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 교양으로 읽는 마약 세계사
오후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그렇다

나는 마약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 마약을 본 적도 없고 기껏해야 영화나 TV, 소설같은 미디어에서 간접적으로 접해봤을 뿐이다. 물론 술, 담배, 카페인같은 것들을 넓은 의미의 마약으로 분류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 마약을 접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주변에서 마약을 했다는 사람을 본 적도 없다. 그만큼 마약은 우리나라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어지간해서는 경험할 수 없는 불법적인 물건이다.


경험하기 힘들다고 해서 용어가 익숙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흔히 '뽕'맞은 것처럼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마약 튀김', '마약 떡볶이'에 열광하기도 한다. 수많은 영화에서는 마약을 하고 눈빛이 변한 사람을 볼 수 있고, 화학교사가 마약을 만들어 판매하는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는 명작이라며 열심히 찾아 본다. 간혹 연예인들이 마약을 했다는 뉴스를 보면 '뽕쟁이'라며 성토하기도 한다.


우리는 정말 마약이 뭔지 모른다. 하지만 마약에 익숙하고 그만큼 죄악시한다. 이 책은 발칙하게도 그런 마약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대마초. 마리화나라고도 한다. 가장 오래된 마약 중에 하나이다. 말려서 담배 모양으로 말아서 피우는 방식으로 흡입한다.


마약에 대한 자세하고 체계적인 설명서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는 우선 마약의 기원부터 설명한다. 모든 것들의 기원이 그렇듯이 마약도 정확히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알 수 없다. 마약이 인간의 진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흥미로운 가설도 소개한다.


아니, 우리 조상이 약을 빨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특이점을 넘어설 수 있었겠어?
p.13

이후 역사적으로 마약이 어떻게 활용되어 왔는지 설명을 한다. 고대의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은 신관 혹은 무녀들이다. 이들은 일반사람들이 할 수 없는 신과의 합일을 이루어야 했고, 이 때 많이 사용된 것이 천연마약이다. 마약에 취한 행동, 말투 등이 일반인과 달랐기 때문에 그들은 신의 사자로서 행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대 종교의 시대 이후 기독교가 서양의 주류 종교로 등장하고 마약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퍼지는 과정을 설명한 후에 마약에 대해 본격적으로 설명한다.

 

일본의 나가이 나가요시가 발견한 화학물질. 감기약을 개발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가장 강력하고 중독성이 강한 마약 중에 하나이며, 주사기로 주사하는 방식으로 투약한다.


이전에 들어 본 적이 없는 읽기 쉬운 마약 매뉴얼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는 정말 마약에 대해서 '전문가가 아닌 독자'가 알고 있으면 좋을 것 같은 내용을 모두 담고 있다. 마약의 기원과 종류, 자세하진 않지만 어떻게 유통이 되는지, 마약의 역사, 마약 카르텔의 형성과 대표적인 인물, 마지막에는 마약을 소재로 한 영화까지 소개한다. 저자 소개를 읽어보면 흔히 말하는 서브컬쳐 중에서도 마약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깊게 파고 들어간 덕후의 느낌이다. 어떤 팟캐스트 방송에서 연재한 내용같은데 찾아 보려고 했으나 찾지는 못했다.


정말 자세히, 그것도 마약의 긍정적인 면과 사회에서 활용해야 한다는 논조로 썼기 때문에 책을 읽다 보면 '저자는 도대체 어떤 약을 빨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약을 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까지 자세히 알고 있을 리가.. 하지만 작가가 마약을 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극구 부인하는데다가 경험에 의한 서술은 하지 않고 있으니 믿어 주기로 하자.


어쨌든 이 책 한 권이면 교양 수준에서 마약에 대해서 알아야 할 상식은 대체로 알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어체로 씌어 있어서 가독성이 좋다. 마약에 대해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것보다는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덕후가 썰을 풀듯이 써 놓았기 때문에 이해도 쉽게 된다.

 

LSD를 복용하면 강력한 환각작용을 일으키며, 모든 감각기관이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한다. 작은 사각형 모양의 종이에 흡수시켜 말린 뒤에 유통되고 이 종이를 혀에 올려 놓아 흡수하는 방식으로 복용한다.


조금은 마음에 들지 않는 태도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는 마약에 대해서 굉장히 우호적이다. 읽기 전에는 호불호를 떠나서 가치중립적으로 마약에 대해서 다룰 것이라고 추측했는데 그렇지 않다. 굉장히 우호적이고 마약을 정신에 대한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느끼도록) 묘사한다. 마약의 무해하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하기도 한다. 공권력이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이 좋은 마약을 금지시키는 것을 비난하는 (것 같은) 논조'를 계속 유지한다. 난 이런 태도에 대해서 찬성하지는 않지만 그런 주장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다 보면 타당성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책의 95%를 마약에 대해 긍정적으로 써 놓고서는 마지막 5%에서 '그렇다고 내가 마약을 권하는 것은 아니'라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불만이다. 책의 내용을 마약이 좋은 것이라고 (느끼게) 써놓고 막판에 한 발 뺀다. 비겁해 보이는 글쓰기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끝까지 밀어 붙일 경우 법을 어기는 것이 두려웠다면 최소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정도의 태도를 취했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이 책은 이 점에서 논쟁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멋진 책에서 덕후가 마약에 대한 썰을 풀어 놓은 책에 머무르고 말았다. 많이 아쉽다.


더불어서 마치 마치 쿨병 걸린 것처럼 쓰는 글쓰기 방법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덕후들이 엄청난 지식을 뽐내듯이 글을 쓰고 있는데 이런 태도의 글은 서브컬쳐 계열의 커뮤니티에 가면 굉장히 많다. '나는 이만큼 진보하고 알고 있는 사람이니 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의 세계를 평가하지 말라'는 태도. 당연하다. 이 책을 읽는 사람 중에 마약에 대해서 저자만큼 관심가지고 깊이 파고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식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태도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드니 빌뇌브 감독작. 시카리오. 마약조직을 퇴치하려는 요원들을 그리고 있다. 명작이라고 해서 보려던 참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더 관심이 간다.


★★★★

태도에 대해서 강하게 거부감이 들기는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추천한다. 마약 전반에 관한 상식을 알 수 있고 마약에 대해서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어떻게 나온 것인지도 알 수 있다. 덧붙여서 글쓰기의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도 했다. 쉬운 글쓰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저자가 쓰는 방식의 글쓰기도 여러가지로 연습해 봤는데, 이런 글쓰기가 반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뜻밖의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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