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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서 사라진 종교들 - 잊혀지는 신앙과 사라진 신들의 역사 ㅣ 지도에서 사라진 시리즈
도현신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8월
평점 :

역사와 신화와 종교
역사에 관심이 많다. 워낙 기억력이 나빠서 읽은 책들의 내용은 며칠 지나면 새까맣게 잊기 마련이고, 심지어는 바로 몇 페이지 전에 읽은 것도 기억 못할 때가 많다. 기억하고 싶은 것은 많고 기억력은 나쁘니 어떻게든 기억을 대체하기 위해서 최대한 읽은 것들을 정리해 놓으려고 애썼던 적도 있었고, 지금도 가장 좋은 방법을 찾고 있다.
역사에 대해서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신화 덕분이다. 신화를 읽다가 실제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고대사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겼다. 신화와 역사에 관심이 많으니 당연히 종교에도 흥미가 생기고 결국 점성술, 기호, 상징 등 관심 분야가 점점 넓어졌다. 이건 내 얘기다. 내 얘기를 처음에 자세히 쓰는 이유는 아마도 이 책의 저자가 나와 비슷한 단계를 거친 것 같기 때문이다.
《지도에서 사라진 종교들》은 내가 관심이 깊은 역사와 종교에 대해서 잘 정리해 놓은 책이다. 제목만 봐도 끌리지 않을 수 없다.

저승에서 죽은 아내인 에우리디케를 지옥에서 데리고 나오는 오르페우스. 천신만고 끝에 지옥에서 아내를 데리고 나가는 것을 허락받은 오르페우스는 뒤를 돌아 보면 안된다는 하데스의 명을 어기고 뒤를 돌아 봐서 결국 아내를 데리고 이승으로 나오는데는 실패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단순한 등장인물 중에 한 명이지만 그를 경배하는 오르페우스 종교가 책 속에 소개되어 있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종교 이야기
책 제목부터 굉장히 흥미를 끈다. 뭔가 신비한 기운이 책을 감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와 불교가 그나마 익숙하고 이슬람만 해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그것보다 더 익숙하지 않은 '사라진 종교들'에 대해서 다룬다고 하니 굉장히 기대가 많이 됐다.
책은 모두 3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 장은 인류 초기의 종교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첫 장에서 설명하는 종교는 대체로 고대 근동의 종교들로서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종교인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인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와 연관성이 있는 것을 보여 준다. 조로아스터 교에서 갈라져 나온 미트라교에 관한 설명도 나오는데, 미트라는 알고 있었지만 미트라가 미륵불의 원형이라는 건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첫 장은 문명의 기원과 관련있는 종교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익숙한 종교가 꽤 많다. 반면에 한때 번성했지만 다른 종교와 세력 싸움에서 패배해서 사라진 종교들을 다룬 둘째 장과 다른 종교들과는 많이 다른 교리를 지녀서 독특한 느낌이 있는 종교들을 다룬 세번째 장에 나온 종교들은 좀 생경하다. 이 책을 집은 이유는 바로 2, 3장을 읽기 위해서였고,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미트라. 슬픈 얼굴을 하고 황소를 죽이는 모습이 대표적인 이미지이다. 황소는 고대 이란의 종교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조로아스터교에서는 땅에 '식물'과 '황소'와 '사람'을 만들어서 식물은 으깨고 황소와 사람은 죽이는데 식물에서는 모든 꽃과 농작물, 나무가 싹트고 사람에게서는 당연히 모든 사람이 나타나고, 황소에서는 모든 동물들이 튀어나왔다고 한다. 즉, 모든 동물의 대표가 황소이다. 미트라가 황소를 죽이는 것도 신의 명령을 받은 것인데 미트라교 신화에 의하면 황소가 죽은 후에 황소는 달로 변하고 미트라의 외투는 하늘로 변했으며 황소의 꼬리와 피에서는 곡물과 포도가, 황소의 생식기에서는 생명의 씨가 나타나 그것들이 섞여서 모든 생물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미트라가 미륵불의 원형이라고 설명한다.
지은이는 분명히 역덕이다.
지은이인 '도현신'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다. 그런데 앞표지 날개의 저자 소개에서 '어릴 때부터 역사책을 좋아해 역사를 바탕으로 한 책을 쓰겠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다가...'가 눈에 띈다. 졸업한 학교에 과가 명시되지 않은 걸 보니, 아마도 역사를 전공한 건 아닐 것 같다. 추정해 보면 흔히 생각하는 역사 덕후가 분명해 보인다. 더불어서 서브컬쳐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것도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이 책은 서브컬쳐를 좋아하는 역덕이 좋아할 만한 책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다른 책(예를 들면, 판타지 소설 같은...)을 쓰기 위한 자료를 모으다가 내용이 쓸모있는 자료가 많아서 책을 낸 것이 아닌가 싶다.
《지도에서 사라진 종교들》은 이런 지은이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우선 굉장히 접하기 힘든 소재들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종교에 꽤 관심이 있는 나도 처음 들어 보는 종교, 신화에 대한 내용들이 상당히 흥미를 끌었다. 역사적인 배경을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적는 것도 특징인데, 특히 앵글로-색슨 족의 고대 신앙을 설명하는 장에서는 종교보다 역사에 대한 내용이 훨씬 많다. 종교를 설명하는데 역사가 따라오지 않을 수는 없지만 좀 과하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무엇보다 책이 '재미있다'. 책의 제목과 소제목만 봐도 흥미가 생기고, 내용도 흔히 접하기 힘든 내용이라 읽으면서 책 속에 쭉 빨려 들어간다. 주변에서 책 좀 읽는 사람들 역시 책 제목만으로도 흥미있어 했다.
책이 좀 단정적이고 크로스체크가 제대로 되었을까 하는 의문은 좀 든다.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역사를 좋아하면서도 본격적으로 역사에 대한 고등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읽은 몇 권의 책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었어도 지식을 쌓는 것과 그 지식 이면에 흐르는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경우를 많이 봤다. 꼭 저자가 그럴 것이라는 건 아닌데, 책 속에 자주 등장하는 단정적인 표현이 눈에 좀 거슬리고 좀 더 자료를 찾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망치를 이용해서 링을 제거하고 있는 드루이드교 사제.
★★★★
신화와 종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분명히 좋아할 책이다. 흥미진진한 소재를 풀어냈고, 풍부한 역사지식으로 주변 이야기도 쉽게 풀어냈다. 굉장히 지엽적인 종교를 많이 다루었기 때문에 다른 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 많다. 두고두고 생각날 때마다 읽어 보려고 한다. 단지, 정리하면서 씌여진 이런 종류의 책이 가지는 한계 역시 뚜렷하다.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 좀 아쉽다. 이 책의 안내를 받아 더 많은 내용을 알기 위한 길잡이 책으로서 훌륭하지만 워낙 특이한 소재를 책으로 썼기 때문에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불안하다. 책 마지막에 씌여 있는 참고도서를 관심있게 본 이유이다.
글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서 이 책을 추천하는 부담감이 많이 줄어든다. 저자의 다른 책을 살펴 보니 《지도에서 사라진 사람들》이라는 사라진 민족에 대한 책이 있다. 역시 굉장히 흥미로와 보이는 책이다. 아마도 조만간 사서 볼 것 같다.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