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는 죽은 듯이 잠만 잤고,
오늘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소용돌이치는 마음을 달래고자 교고쿠 나츠히코의 [망량의 상자]를 꺼냈기 때문. 나.. 망한거지? 

2.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사실은 한시간쯤 오르다가 내려왔다. 겨울눈이 모두 녹기 시작해서 자칫하다가는 옷버리고 허리상할 것 같아서였다. 등산화는 이미 버렸고. 같이 산에 오른 이와는 오랜만에 만나 한가로운 잡담을 나누며 봄공기를 기분 좋게 맞았다. 내려와서는 뽕잎 샤브샤브를 술 없이 맛나게 먹었고, 커피를 마시며, 우리가 술이 아닌 커피를 마시는 날도 오는구나. 라며 감탄했다.  

3. 이 얘기를 쓰려던게 아닌데. 

책을 덮고 갑자기 떠오른 망상을 기록하기 위해 컴퓨터를 켜는 동안 쓰려던 이야기를 잊고 말았다. 

4. 어느 분의 서재에서 알라딘이 '네이버 블로그'스러워지는 듯하단 댓글을 봤다.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떠났지만, 여전히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남아있는데.. 란 반발감이 들었다. 왜인지 '네이버 블로그 스럽다'는 말은 그 분 스스로도 폄하하는 말은 아니라고 하셨지만 폄하처럼 보였다. 내가 갖고 있는 이미지가 안좋아서일까. 그 곳에도 사유가 깊고 다양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텐데, 포털 사이트의 이미지가 그렇게 중요한가보다.   

어쩌면 나의 가벼운 글들도 그에 일조하고 있다는 자책감이 아파서였을 수도 있겠다. 

5. 지난 밤에 꿈을 꿨다. 다시 필리핀에 도착했다. 여윳돈도 없어서 모든 것을 카드결제로 해야 했고, 이왕 온 거 그냥 지르자며 보름 후에 돌아갈지, 5일만 있다가 돌아갈지,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끊으며 무척 고민했다. 통장의 돈을 생각하면서 좋은 호텔에서 계속해서 머물지, 조금 더 싼 호텔에서 머물지도 고민했다. 그리고선 아무말 없이 훌쩍 떠나왔다며 "엄마, 나 필리핀이야."라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전화기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며 고민했다.  

결국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잠에서 깼다. 어쩜 꿈에서마저.

6. 내가 기꺼이 이불을 털고 일어나 쓰고 싶었던, 새벽에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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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2 0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23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0-02-22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망량의 상자는 우부메의 여름보다, 광골의 꿈보다 좋았어요, 저는.

2. 네, 커피를 마시는 날도 오지요. 그렇게 늙어가는 겁니다. ( '')

3. 음, 글이 가벼우면 안되나요? 저는 무거운 글을 쓸 수가 없는데요. 가벼운글은 가벼운 글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4. 저도 꿈을 꿨어요. 굉장히 고민하던 것이었는데, 꿈에서 상대가 제게 그건 이런거였어, 라고 확신을 주는 그런 꿈이요. 역시, 꿈이었어요.

5. 잠은 그래서 좀 잤나요? 월요일이에요.

Forgettable. 2010-02-23 10:53   좋아요 0 | URL
1. 저 지금 엄청 아껴읽고 있는데도 1권 다 읽어가요. 그렇다니 광골의 꿈을 먼저 읽을걸;;

2. 늙.. 늙는다니! 커피와 나이듦에 대해서 좀 더 고려해보아야겠어요.

3. 무거운 글이라는게 얼마나 깊은 성찰이 담겨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그 무게가 달라진다고 봐요. 나오는 글이 쉽게 읽히든, 어려워서 읽을 수 없든 이런건 상관없죠. 서재엔 아직 무거운 글을 쓰는 사람이 많다고 보는데, 네이버 블로그는 보여주기,, 가 목적이라고 느껴져서요. 아, 그 수많은 정보라니. 물론 나쁜 것은 아닙니다만.. 모르겠어요.

4. 전 어째 그렇게 발 동동 구르며 걱정하는 여행 꿈만 꾸는지 모르겠어요;

5. 잠은 잘 못자고 오랜만에 학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피곤해보인다는 말만 들었죠 ㅠ

무해한모리군 2010-02-22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희 친구들은 커피를 마시게 된지 몇 년은 되었습니다 ㅎㅎㅎ

음 네이버 블로그와 다른 점은 여전히 긴 글이 많고, 영상보다 텍스트 중심이라는 면에서 확실히 다른 듯 합니다만..
그 분께는 이 곳이 참으로 더 특별했던 듯 합니다.

피곤하겠네요.
그래도 씩씩한 한주되요 ^^

Forgettable. 2010-02-23 10:55   좋아요 0 | URL
전 차파, 술파로 친구가 나뉘어있어서요. ㅋㅋ

저 씩씩한 한주 되기엔 너무 업무의 과중함에 스트레스를 떠안고 있습니다. 어서 금요일이 와서 모든 것이 끝나기만 바라고 있을 뿐이에요.

휘모리님은 힘찬 한주 보내고 계신가요?

뷰리풀말미잘 2010-02-22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였는데요?! 아, 정말 요즘 사람들 페이퍼 쓰는 태도 맘에 안 들어요. 내가 하고싶은 말이 이 말이다. 이 말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왜 말을 못하냐고! 왜 말을 못해! 왜!?

Arch 2010-02-23 01:34   좋아요 0 | URL
그저 단순히 기억 생략쯤 될 것 같은데, 뽀님, 추묘꾼 화났어요 ㅋㅋ

뽀님, 나도 그 댓글을 봤는데요. 폄하보다는 아쉬워서, 예전 마을 같은 분위기보다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기만 하다는 느낌을 받아서란 느낌이 들었는데. 그리고 뽀님 글이 가벼우면, 전 날아다니게요. ^^ 자학으로 팬몰이하려는 계획이라면 말예요. 한참 전에 써본 결과, 별다른 효과가 없다고 아뢰오~

Forgettable. 2010-02-23 10:57   좋아요 0 | URL
왜냐면.. 내가 배운게 이것 뿐이니까! 도대체 사람들이말이야, 비밀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저도 단지 알콜성치매증상을 좀 신비화 해봤네염. ㅋㅋㅋ

추묘꾼 화나도 하나도 안무서워요. 왜냐면 난 고양이가 아니니깐 ㅎㅎㅎㅎ

아치님 요새 글이 많이 좋아졌는걸요. 맹추격하고 있삼. 예전엔 서재가 좀 폐쇄적인 면이 없지 않았죠. 나름의 장점이 있다고 봐요. 이 얘기는 나중에 좀 더 해보도록 하지요~

L.SHIN 2010-02-22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 '여기는 이래야만 돼'라는 사고 발상이 웃기네요.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의 글들에 나는 한 번도 '가볍다'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뭔가 좀 있어 보이고 쓸데없이 어려운 말 들먹이는 것'만이 '지식인'이라고 한다면 그것만큼 멍청한 일이 또
있을까요? 어떤 형태로든 지식은 나누어야 값진 것이지 혼자의 유식함을 자랑하는 글 따위 지식이라고 할 수 없죠.

그 '어느 분'이 누군지 알고 싶네요. 본인은 얼마나 진중하게 잘 쓰는지.

5. 저도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말 하지 않고 유럽으로 가서는, 로밍된 핸드폰으로 누군가
전화하면 이렇게 외치는 거죠. '그런데 오늘은 갈 수 없어. 아니, 오늘 안에. 여긴 파리거든' ..ㅎㅎㅎ

Forgettable. 2010-02-23 11:09   좋아요 0 | URL
가벼운 글도 물론 나름의 의미가 있죠, 취향이 아닐까요..
알라딘도 책읽는 사람이 모여있는 공간이고 그로인해 똑똑한 사람들이 많았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지성이 담긴 글을 쓰던 분이 알라딘을 많이 떠났다고 해서 이 공간의 성격(그러니까, 따뜻함이라고 하면 될까요)이 바뀐 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여튼 다들 의견이 분분하네요.

왠지 뒷다마 하는 것 같아서 껄끄럽기도 하고, 지금 어제 마신 술이 덜깨서 헛소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전 그래서 해외여행 갈 때 왠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가는게 좋아요. 히히 '나 오늘 갈 수 없어. 여긴 파리거든' 이거 좋네요. 아주 좋아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