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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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집에 누워서 뒹굴거리면서 봤어도 아마 내던졌으려나, (재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시간이 안가기로 유명한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책을 보는 나로써는 읽는 내내 마음이 괴롭고 불편하여서 몇번이나 책을 접었다가 폈다가 했다. 아무리 괴로워도 이 책이라도 안보면 시간이 안가니까..

 그러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봤다던가-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던가- 하는 리뷰를 상기했다.

 이런 책을 어떻게 그리 쉽게 볼 수 있는지?

 주제 사라마구의 [모든 이름들]을 꽤나 건조하게, 그러나 따뜻한 느낌으로 봤기 때문에 [눈먼자들의 도시]는 충격이었다. 주제 사라마구가 진정 [모든 이름들]의 작가가 맞는지 다시 확인해 봤을 정도.....

 이 책을 읽으면서 난 사람들이 너무 싫어졌다. 지하철을 오가는 인간들이 싫었고, 내가 혐오스러웠고, 인간 자체가 한 덩어리로 느껴지면서 그냥 인간이라는 것이 끔찍한 존재였다.

 끝으로 갈수록 그 동안 감추고 있던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고 약간(아주 조금) 훈훈한 분위기가 되면서, [황야의 이리]로 갈아타면서, 다시 마음이 쓰다듬어지긴 했다만 아직 끝을 내지 못하고 있다.. 괜히 줄거리를 읽는 바람에 스포에 공격당했기 때문인가?!

 (알라딘은 줄거리에 결말까지 다 써놓는 거 지양해주길 바래요!!)

 단점이라고 생각하지만 난 책을 참 빨리 읽는 편에 속한다. 속도가 붙는 책은 몇시간이면 다 읽고, 그렇지 않은 책이라도 일주일을 넘기지 않는다. 그런데 [눈먼자들의 도시]는 거의 3주를 넘게 붙잡고 있었으니, 3주 내내 우울해하며 자기파괴적인 심성으로 생활을 했다는 것이,,, 원래 책을 읽을 때 좀 심하게 몰입하기는 하지만 이 책만큼 깊이 빠져서(질척질척) 헤어나오기 힘들었던 책은 처음이다. 나름 색다르고 놀라운 경험!!   

 영화로 개봉되면서 너무 유명해졌기 때문에 일단 나의 리스트에서는 제외-

 레어아이템만 좋다는 이상한 이기주의 일지도 모르겠다?

 보는 내내 굉장히 힘들었다. 가독성 어쩌구를 떠나서 내용 자체가 받아들이기 괴로운 사실과 대화들의 나열- 혼자 회사가면서 5초 동안 눈감고 걸어봤는데 답답해서 토할 뻔 했다! 줄리안 무어가 나오는 영화지만. 아마 보지 않을 것이다. 힘들게 겨우 빠져나왔는데 어떻게 그 구덩이에 다시 들어갈 수 있을까? 그치만 매혹적인 구덩이라 쪼금 유혹적인건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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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팍 2008-11-10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거 완전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게 보았어요. 그냥 소설이니깐 가볍게 넘겼던 기억이;;저도 영화는 별로 기대하지 않아요. 소설이 워낙 대단한 작품이어서 영화가 발톱의 때만큼이라도 따라갈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실제로 칸 개막작이었는데 평론가들 평이 별로 안 좋았다는 소문이;; 암튼 요새 들어 사람들 이 책 많이 읽으시더군요. 저는 한 고3때 정도에 친구 추천으로 읽었는데 그냥 아무 생각없이 재미있게 보았어요. 지금은 대충 내용만 기억 나네요;

Forgettable. 2008-11-11 16:1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내용도 내용이지만 술술 읽히는 문장도 아닌데, 오래 지났는데도 재미있게 봤다고 기억하시니 진짜 신기하네요! 아 저 어제 이책 꿈꿨어요.. 나는 눈 언제 멀까,,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눈이 멀어가는 걸 보고 있는데 아예 악몽이던데요- (너무 책에 몰입하기ㅋㅋ)
 
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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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가다 들린 어느 분의 서재에서 [인간 실격]을 좀 더 어린 나이에 봤으면- 이라는 아쉬워하는 글귀를 만났다. 그런데 재미있는게 다시 리플에다가는 어렸을 때 봤으면 사단이 났을 것이라고 하시는게 아닌가,

 여기 너무 어릴 때 [인간실격]을 만나서 사단 난 사람 한 명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난 행복과 낙관주의로 가득찬 명랑한 아이였던 것 같기도 하다.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은 내 인생에서 하나의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밝고 활기찬' 아이였기 때문에 설명할 수 없었던 내 안의 고통과 비애, 끔찍한 자기애와 동시에 자기혐오를 [인간실격]에서 낱낱이 확인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였는지, 이 책 때문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난 더 이상 따뜻하고 마냥 행복한 아이인 척 할 수 없었다. 이후로 외로운 유학생활을 하고, 엘 그레코의 그림들을 접하고, 시든 장미와 해골의 정물화를 만나고, 나쓰메 소세키와 헤르만 헤세에 빠져서 헤어나오질 못하게 된 것의 연유가 [인간실격]에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꼭 '이상향'과 '아름다움'을 그려야 아름다운 예술이 아니라는 게 왜 그리도 감동적이고 꼭 내 이야기인 것 마냥 가슴이 저렸는지, [인간실격]을 보는 어린 마음도 그러했던 것 같다.

 열심히 살아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인재가 되야 하는 것인지,
 꼭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게으름을 피우고 사색하는 것이 가장 재미있는 일인게 부끄러운 일인건지,
 의심해 보도록 도와준(?) 계기가 [인간실격]이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 책을 읽은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 정말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이유도 모를 불안을 묻어둔 채 행복하다, 여느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생각하면서 가끔씩 까닭 없는 고독과 불안을 모른척하고 살았을 지도 모른다.

 엘 그레코의 그림을 보면서도 아무 감정 없이 지나쳤을 수도 있겠지. 그리고 사회에 적합한 인간으로 단단히 굳어진 후에야 [인간실격]을 보고 귀족이나 한량의 배부른 푸념으로 치부해버렸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다자이 오사무 덕에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을 생각하고, 의심하지 말아야만 하는 것들을 의심하며, 나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태생적으로 생활하기 위해 태어난 인간이 아니라 사색하기 위해 태어났기에 인간실격임을 너무 어렸을 때 알아차린게 참 다행일 수도 있겠다. 그런가? 그래야 한다. 난 실패했기 때문에 특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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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여인의 키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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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매혹적인 포스터는 '거미여인의 키스' 뮤지컬의 것인데 호주의 소극장에서 인턴으로 있던 시절에 처음으로 접했다. 엽서로 되어 있는 광고(?)였는데 제목이며 그림이 진짜 특이하고 강렬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한국에 들어와 도서관에서 [거미여인의 키스] 책을 발견하곤, 아 이게 그거구나! 하며 얼른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타라~~ 책 내용도 포스터 못지않게 매혹적이다. 기둥 얘기는 두 죄수의 감옥 안에서의 우정과 사랑이야기, 엄청 우울하고 지루할 것 같은데 읽다 보면 이야기의 포스가 장난 아니다. 왜냐면 기둥 이야기는 단지 기둥일 뿐 잔가지 역할을 하는 이야기들이 정말 대단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발랑틴이 정치범인 동료죄수에게 해주는 영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 이야기들 하나 하나가 대중적이고 재미 있는 이야기들인데 흥미롭다. 그 영화들이 실제로 있다면 보고 싶을 정도이나 발랑틴이 이야기를 하는 당시의 자기 기분에 따라 어느 정도 스토리를 변형시키기도 했기에 그냥 내 상상 속에 남겨 놓는 것도 좋을 듯 하여 굳이 찾아보진 않았다.

 상상력을 자극하고 알찬 흥미로움으로 가득찬 '이야기(!)'들- 사실 현대 소설에서 '이야기'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난 [거미여인의 키스]가 참 좋다. 작가가 제공하는 풍부한 이야깃거리는 물론이거니와 내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끔 도와주는 힘도 실려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산만하지 않은 노련함과 진중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다소 마음에 약간의 충격이(동성애에 엄청 관대함에도 불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이 책을 감히 '내가 라틴문학을 사랑하게 된 동기' 중의 하나로 집어 넣을 수 있었다. 2010년에는 꼭 이들의 세계로 떠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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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꼭대기에 아직도 당당히 자리잡은 무너진 성곽만큼이나 비현실적인게 또 있을까, 나는 조용하고 푸르렀으나 황폐한 그곳에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벽에 기대어 앉아 현란한 음악과 화려한 옷을 입은 무희와 국왕을 상상했다. 혹시나 500년 전 그곳에서 눈을 뜰 수 있을까 싶어서,

- Mandu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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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원래 남자친구를 만나려 했으나 펑크가 난 관계로 주말엔 메가 박스에서 영화제를 보기로 하고 예매를 해두었다. 프라이데이 나이트엔 간만에 학교에 가서 아직 학생인 김도와 김도 남친과 쫌팽이를 함께 만나서 술을 달려주시고(순대국 하나만 시켜놓고 6시간동안 소주 6병을 까던 우린 변해서 이젠 3차까지 간다. 불경긴데 왜이리 돈을 쓰는지) 집에가서 자고 토요일이 되어서 집을 나섰다. 평일에 맨날 가는 삼성역이지만 왠지 혼자 나서기엔 너무 멀게 느껴져서 그냥 예매 취소하고 무도나 볼까, 하다가 씻은 김에 단장을 하고 나왔다.

 이제는 혼자 영화보는게 하나도 어색하지 않지만 친구들은 그게 왠 청승이냐고 한다. 영화제 영화라 뭐 딱히 같이 볼 친구가 많은 것도 아니고 다들 바빠서 시간 맞추기 어려워서- 라고 변명했다. 주말에 이렇게 먼 길을 와서 영화를 봤는데 재미없음 어떡하냐고 남친이 빈정댔지만 뭐 매우 알찬 시간이었다.

 [사랑 후..]는 노부부 이야기였는데, 지루한 감이 전혀 없진 않았지만 그 지루함때문에 내 마음이 더 흔들렸을 수도 있겠다. 할아버진 우리 아빠랑은 전혀 닮지 않았지만 왜 그렇게 아빠 생각이 나던지.. 피는 물보다 더 진하다더니 타인이 더 애틋해 보이는 게 다 뻥인가 보다. 난 아무리 바빠도 냉담하지 않아야겠다. 이미 아빠와는 너무 멀어지긴 했지만..

 사랑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권위적이고 혼자선 아무 것도 못하던 아버지는 이제 어머니를 찾겠다며 자기 스스로가 어머니가 되고자 한다. 무뚝뚝하고 말 없던 아버지의 마음에 그리 깊은 사랑이 담겨 있는 줄 어머니는 알고 있었을까? 사람들 참 많이 울던데, 당연히 나도 눈물이 났다. (요 몇 년간은 눈물이 오줌처럼 자주 나온다.) 슬프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먹먹하기도 하고,,

 줄거리도 하나도 보지 않고 '도리스 되리'라는 감독 이름 하나 보고 영화를 본거다. 진짜 영화나 책 고르는 기준이 너무 편협하다. 그래도 뭐 망할 가능성이 전혀 없으니 매우 편하고 훌륭한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하하, 대신 놓치는 것도 그만큼 많을 수도 있겠다.

 어제 등산을 하면서 엄마한테 내용 얘기를 해 주었다. 엄마도 어제 나간게 혼자 영화보러 간거였냐면서 웃는다. 그런 영화를 보고 싶다고 하다가도 에이, 지루할 것 같다며 굳이 보지는 않겠단다. ㅋㅋ 요즘엔 엄마가 왜이렇게 귀엽지.. 다음주 일요일에 대하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에릭 니체의 젊은 시절]

 내가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라스 폰 트리에가 각본을 쓴, 그의 젊은 시절 격인 작품이다. 내가 편애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의 작품이라면 무조건 별 백개다! ㅋㅋ 사드를 시나리오로 쓰다니 진짜 웃겨 죽겠다. 실제 영화도 있긴 하지만,,(보진 않았다.) 진짜 재미 없을 것이다. 그가 그토록 갈망했던 '무의미한 것의 나열'(? 이런 단어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의 전형적인 예이긴 하지만..

  내 옆에 앉았던 분이 커피(아마도 카푸치노?)를 드시고 계셨는데 나도 마시고 싶어서 혼났다. 왜 굳이 커피를 마시고 싶게 내 쪽에 놓으셔선.. 영화보다가 무의식적으로 손이 갈 뻔한걸 몇 번이나 참았다. 커피를 금한지 어언 한달이 넘어가네, 카푸치노의 계절인데 ㅠㅠ 위가 좀 나으면 한잔 사 마셔야겠다.

 그가 이런 시나리오도 쓸 줄 아나? 싶을 정도로 코믹하고 밝았다.(전작들에 비한다면야..) 보는 사람 괴롭히기로 유명하고 나도 그에 당한 타격이 굉장히 컸던지라.. 감히 [만덜레이]에 아직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감독이 다른 사람이어서였을까? 어쨌든 기대하지 못했던 그의 감미로운(이게 왠 빠순이..) 나레이션과 코믹한 요소들이 참 즐거웠다. 히히, 게다가 엄청 어리버리하고 순진해 보이기만 하던 주인공은 안경을 쓰고 콧수염을 기르니 완전 훈남으로 변신하였다. 역시 사람은 꾸미기 마련!

 난 그의 전작들을 참으로 무서워했었다. 내가 외면하고 싶어하는 평범한 인간의 잔인한 본성을 너무 마음 아프게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바람에 영화를 보고있기가 많이 힘들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그를, 그의 작품들을 최고로 평가하는 건 나 역시 인간은 악하다는 걸 매우 잘 알고 있고, 한 번 창작의 기회가 왔을 때에도 그 사실을 모티브로 삼은 데에 그 연유가 있을 것이다.

 아무튼 진짜 최고다.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더라, 내가 전혀 발견하지 못했었던 그의 색다른 재능과 유머를 발견한 건 완전 상상 외의 소득이었다.(이렇게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성에서 오는 충격 너무 좋아ㅠ)  어느 누가 자기 자신의 젊은 시절을 이처럼 나르시즘적이고 유쾌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완전 멋쟁이다.   

 

- 원래 글 길게 쓰지 못하는 성격인데 서재에서 글을 쓰다보니 말이 많아진다. 신기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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