《진주》는 수많은 짧은 기록의 모음이다. 처음에 기록될 때 어떤 형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꼭 글 뿐만이 아닌 다양한 기록들이 있다. 《진주》 속에는 독재에 반대하는 청년의 저항정신 가득한 시국선언문이 있다. 재야 인사들의 거창한 성명서도 들어 있다. 그런가 하면 작가가 어렸을 때 쓴 일기도 있고, 학교에 제출하기 위해 원고지에 쓴 글짓기도 있다. 그 글들 속에는 독재시대와 자본의 시대를 거치며 열렬히 투쟁에 몸을 바친 아버지, 그의 동지들, 그 동지들 중 한 명인 어머니, 그리고 나. 그 기록들이 이 책 속에 촘촘히 박혀 있다.


그런데 가족과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분명히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기는 한데 개별 이야기의 방향은 분명치 않다. 여기서 이 책이 읽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방향성이 분명히 있기는 한데 개별 글들이 너무 동떨어져 있고 시점마저 자주 바뀌다 보니 전체적인 서사가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책은 불행한 우리의 근대사를 가족에 대입해 풀어 놓은 글인가? 아니면 가족의 소소한 일상을 적어 나갔는데 우연히 그 시기가 부조리로 가득한 시대였던 건가?


작가 장혜령. 사진 출처. 한겨레 신문사


흩뿌려진 이야기

최근에 읽은 소설 몇 권이 나를 굉장히 심란하게 한다. 이해하기 쉽고 서사가 명확한 책이 없다. 2020년에는 책을 많이 읽으려고 마음먹었는데 계속해서 쉽게 읽을 수 없는 책을 골라잡아서 다독 계획이 엉망이 되고 있다. 그리고 《진주》는 그 중에 나에게 가장 치명타를 입힌 책이다. 처음에는 《진주》의 정체를 파악하기 힘들었는데 작가가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쓴 책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이해가 된다. 이 글들이 습작일 수도 있고 발표를 염두에 두지않고 쓴 일기일 수도 있다. 작가이니 끊임없이 글을 썼겠지. 그중에 주제가 겹치는 글을 모아 낸 책일 것이다. 그러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에세이집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려 보인다. 그 글을 (나중에 알았지만) 한강의 권유에 의해 소설이라는 장르로 펴낸 것이다. 그러니 시와 에세이를 거의 읽지 않은 내가 이 책을 만만하게 읽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서정성 가득한 난해함

내가 시를 잘 읽지 않는 이유는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시는 내가 읽으면서 느꼈던 것과 한참 벗어난 얘기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단 읽기도 힘들고 의미는 더 파악하기 힘들다. 《진주》도 그렇다. 열심히 읽고 되돌아가 읽고 처음부터 다시 읽고. 그런데도 이 책은 덮고 난 후 과연 내가 읽은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서사도 잡아내지 못한 것 같고, 개별 사건도 어느 구석에 끼워 맞춰야 하는지 모르겠다. 분명히 뭔가 읽고 있기는 한데 도대체 이게 어떤 상황에서 나오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이렇게 문장해석능력이 떨어지는가 하는 자괴감까지 들 정도다.


책을 재미있게 읽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기는 힘들다.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정확히는 잘 넘어가는 부분이 있고 잘 안넘어가는 부분이 있는데 잘 안넘어가는 부분의 벽이 높고 각 부분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모르겠다. 화자가 끊임없이 바뀌는 것 같은데 그 화자가 누군지를 알 수가 없어서 퍼즐이 맞지 않는다. 게다가 중간중간 시쓰듯이 쓴 산문문장은 이미지가 잘 잡히지 않아 읽는데 고생했다.


시간이 있으면 나중에 머리 비우고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장혜령이라는 작가의 문장을 다시 확인해 보고 싶기도 하고 그 속에 담긴 서사를 연결해 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정확하게는 모든 단락을 다 쪼개서 말하는 사람을 찾고 시간 순서에 따라 재배치하고 싶다. 분명히 새롭게 보이는 것이 있을 것 같기는 하다.


★★★

순간순간 따뜻함도 느껴지고 절망도 느껴지고 슬픔도 느껴진다. 부분적으로는 가슴도 아려오고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공감할 내용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 감정이 주욱 연결되지는 않는다. 뚝뚝 끊어진 감정이 느슨하게 연결된 듯한 느낌이다. 서사도 연결되지 않는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이미지가 잡히지 않는 글도 참 오랜만이다. 문장이 어렵지는 않은데 잡히지 않는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자전적 에세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보통 소설을 읽고 감상을 쓸 때에는 줄거리도 함께 쓰는데, 이 책은 도대체 뭘 써야할지 모르겠다. 시대배경도 익숙하고 내용도 대강은 알겠는데 요약을 할 수가 없다. 끝까지 읽고도 내가 뭘 읽었는지 잘 모르겠다.


감성이 풍부한 사람은 재미있게 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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