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보면 내 삶을 완성시키는 것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는 어떤 것'이 아닐까 싶다. 언제고 나는 그 어떤 것을 기다리고 추구하고 희망하며 그것을 염원해왔고 그것을 기다리는 시간만큼 알찬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은 가져야만 하는 성격상 그것을 갖는 것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행복했다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건만 그 딜레마가 이제서야 새삼스럽게도 낯선 건 왜일까. 

오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서 요즘들어 나를 계속해서 괴롭히는 것에 대해 조금 정리를 해보았다. 1년여를 기다려왔던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 왜 행복하지 않은지. 아무리 과거가 자기 기억하고 싶은 대로 변한다고는 하지만 당시에는 지옥같다고 생각했던 그 생활이 지금 돌이켜보면 나쁘지 않았던 것만 같은 건 자신에 대한 신뢰가 걸린 중요한 문제다. 나는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지 않은지? 꿈꿔왔던 생활 그대로인데 뭐가 마음에 안드는지? 인생을 걸었다고 생각했던 그 꿈이 이렇게나 부질없었던 것인지?

얼마 전 어떤 분이 내게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주 단호하게 없다고 대답했다. 관계가 끝나는 동시에 감정을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시간만 있다면 잊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요 며칠간 과거를 자꾸 돌이켜보니 잊지 못하는 사람 하나 없는게 정말이지 텅 비어보이는 거였다. 나는 쉽게 놓아버린다. 그래서 뭐 하나 대단히 잘하는 것도 없다. 중간까지만 해보고는 만족하거나, 포기한다. 만화도, 책도, 카메라도, 영화도, 수학 공부도, 커피도, 일도, 모두가 그랬다. 그러니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 지금은 또 다시 기다릴 다른 것을 찾아야 할 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것을 찾지 않을 것이다. 요거트 가게에서 열심히 일하고, 무뚝뚝한 코워커에게 애교를 좀 더 부려보고, 웃긴것만 좋아하는 코워커에게 있지도 않은 유머감각을 발휘해보고, 그마저도 안되면 많이 웃어주거나 노래하거나 춤을 춰봐야지. 계속해서 조금씩이나마 책을 읽을 것이고, 계속해서 세컨잡을 구해볼 것이고, 계속해서 잠도 많이 잘 거다. 그리고 한국도 계속해서 그리워할 거다. 이번에는 내가 꿈꿔왔던 생활이 부질없는 것이 아니라는 걸 확신할 때까지 '기다릴 무엇'을 찾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속속들이 생겨나고 있긴 하지만. 이를테면 교고쿠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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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0-07-20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예술입니다. 기다림이라는 제목과도 잘 어울리는것 같네요.

Forgettable. 2010-07-20 17:48   좋아요 0 | URL
오 반가운 잉크냄새님의 덧글!!!!!!!!!!
흐흐 사실 이 사진은 새로운 배경 최종후보까지 올랐다가 탈락했던 사진이랍니다. 캐나다는 침엽수가 참 예뻐요. ^^

순오기 2010-07-20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Forgettable. 2010-07-22 03:55   좋아요 0 | URL
그렇기 때문에 자꾸 현실에 충실하려 노력중이에요. 이런 저런 생각이 많네요 요즘 ^^
순오기님도 여전히 잘 지내시죠?

하이드 2010-07-20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머, 사진으로 밥벌어먹는 사람 사진 같다.
볼때마다 이 아이는 왜 이미지출처를 표시하지 않는것이야? 하는 마음

왜 행복하지 않습니까? 지나고 보면, 지금이 많이많이 그리워질꺼야. 한국에 오면 더더더
한국에서 가는 교코쿠도따위 말고, 카르페 디엠! 고민도 좋고, 좌절도 불안도 좋다. 괴롭지 말고, 즐기삼.
잘 웃어서 이쁜 아이가 얼굴 찌그리고 있는건 아니겠지? 이렇게 글로 해소하고, 방실방실 웃는 캐나다 생활 되기를 바랍니다.

술 한 잔 하자. 하고 싶지만, 어디 중간에서 만날 곳이 없네 그려.

Forgettable. 2010-07-22 03:59   좋아요 0 | URL
흐흐 예전에는 마우스 오른쪽 클릭 안되는 태그라도 해놨었는데 요즘은 영 귀찮아서;;;;
그리고 그 정도의 가치도 없는 것 같아요. 나중에 사진으로 돈벌어 먹고 살게 되면 그 때 이미지 출처 찍어놓죠 뭐. (이러고 서명 디자인 ㄱㄱ)

지나고보면 지금이 세계에서 가장 그리울 시기일 거에요. 요즘은 마음이 좀 편해졌달까;; 그래서 쓸데없는 고민들이 자꾸 치고 올라오는데 잘 지내고 있어요. 가끔 위스키를 너무 많이 흡입해서 행오버에 시달리긴 하지만;;;;;;;;;

중간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만나는 건 어떠냐고 묻고 싶지만 진짜 이건 감 너무 떨어지는 개그라.. 휴.
사우스파크라도 보며 유머감각을 다져야겠어요;;

무해한모리군 2010-07-21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정말 멋지다.

사람이 식물처럼 직선으로 쭉쭉 크는게 아니라 제자리를 빙빙 돌면서 넓어도 지고, 깊어도 지는게 아니겠냐는 생각을 해봐요. 원하는 곳에 나를 둘 수 있는 사람, 멋지다 뽀! 건강 아무쪼록 조심하고, 약간의 적막과 여유도 충분히 즐기기를 바라오. (이미 그런듯 보이지만)

아 보고싶네요.

Forgettable. 2010-07-22 04:02   좋아요 0 | URL
오! 꿈보다 해석! ㅋㅋㅋ 제자리를 돌며 넓어지고 깊어지는 식물같은 사람이라니. 괜춘괜춘. 흐흐
요즘의 최대 고민은 너무 게을러져서인데요, 좀 다잡아 보려고요;;;;;;

휘모리님. 꽃배달 엄청 부러워요. ㅋㅋ 수많은 애인을 만나봤지만 꽃배달.. 아 맞다 저는 애인이 학교로 직접 배달해준 꽃다발 받아봤네요! (이게 뭐 -0-)

저도 보고싶어요. 그 화장실을 잊을 수가 없네요. ㅋㅋㅋㅋㅋ

2010-07-21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영화 속 장면같아요. 언덕너머 머리만 빼꼼 내민 나무들이 있는 곳은 또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궁금하네요. 괜히 막 푸른 호수와 널따란 초원, 밝은 미래가 펼쳐져 있을 것 같은 기분. 근데 흑백이라... 내 인생에 미래따윈 없다... 이런 거였나; 아 잘나가다 왜 갑자기 우울해지지;;

머리 속에 맴도는 고민과 걱정들을 정리할 수 있다니 부럽네요. 전 늘 그럴 시간들을 뒤로 미루기만 하다가, 점점 고민과 두통이 차올라서, 머리는 무거워지고 목은 뻣뻣해지기만 하네요. 그래서 여행을 가거나, 타지로 훌쩍 떠나가고 싶어요. 도심의 전봇대처럼 이리저리 엉킨 선들을 모조리 뽑아버리고, 혼자가 되서 차근차근 정리할 수 있게...

Forgettable. 2010-07-22 04:07   좋아요 0 | URL
흑백 사진이 좋은 건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죠. GRD는 진짜 흑백 보정안해도 너무 예쁘게 나와요. 저 길 지날때 정말 행복했어요. 후후 원래 차만 타면 자는데 잠을 거의 잘 수가 없을 정도로 창밖의 풍경이 매혹적이더군요.

음. 실은 정리하려고 노력하겠다는 것이지 실제로 정리가 됐다거나 하진 않았네요. 제주도 가신다면서요. 제주도 좋음. ㅋㅋ 가서 회도 먹고 드라이브도 하고 그러면 마음에 드리워진 어둠의 선들이 조금은 걷어진 느낌일거에요. 전 우도에서 자전거탔을 때 엄청나게 좋았었어요.

여튼 마사지 배워서 어디에 쓰삼. 목이 뻣뻣하면 마사지 연습해요. 중이 제 머리 못깎나;;;

Demian 2010-07-24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쉽게 놓아버린다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자신이 좋아하는 만큼 후회없이 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한계는 스스로 만들고 도전한다고 하지만, 작은 것에도 만족해하는 Forgettable님의 삶이 부족할꺼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나저나, 사진 직접 찍으신거예요? 완전 깜~~짝 놀랐어요. 우왕..+_+

Forgettable. 2010-07-25 09:57   좋아요 0 | URL
말이나 생각이 한끝 차이라서 기분 좋은 날은 내가 할 수 있었던 만큼 후회없이 했다가 되고, 우울한 날은 이도저도 아닌게 되더라고요. 데미안님 언제나 밝고 힘차서 좋아용. 댓글보고 아침에 기분 무척 좋았어요. ^^

이 사진 반응이 의외로 좋네요! 사실 이런 풍경은 외곽으로 10분만 차타고 나가도 널린 풍경이라;;; 부끄럽습니다.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