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갈 일이 있어 반차를 쓰고 회사를 나섰다. 예약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근처 도서관으로 향했다. 쑤퉁의 단편집을 읽으면 시간이 딱 맞을 것 같았다. 일정이 있는 관계로 책등을 훑으며 제목을 소설 읽듯이 읽고 낯익은 소설을 발견하는 재미는 접어두었다. 바로 중국소설 코너로 가서 [이혼지침서]를 꺼내들었다. 편히 앉기 위해 구석진 곳에 있는 쇼파에 가서 앉았으나 그다지 편하지도 않고 찬바람이 들기도 해서 히터 옆자리 책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첫번째 이야기는 '처첩성군'.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천모모씨의 네번째 첩의 이야기였다. 중국의 부자들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부의 끝을 보여준다. 동시에 빈의 끝을 보여주기도 한다. 휘몰아치는 파도에 휩쓸려 둥실둥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부유함과 가난함의 달고 쓴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작가가 어떤 형태로 쓰든 상관 없이 부잣집 첩의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다. 마치 공주님이 나오는 동화를 읽는 것만 같다. 하지만 쑤퉁인데, 동화일리가 없지.

 

쑤퉁은 어찌하여 손을 살짝 대어도 금세 찢어질 것 같은 날카로운 여자의 마음을 그리 잘 아는지 매번 감탄할 뿐이다. 따지고 보면 남자의 마음이나, 여자의 마음이나, 한 끝 차이 인 것일까. 천모모씨의 네번째 첩은 대학교육을 받다가 집안이 기울어 취집을 한 여성인데, 첩으로 가더라도 부잣집을 선택하는 것을 당연시할 정도로 무심한 여자다. 소위 쿨해보이는.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천모모씨의 마음을 얻지 못해 안달복달하고,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며 예측불가능한 여자로 변해버린다. 가슴에 불을 품고 있으면서 얼음인 양 가장하니 그것이 폭발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을 그녀는 몰랐던 것일까.

 

은근하게 불안한 마음을 안고, 병원 가기 전에 읽기에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난 나보다 불행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을 필요가 있었다. 삶에 찌들어 사는게 사는게 아닌 그럼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나는 그들보다 나은 상황이라고, 살며 절대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던 상황과 부딪쳤지만 그래도 그녀보단 낫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매일 같이 같은 장소에서 우물을 바라보며 그 밑바닥을 꿈꾸는 그녀보다도 내가 최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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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철 2011-12-27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보다 불행한 사람의 이야기"를,

왜 멀리서 찾고 있어요. 제가 있잖아요.ㅋ

아... 다시 보니,
"삶에 찌들어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요했다"는 거구나... 오독했군.

저 아니네요.ㅋ

Forgettable. 2011-12-27 13:50   좋아요 0 | URL
그니까.
수철오빠는 이상오빠처럼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잖아요.
비록 오리처럼 겉으로는 고고해보이나 속으로는 오리발을 차고있을지는 몰라도....

다락방 2011-12-27 14:22   좋아요 0 | URL
뽀...백조가 아니라 오리...........라고 한거에요, 지금? ㅋㅋㅋㅋㅋ

Forgettable. 2011-12-27 15:35   좋아요 0 | URL
수철오빠한테 백조라고 하면 오빤 기분나빠할거에요.

다락방 2011-12-27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읽어볼래요. 마음을 얻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여자의 마음을 나도 읽고 싶어요. 나도 그랬던 때가 분명 있었으니까요.

Forgettable. 2011-12-27 13:52   좋아요 0 | URL
쑤퉁은 정말 모든 책 다 추천입니다.
한권도 버릴 게 없어요!
그런데 그 마음이 할아버지의 마음이라.. 공감이 되진 않을거에요. 다락방님이 부잣집에 첩으로 취집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게 아니라면.

다락방 2011-12-27 14:22   좋아요 0 | URL
난 언제나 왕의 첩이 되고싶었어요. 부인의 내조는 빡셀것 같아서.

Forgettable. 2011-12-27 15:3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그럼 얼른 읽어요 이번주 일요일이 1일!

잉크냄새 2011-12-27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에는 지금도 A4 용지의 크기로 전단지가 가끔 붙어있어요.
여자 얼굴이나 전신 사진 붙이고 신체사항 기술하고 뒤에 자신이 이런 문구를 붙이는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고 맨 마지막에 몸값이라고 해야 하나요, 어쨋든 금액이 적혀있어요.
읽어보면 대부분 잘 나가던 부친의 사업이 망하고 현재는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런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냥 같이 사는 조건, 애를 낳아주는 조건에 따라 금액이 다르게 적혀있어요.
그냥 부익부 빈익분이란 말에 떠올라서 적어봅니다.

Forgettable. 2011-12-27 15:38   좋아요 0 | URL
헉 그것이 정말이군요. 이여자도 부친의 사업이 망하고 자살하셔서 대학을 포기하고 시집을 가게 된거거든요. 정말이구나..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군요.
중국에 대해선 정말 아무 관심 없었는데.. 중국 문학을 접하면 접할수록 어떤 나라인가 자꾸 궁금해져요.
무궁무진한 것 같아요, 어떤가요, 지내보시니?!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한 중국 책이 많을텐데 우리나라엔 번역이 많이 안되어 있는 것 같아요.

잉크냄새 2011-12-28 13:36   좋아요 0 | URL
덧붙이자면 진위 여부는 알수 없지만 그 전단이 합법적임을 알려주기 위해 벌률회사의 공증을 거쳤다는 문구도 마지막에 적혀 있어요.

중국은 뭐랄까요. 그 넓은 땅덩이 만큼이나 다양합니다. 음식, 생활 습관...기타 등등 엄청나게 많은 문화가 공존합니다.

Forgettable. 2011-12-28 16:26   좋아요 0 | URL
전단을 붙이는 것이 합법적인 것이란걸까요. 아니면 전단에 쓰인 내용이 검증받았단 것일까요?
관광으로 사는거 말고, 그 언어를 사용하면서 그 문화에 녹아 살아보고 싶어요.
인도도 그렇고 중국도 그렇고.

한국 한번 안오세요? 오시면 술한잔 하시죠?! ^^

잉크냄새 2011-12-29 10:03   좋아요 0 | URL
당연히 당사자에 대한 공증이죠.
출신이라든지, 배경이라든지 하는 당사자와 관련하여 쓰여진 글이 거짓이 아님을 공증받았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은,,,자주 못가게 되네요.ㅎㅎ

라로 2011-12-27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왜 글자가 잘 안 보일까요???
그나저나 취직한거에요???축하해요(뒷북이라도 이해를,,ㅜㅜ)
저도 통 알라딘 뜸했거든요,,^^;;
그나저나 대전엔 언제 오시나요??

Forgettable. 2011-12-27 15:39   좋아요 0 | URL
아 폰트를 맑은 고딕으로 해봤는데.. 나비님 컴에 그폰트가 안깔려있나봐요!!
그럼 깨져서 보일거에요 ㅠ

저도 알라딘 요즘 완전 뜸해서...
일이 좀 한가해져서 다시 기웃거리고 있어요. 글 쓰는 것도 관성, 안쓰는 것도 관성인 것 같아요.
초대해주셔야 가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