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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 자유, 자연, 반권력의 정신
박홍규 지음 / 이학사 / 2003년 6월
평점 :
...평전이 자기 색깔을 갖추어갔던게 어느 때부터 였을까. 많은 전기물이 출판되어왔었지만, 그것은 객관을 '가장'한 인물찬양이었지 진정한 한 인물에 대한 객관적인 기록물은 아니었다. 물론 전기를 쓴다는 것 자체가 작가가 해당인물에 대한 어느 정도의 애정이 없는 이상 이루어질 수 없는 작업이니 어느정도 인간적인 행위라고 봐줄만하지만...
내 기억으로 평전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은 조갑제가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는 박정희에 대한 용비어천가책을 낸 이후부터 였던 것 같다.(개념의 등장까지는 아니더라도, 평전이라는 개념이 일반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된 시기는) 물론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는 책이 본격적인 의미의 평전이었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그 책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박정희에 대한 본격적인 평전들이 쏟아졌다는 것이다. 박상천이 썼던 '알몸 박정희', 탁석산의 '한국인의 정체성'과 더불어 책세상문고를 세상에 알렸던 전재호의'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는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정희와 같이 그의 일생이나, 업적만의 나열만으로 어떤 메시지를 이끌어낼 수 없는 인물을 다룰 경우 그에 대한 저자의 평가,행위에 대한 해석은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전기물보다는 평전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게 훨씬 더 수월했으리라.
...글의 방향이 조금 어긋났는데, 어쨋든.. 그러한 평전이라는 개념의 일반화와는 무관하게, 평전작업에 열중인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이 책의 저자인 박홍규이다. 그는 생태주의사회주의자였던 윌리엄 모리스에 대한 평전을 낸 것을 시작으로, 에리히 프롬, 루쉰, 베토벤, 고호, 까뮈, 카프카, 오노레 도미에같은 인물에 대한 평전을 써냈다. 얼핏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인물들이지만 박홍규는 그 인물들의 삶속에서 자신이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는 생각과의 공통점을 발견해 낸다. 그 키워드는 시대에 대한 저항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일종의 아나키즘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국내에서 흔치 않은 아나키스트인 박홍규는 일반적으로 평가가 거의 확정되었다고 보여지는 위인들의 삶속에서 그런 일반적인 평가들이 미처 끄집어내지 못했던 아나키즘적 면모들을 끄집어 낸다. 그것은 내가 읽은 조지오웰의 평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그의 평전의 방향은 두가지로 갈린다. 하나는 그 인물에게 내려진 일반적 평가의 오류들을 짚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인물의 삶이 지닌 아나키즘적 가치를 도출해내는 것이다. 이책에서는 그러한 방향성이 좀더 확실하게 드러나는데, 그것은 그가 서문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에서 조지오웰에 대한 평가가 '반공주의 소설가'로 거의 확실히 굳어져왔기 때문이고, 그로인해 조지오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틀이 열릴 공간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평전을 통해 조지오웰의 아나키스트적 면모를 강조하고, 그 관점에서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동물농장'과 '1984'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의도에 비해 평전의 분량이 조금 부족하지 않나 싶지만 대체로 내용은 그 의도에 충실하며, 비판의 논리도 날이 서있다.
...어느새 박홍규의 작업은 세간에 알려져 이제는 '한국의 슈테판 츠바이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이 평가는 그의 작업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지만, 부분적으로는 그의 작업을 오독하는 것이기도 하다. 슈테판 츠바이크와는 달리 박홍규는 자신의 사상을 분명히 명시하면서 평전작업을 수행하고 있으니까. 츠바이크가 보여주었던 것이 한 개개인의 아름다윤 초상화라면, 박홍규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일종의 개개인들이 사상의 바탕위에 점점이 박혀있는 인물들을 끄집어내고 그리는 벽화이다. 그의 다른 평전들도 읽어봐야할 필요성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