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날이 되니 슬슬 한가해지고 압박감도 줄었다. 제대로 된 후기를 써볼까 하지만 오늘은 카메라를 두고 왔다능거-
난 내가 뭘 자꾸 놓고다니는 걸 심지어 잘 모르고 있었는데 최근에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수많은 물건들을 이미 잃어버렸고,
잃어버렸단 걸 까먹었고,
주위사람들의 배려로 잃어버릴 뻔 했던 것들을 가까스로 챙겨왔고,
이런 배려와 보살핌을 까먹어왔단 사실을 -_-
어딘가로 떠날 땐 언제나 불안해하면서 짐을 싸는데,
여행갈 땐 뭐 그냥저냥 없는대로 살면 되니까 괜찮은데 출장갈 땐 불안과 스트레스가 굉장히 과도하다. 그러면서도 전날 12시 넘어서 짐을 싸기 시작한다는 점은 분명 고쳐야 할 점이겠지.
제주도 출장이 무려 1주일로 잡혀있으면서도 기꺼이 그 토요일을 군산에서 보내겠다는 자기성찰이 배제된 계획은 극도의 불안함과 스트레스로 점철되었다. 지하철역까지는 아빠가 태워줬으나 수원역으로 가는 집근처 역 계단을 오르면서부터 땀과 함께 후회를 흘리기 시작했다. 겨우겨우 힘겹게 기차를 타니, 아이둘을 대동한 아주머니가 간절한 눈망울로 자리를 교환해달라고 부탁한다. 보니, 3명의 여자아이가 마주보고 앉아 시끄럽게 떠들고 있고 나머지 한자리가 애처롭게 날 바라보고 있다. 아줌마를 다시 보니 아이들이랑 함께 있어야 하겠다는데 어떻게 해.. ㅠㅠ
라고 생각하며 마주보고 떠드는 애들에게 물었다.
- 이러고 갈거에요?
- 녜에~
Oh, shit, 시끄러운건 둘째치고 낯선사람과 무릎을 맞대고 가야한다니, 좁아서 허리 뿌러지는 줄 알았다.
어영부영 도착하니 시원한 군산의 시골바람이 날 기다리고 있어서 혼자서 사진찍으며 군산역을 돌아다니고 있으려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아치님께 전화와서 가보니 사진에서 튀어나온 아이들이 낯도 안가리며 뛰어들었다. 오랜만에 본 아치님과 처음 뵌 순오기님과 약간 어색해서 아이들과 놀기 시작했는데 재밌다 -_-;
참기 힘든 정도의 수위가 되면 아치님이 막아주셔서 큰 탈없이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았다. 아이들이랑 노는게 더 재미있었다고 하면 미움받을까-
난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는데, 알고 보면 예쁘고 울지만 않으면 애들이 좋은 것 같다. 너무 나쁘지만^^; 애기들이 울면 같이 눈물이 나서; 마로가 울 땐 내 어렸을 때 혼나고 울음 참던 모습이 자꾸 떠올라서 마음이 아팠다. ㅠㅠ
순오기님은 역시 젊게 사시는 에너지가 넘치셨고, 조선인님은 예뻤다;;; 근데 선생님 같으셨다- ㅎㅎ
예전에 마로가 태권도를 했다는 페이퍼를 본 적이 있어서 그 얘길 해보고 싶었는데 까먹었다. ^^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애들이랑 뛰어다니고, 땀을 뻘뻘 흘렸더니 어른분들(?)과는 얘기를 거의 못해서 같이 자고 가자고 졸라서 붙잡아두었다. (나는 군산공항에 뱅기를 예약해둔 상태) 목살을 구워먹고, 술김에 용기내어 휘모리님께 평소 궁금했던 한가지를 질문하고, 절대 아니란 대답을 듣고 ㅋㅋㅋ 정말일까 궁금해하며 세꼬시 집엘.. 갔다. 세꼬시.. 세꼬시.. 를 먹진 않았고 전어를 먹었는데, 윽 가시있는 생선회는 정말이지 못먹겠다.
그러다 정군님께 까먹지 말라고 꼭꼭 부탁해두고 목살집에 둔 충전기를(난 백퍼 까먹을 걸 이제는 안다) 놓고 와서 머큐리님과 택시타고 가질러 갔다왔다. 이때서야 비로소 머큐리님과 안면을 텄다. 그때까진 온에서 친분이 있는만큼 뻘쭘했는데- 난 처음에 내가 온의 이미지와 너무 달라서 실망해서 나한테 말 안거는 줄 알았다.
이런저런 지적질과 놀림과 진지한 이야기들을 하며 술을 먹다 보니 난 취해서 집에 가고싶어졌다. 애마냥 집에 가자고 징징댔더니 다들 일어서주셨다. 오,, 쓰다보니 나 정말 진상이잖아? 항상 이런식- 놀자고 붙잡아놓고 제일 먼저 집에 가자고;;;
아치님 손을 잡고 흔들어댔더니 너무 싫어하셔서 계속 흔들었다. 음화하하-
+ 이런저런 지적질과 놀림과 진지한 얘기는 재밌었다. 특히 정군님의 이론에 대공감을 하며 친근감이 생겼다. 라님의 연애역사는 의외였으나 얘길 듣다보니 좀 안쓰럽기도 했고.. 아치님은 의외로 까칠한 구석이 있으셔서 ㅎㅎ 놀라서 다음날 열심히 거들었다. 평소 같이 술마시고 싶은 알라디너 1,2위를 다투시는 휘모리님은 마주보고 앉아있는 게 마냥 좋을뿐 ㅎㅎ
찜질방에 가서 자는데, 먼저 씻고 나가신 휘모리님을 찾아 유령처럼 부유하다가 혼자 잤다. 춥고 덥고 해서 왔다갔다 했는데 더 자고싶은데 다들 일찍 일어나셔서 겨우겨우 씻고 나가서 콩나물해장국을 먹었다. 안넘어가서 먹느라 고생했다. 나의 해장은 콩나물국밥이 아닌 숙면이란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콩나물밥을 먹고 영화이야기가 나와서 아이스 에이지3을 보았다. 난 요가학원이나 오펀도 재밌을 것 같았는데 다들 겁이 많으신 관계로 흐흐 다 자라신 분들께서 ㅋㅋ 엄청 재밌고 신나게 봤는데, 휘모리님과 라님이 머큐리님께 사죄해서.. 재밌다고 우겨봤지만 별 소용 없었다. 옥찌들과 같이 보지 못한게 한이었다.!!!
이번 여행의 테마는 먹고마시고수다떨기- 였기 때문에 매우 만족이었다. 낯선 '다양한 연령, 다양한 지역, 다양한 성별'의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건 분명 엄청 스트레스인 일이지만 낯선 도시, 누군가의 고향인 곳이었던 군산이라 생각보다 무척 즐거웠다. 둘이 있을 땐 말을 많이 하지만 여럿이 있을 땐 좀처럼 끼어들지를 못해서 토론 면접에서 항상 손해였었는데,,,
다만 출장을 목전에 뒀기 때문에 좀 더 마음편히 있지 못해서 아쉬웠다. 심장의 쫄깃쫄깃함은 집떠나면 항상 느끼는 불쾌한 감정인데 군산에서 시시때때로 이유없이 급습해서 괴로웠다는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