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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서 사라진 사람들 - 사라진 민족 사라진 나라의 살아 숨 쉬는 역사 ㅣ 지도에서 사라진 시리즈
도현신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12월
평점 :

지금은 알기 어려운 사람들
역사에 관한 책을 읽다 보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수천년전, 지금으로부터 알에서 태어난 주몽까지 세는 것보다 주몽으로부터 세는 것이 더 오래된 옛날, 전쟁을 하고 법을 만들고 글자를 새겨넣었던 민족들이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가장 길게 늘여서 5천년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보다 수천년 이전에 각자의 지역을 호령했던 사람들을 보면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지금도 만들기 어려운 건축물을 만들었을까? 그렇게 국가를 순식간에 무너뜨렸다는 외부의 세력은 또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인가? 우주를 이해하고 신을 숭배하는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많지 않은 기록을 뒤져 신화와 현실이 뒤범벅된 그들의 삶을 상상하는 것은 어릴 때부터 나에겐 정말 흥미로운 놀잇감이었다.
《지도에서 사라진 사람들》은 지금은 사라져 버린 고대 민족들을 우리에게 소개하는 책이다.

수메르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남아있는 최초의 기록을 남긴 민족이다.
18개의 고대인들을 살펴본다
저자인 도현신은 이전에 《지도에서 사라진 종교들》로 처음 알게 됐다.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읽었기 때문에 이 책도 큰 고민없이 집어 들었다. 《지도에서 사라진 사람들》은 예전에 존재했지만 현재는 흔적만을 찾아볼 수 있는 고대인들에 대해 설명한다. 책은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문명을 자랑하는 수메르를 포함하는 고대인, 중세유럽에서 맹위를 떨치던 민족들, 동북아시아에 살명서 끊임없이 중국을 괴롭히던 민족들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특이하게도 옥저, 동예, 부여, 우산국, 가야의 우리나라 고대사에 존재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다섯 개 국가에 대해서는 읽어본 적도 없고 거의 생각해 본 적도 없었는데 참 신선한 자극이었다.
고대사나 세계사 등 역사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도 사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조선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다. 그리고 솔직히 남은 유적이나 사료가 많지 않아 흥미가 많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인데, 한 번쯤 우리의 고대사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교과서나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길게 늘여서 설명한 수준의 역사 훑어보기만으로 끝나는 건 좀 아쉬웠다.

훈족과 흉노족은 같은 민족이라는 설이 강력하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 정도만 알아도 훌륭한 요약본
이 책을 읽기 전에 같은 저자의 《지도에서 사라진 종교들》을 읽었다고 했는데, 그 책을 읽을 때, 마치 판타지 소설을 쓰기 위한 설정자료집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역사를 토대로 한 소설, 또는 역사 판타지 소설의 설정집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다. (저자의 책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민족과 부족들을 기원과 특징, 전성기와 멸망의 역사를 잘 분류해 놓았다. 그래서 역사를 보다가 생경한 민족이 등장하면 이 책에서 찾아 보고 눈에 익혀 놓고 계속 읽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에서 계속 마음에 거슬리는 것이 있는데 저자가 전문적인 역사학자도 아니고 참고한 자료들이 일차자료도 아닌데 비해 저자의 설명이 너무 단정적이다. 이건 역사를 좀 깊이 보는 사람들이 보기엔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거기에 근거가 상당히 부족한 상상력도 여기저기 삽입되어 있어서 책의 내용이 비판을 여지가 굉장히 크다. 하지만 역사의 정확성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참고삼아 읽기에 충분한 내용이 담겨있다.

이 책은 옥저, 동예, 부여 등 한반도의 고대 부족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요약은 내 것이 되지 않는다
어떤 학문이든지 공부하고 익히는 것은 큰 노력이 든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시험이 임박해서 벼락치기 공부를 할 때는 압축, 요약된 것을 암기해서 시험을 치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잊고 만다. 오히려 시험과 상관없이 자세하게 파보고 복잡하게 공부한 것들이 머릿 속에 남아 나의 지식이 된다.
《지도에서 사라진 사람들》같은 책의 가장 큰 문제가 요약본이라는 것이다. 많은 분야를 다루긴 하지만 자세히 서술해 놓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읽고 나서도 머릿속에 잘 남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안내서가 될 수는 있어도 역사를 제대로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이 부족하다. 이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좋겠지만 이런 걸 시험볼 일도 없는 바에야 머릿속에 우겨넣을 것은 아니니 크게 쓸모가 있는 것이 아니다. 거의 모든 요약본의 문제점이기도 하니 이 책에만 적용할 것은 아니다.
★★★★
비록 그냥 한 번 읽고 지나가도 크게 머릿속에 남지는 않지만 한 번 읽으면서 익숙했던 민족, 생소한 민족들의 흔적을 훑어보는 의미가 있다. 이 책을 읽고서 역사에 관심이 생겨서 더 깊게 팔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은 성공적일 것이다. 한반도의 민족을 소개한 마지막 부분은 작가의 민족의식이 발휘된 멋진 시도인 것 같다. 사실 부여, 동예, 옥저같은 한반도 초기의 부족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관심있게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역사자료가 거의 없어서 그야말로 수박겉핥기밖에 될 수 없는 것은 많이 아쉽다.
가볍게 읽고 머릿속에 하나라도 남으면 성공이다. 추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