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 다녀왔다. 에드먼튼에 오기 전에 잠시 여행삼아 들렀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다녀서였는지, 한 번 경험했던 도시여서였는지, 4개월간의 시골 생활을 한 후에 간 도시여서였는지 달랐다. 새벽 2시까지 하는 한국 펍에서 소주도 마셔보고, 온갖 다양한 인종들이 모인 클럽에서 신나게 춤도 춰보고, 단 하루도 새벽 4시 전에 잠든 날 없이 열심히, 여한 없이, 있는 돈 없는 돈 펑펑 써대면서 아주 오랜만에 탈진할 때까지 놀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3년 동안 사귄 애인과 헤어지고, 사랑하지는 않지만 좋기는 한 새 애인도 생겼고, 싫어서 매일같이 울상이었던 회사에도 적응해서 일이 재밌다고 하고, 나보다 영어도 잘하면서 자신감은 상실했고, 아이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고, 살이 많이 빠졌고, 젊음이 아깝다고 계속 말하지만 미래 '때문에' 다시 외국에 나올 수 없다고 했다. 많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우린 다른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1달러짜리 피자 하나씩 사들고 바다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맥주를 몰래몰래 마시며(캐나다에서 길거리 음주는 불법이다.) 신나한다던가, 내가 먹고 싶다고 노래노래를 불렀던 매운 보쌈을 먹고 너무 매워서 둘다 얼굴이 벌개져서는 웃겨서 매워서 함께 정신을 못차린다던가, 작은 낯설음에 크게 행복해한다던가, 행복하다고 수백번 말해본다던가, 비치에 누워 노래를 들으며 여유를 즐긴다던가, 거의 기절할 듯이 피곤했으면서도 프라이데이 나잇을 미친듯 춤추며 보낸다던가, 하며 여행을 즐길 줄 아는 내 친구는 내 친구였다.
친구와 함께 보낸 4박 5일은 거의 40일간의 여정처럼 느껴질 정도로 길었다. 짧은 순간의 여유를 함께 즐기고 이거저거 모두 해야한다는 압박감 없이 함께 걷고, 시간을 풍족하게 보내서인 것 같다. 얼마 전 아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여행에서는 혼자이고 싶어서 안달이었는데, 이번엔 친구와 헤어지고 비행기 안에서 눈을 감으니 친구의 목소리가, 친구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져 깜짝 놀라 눈을 떠볼 정도로 함께여서 좋았다.
말로만 꿈꾸는 29살의 뉴질랜드 워홀을 함께하지 못하게 될거라 이젠 거의 확신한다. 예전엔 어느 정도 희망이 있었는데 친구와 밀렸던 많은 이야기를 나눈 지금은 아마 안될거란 생각이다. 나 역시 나의 미래가 어찌될 지 혼란스러울 뿐이니. 하지만 그 목적지가 다르더라도 같은 곳을 바라보지 않더라도 함께 걸었으면 좋겠다. 잠시 덮어두고 싶은 추억만 자꾸 덮쳐오는 요즘, 잠시 그것들을 가라앉혀줄 평온한 추억이 생겨 다행이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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