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빨간 신호등 - 원칙과 소신을 지키기 위한 자기성찰의 거울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홍세화의 책을 완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90년대 중반 , 소위 교양인이라면 필독서로 읽었을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는 거충거충 읽었고, 마찬가지로 꽤나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던 '쎄느강...'이나 '악역을...' 역시 대충읽기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홍세화의 메시지나 그의 사상을 아주 몰랐다고 할 수도 없는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가 몇몇 칼럼니스트들과 연대를 이루어 '아웃사이더'를 창간한 이후로 줄곧 그것을 즐겨봤으며 그를 모델로 하여 쓰여진듯한 고종석의 '서유기'라던가 '아빠와 크레파스'같은 소설을 통해 홍세화란 인물의 또 다른 면에 대해 몇가지 단상을 해보기도 했으니까.
...굳이 변명하자면 난 그가 프랑스에서 그의 책들을 썼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그 책들이 많은 부분 우리나라사회에 대한 비판에 할애되었다는 것에 대해 기질적인 반감이 들었던 것 같다. 프랑스와 같은 선진국의 공기를 마시고 있는 자가(그것이 설령 망명객일지라도) 이 후진국에 날카로운 비판의 칼을 내세운 다는 것이 당시의 내 미감을 거슬렀던 것이다. 그 미감은 적잖이 속단이었고, 또 경솔한 것이었다. 조금만 더 생각했더라면, 망명객의 위치에 대해 좀더 신경을 기울였더라면, 그리고 그런 선진국의 공기에 매혹되어 자신이 쫓겨난 나라를 저주하는 것이 아닌 애정어린 비판을 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음을 알았더라면 나는 그의 전작들을 좀더 세밀하게 읽었을것이며 좀더 많은 애정을 가졌을 것이다.
...'빨간 신호등'은 99년부터 2003년 까지 한겨레 신문에 쓰여진 칼럼들을 실은 모음집이다. 4년이라는 시간은 당대에 대해 끊임없는 목소리를 내는 지식인들에게 있어 꽤나 긴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일정하다. 그는 그의 망명생활을 통해 경험했던 프랑스 개인주의의 미덕, 그리고 사민주의의 기반을 활용하여 이 나라의 각 사안들에 대해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다. 일반적으로 칼럼이 잡문적 성격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칼럼니스트들의 관심사안에 종속되어 생각외로 여러 사안을 다루지 못하는 반면에, 홍세화의 칼럼들은 이 사회의 다양한 면들을 파헤친다. 국가보안법 문제부터, 표현의 자유문제까지, 노동자 파업부터 교육정책까지 비판의 칼날은 닿는데, 세상의 모든 문제들을 자기 일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고전적인 지식인상에 홍세화가 얼마나 충실한지를 엿볼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는 그의 비판에 대해 대체로 공감하며 특히나 교육분야에 관한 그의 의견에는 거의 완전히 동의했다. 대학의 평준화없이는 이 나라의 사교육비 절감이라던지, 정상적인 교육체계의 성립은 불가능하다는 그의 견해에 나는 적극적인 공감을 표하고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 변질될 이 나라의 교육체계에 언제까지나 유효한 메시지일꺼라 생각하고 있다. 물론 그의 비판이 이 나라 교육정책에 얼만큼 반영될지는 미지수이지만(솔직히 비관적이지만). 교육에 관한 그의 글들은 그가 제한된 사회주의자가 아닌 온전한 사회주의자임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글들이기도 하다. 그의 글들은 예전에 고종석이 지적했듯이, 부분적으로 자유주의자들의 리버럴함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 리버럴함이 홍세화화 이념의 본질적인 부분이 아닌, 무수한 문제점을 지닌 이 사회의 추악함을 조금이라도 깨끗하게 하기위한 하나의 도구임을 그의 교육관련 칼럼들은 보여주고 있다. 그러고보니 그러한 리버럴함과 사회주의적 신념을 '한목소리'로 녹여낼 수 있다는 것도 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것이 홍세화를 '노쇠한 좌파,친불주의자'가 아닌 '기품있는 전사'로 남아있게 하는 하나의 자양분인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