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nedikt von Nursia
 

가톨릭 교회에서 성베네딕트의 권위는 상당하다. 그의 이름으로 교황직을 수행한 이만해도 16명에 이르기 때문이다(현재 교황명도 '베네딕트'아니던가). 하지만 서양사에서 그가 중요하게 평가되는 것은 그러한 '권위'에 앞서 서구의 수도원 제도를 실질적으로 창시한 이로 꼽히기 때문이다.   

여느 수도자들처럼 베네딕트의 출생이나 어린시절에 관한 자료는 흔치 않으며, 확실치 않다. 그레고리우스 1세의 전기에 의하면 그는 480년경 태어났으며, 누르시아의 어느 명문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청년시절, 그는 로마에 가서 공부하게 되었는데, 그의 로마행은 그에게 새로운 전기를 마련 
   주었다. 그는 로마 시민들의 생활태도에 환멸을 느꼈고, 공부를 포기한 뒤 동굴 수도의 생활에 투신했다. 동료 수사들과의 생활에서 그는 또 다른 사실을 발견했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는 문제가 없으나 이웃을 사랑하는 데 있어 인간은 너무나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는 몬테 카시노 수도원을 설립한다. 그는 수도원을 일컬어 학교라 부르기도 했는데, 이러한 발언은 이집트에 기원을 둔 당대의 수도자들의 전통과 일정한 차이를 갖는다.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 이것은 베네딕트의 대표적인 권면이자, 이후 베네딕트 수도회를 특징짓는 것이기도 하다(이와 상대적으로 도미니크 수도회는 '설교'의 가치를, 프란시스코 수도회는 '청빈'이라는 가치를 중시한다). 여기에 '독서'가 추가되면서 베네딕트 수도사들의 하루일과가 완성된다. 이와 같은 수도 과정을 이수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것은 정주, 생활 개선, 그리고 복종이다. 이 세 가지 가운데 중요한 것은 '정주'였는데, 일정한 거주지도 없이 떠돌아다니던 당대 수도사들에게 베네딕트는 "여기 머물라"고 주의를 준다.

'복종'에 기반을 둔 베네딕트 수도회의 엄격한 '노동'은 결과적으로 수도회가 속한 촌락 공동체의 발전에 공헌하고, 이러한 '수도원 문화'는 더 나아가는 중세문명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다. 생전에 베네딕트는 카시노 산에서 벗어난 일이 없었지만, 그가 '기술자와 건축자, 개간자들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는데는 그러한 배경이 깔려있다. 또한 청빈과 순결, 겸손, 순종 등을 최고의 윤리적 덕목으로 여기고 노동의 가치를 '긍정'하는 것에서 우리는 후대 청교도들의 기원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는 위대한 신학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위대한 생활의 설계자였다. 베네딕트의 <수도규칙>에서 우리는 그 설계가 어떠한 방식으로 관철되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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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년 한국장로교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 <기독교 명저100선> 중 국내에 번역된 저작을 골라 올려놓을 예정이다. 이 책에 소개된 명저 100선은 주로 근대 이후의 저작들이며, 해설이 지나치게 간단해서 해당 저작이 갖는 가치를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원저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일으키는데는 크게 무리가 없다고 본다. <기독교 명저100선>의 소개를 기본적으로 참조해 페이퍼를 쓰되, 부분적으로 수정,보완하려 한다.

 
Aurelius Augustinus 354-430









1.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간략한 소개  

아우구스티누스가 초대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교부이며, 서방교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교부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에 대한 찬탄은 가톨릭과 개신교를 가리지 않으며, 그것은 현대에 와서도 마찬가지이다. 20세기의 조직신학자 폴 틸리히는 아우구스티누스를 일컬어 ‘다른 어느 누구보다 뛰어난 서구 사상의 대표적 인물이자 중세 뿐 아니라, 그 이후 모든 시대에 걸쳐서 서구 기독교 신학의 터전을 마련했던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가톨릭 신학자 한스큉은 기독교가 초대교회,헬레니즘적인 패러다임에서 라틴,중세적인 패러다임 으로 전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아우구스티누스를 평가하고 있다.

다른 신학자들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들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생애를 잘 살필 필요가 있다. 다행히 그는 동시대의 타 신학자들에 비해서 그의 생애를 아는 것이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은 편인데, <고백록>이 자신이 회심하기 전까지 그의 생애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가 사망한 직후 제자이자 친구인 포시디우스가 몇 년간 걸쳐 쓴 <생애>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작품에 관해서는 문헌사에서 유래가 드문 두 개의 목록이 있는데, 이것 역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만든다. 하나는 자신이 생애 말기에(426/427년) 자신의 작품들이 쓰여진 시기와 그 내용에 대해 서술하고, 비평적으로 교정하고 보완한 <재론고>(Retractationes)이고, 다른 하나는 포시디우스가 자신의 전기에 덧붙인 작품 목록이다. 이 둘은 모두 오늘날까지 남아 있으며, 아우구스티누스의 소실된 작품에 대한 지식과 새로 발견된 작품들의 진본 결정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2.<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의 대표작 <고백록>(이하 고백)은 이른바 '지혜를 추구하는 신앙(Fides quaerens Intellectum)'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진리 존재에 대한 믿음'을 탐구의 단서로 하고 있다. 탐구는 영혼의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원초적 선'이 각인되어있다는 것을 근거로 한다. 그의 논술은 성서의 해석에 근거한 정신의 내부에서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유사성을 추구하는 내적 초월을 취지로 하고 있다. <고백>의 원제인 Confessiones는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번째는 죄에 대한 '참회'의 의미, 두번째는 하나님에 대한 '찬미'의 의미,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의미다.

<고백>은 아우구스티누스 전체 저작의 심장에 해당되는 저작으로서, 아우구스티누스 연구 입문서 역할을 한다. 더 나아가 이 책은 가장 넓은 뜻으로서 '고전 중의 고전'으로도 널리 평가되는데, 라틴문학의 고전으로서 '고백'이라는 문학 유형을 창시했을 뿐 아니라, 인간 자신의 내면을 이 정도까지 파헤친 문학은 일찌기 없었기 때문이다. 교회사가 필립샤프는 "루소의 <고백록>과 괴테의 <진리와 시> 정도가 서구 문학사에서 이와 비견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한다. 

 


 

  

 다음과 같이 시작되는 <고백>의 첫 대목은 너무나 유명하다. 

"오, 주님 주님은 위대하시오니 크게 찬양을 받으소서. 주님의 능력은 위대하오며 또 주님의 지혜는 측량할 수 없이 위대하시나이다. 이렇게 위대하신 주님에게 사람이 감히 찬양 드리고자 하나이다. ...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주님 자신을 위해 창조하셨습니다. 때문에 우리 마음은 주님 안에서 안식을 얻기까지는 참평안을 누릴 수 없나이다."

이 말에는 고백이라는 행위의 핵심이 나타나 있다. 이 말이 무게를 지니는 이유는 이 이후에 13권에 걸친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이 한 마디 한 대목마다 "주 되신 하나님"을 향해 말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1권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그 배후에서 역사하시고 인도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한다. 자신의 유년기의 죄, 말 배우기, 학교에서의 공부하는 경험을 다루고 있다. 2권에서는 집안 형편 때문에 일년간 집에서 쉬면서 태만과 탐욕으로 해를 보냈던 열 여섯 살 되던 때를 기억하는데, 특히 남의 배를 따먹은 이야기를 길게 하면서 죄를 짓는 동기, 그 행동 그리고 죄의 집단성(사회성)을 암시해주고 있다. 3권에서는, 카르타고에서 보낸 학생시절의 생활, 즉 쾌락을 추구한 자신의 생활을 회상한다. 그런 중에서도 그가 읽은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라는 책은 그에게 철학적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이후 그는 합리적으로 진리를 설명해주는 마니교에 빠지게 된다. 4권은 그의 마니교 시절을 진술하고 있는데, 마니교를 추종한 아우구스티누스는 고향인 타가스테에서 수사학을 가르치는 교사가 된다. 그때 그는 어떤 여인과 동거하게 되고 점성술에 관심을 갖는데, 이후 고향에서 친구를 잃고 인간생명의 무상함을 실감하며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5권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카르타고로 와 수사학을 가르치는데 그 와중에 마니교의 주교인 파우스투스가 그곳에 와 그와 대화를 나눈다. 이후 그는 마니교에 실망하여 그 종교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로마로 간다. 로마에서 교수생활을 했지만 이내 실망하고 밀라노의 수사학 교수로 임명을 받아 밀라노로 갔는데, 당시 밀라노의 주교였던 암브로시우스 감독의 설교를 듣고 이를 통해 그는 기독교회의 예비신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예비신자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사상적인 어두움은 계속해서 그의 마음을 폐쇄시켰고, 그곳이 극복되기 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제8권에서, 비로소 그는 밀라노 동산에서 결정적인 회심을 한다. 회심 후 그는 교수직을 사임하고 어머니, 친구들과 함께 카시키아쿰으로 가서 책을 쓰며 세례받을 준비를 한다. 그 후에 밀라노로 돌아가 알리피우스, 아들 아데오다투스와 함께 세례를 받는다. 세례 후 그들은 아프리카로 돌아가기 위해 오시티아로 내려가 배를 기다리던 중 어머니와 함께 '지혜와 잠깐 접촉을 하는' 신비한 체험을 한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부모를 위해 기도를 드린다.  

Saint Augustine and Saint Monica
  

제9권까지가 자기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죽음 까지를 이야기한  '회고'였다면, 10권 이후는 내용에 변화가 일어난다. 제10권에서는 자신의 현재 모습을 살피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인간의 기억력, 참다운 행복, 인간이 당하는 여러 가지 시험에 대하여 세밀히 논혹 있다. 제11권 이후는 존재의 시작인 창조와 그 때(시간)를 상세히 논하면서 "하나님이 천지를 차창조하시기 전에는 무엇을 하고 계셨는가?"라는 질문에 나름의 답을 내리고 있다.  

제10권에서 제13권까지는 <고백>의 2부라 할 수 있는데, 권수로는 전체의 3분의 1에 미치지 못하지만, 서술의 분량에 있어서는 전체의 반을 차지한다. 또한 이 대목에서 다루어진 문제의 고찰은 이후 그의 또 다른 저작들인 <삼위일체론>과 <신국론>에 반영되어 있다. 이 세 권은 이른바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요 3부작으로서 각각 문학, 신학, 역사철학의 고전으로 꼽힌다.  

앞서 언급했듯이 <고백>의 제1~9권은 일종의 생활,체험편이고, 제10~13권은 사상,해석편이다. 후반의 철학적 관찰은 생애를 언급한 전반과 사뭇다른 뉘앙스를 보이고 때문에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양자 사이에 사상적 일관성과 구조가 있다고 파악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신플라톤주의의 영향 아래 진리를 밖에서 찾다가 발견하지 못하고 회의와 절망을 느낀 아우구스티누스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 순수한 내면성에 침잠함으로써 진리를 발견한다. '회심'을 통해 발견한 그 진리란 바로 세계의 창조자요 우주의 주제자인 하나님의 진리다.  

그가 <고백>을 저술하던 때는 결코 평화스러운 시기가 아니었다. 당시는 로마제국의 말기로서 고트족과 반달족 등의 침입이 빈번하던 때였다. 그러나 신앙안에서 평안을 얻은 그는 다음과 같은 감사로 <고백>을 마무리 짓는다.   

 

그 영원한 안식일에는 당신이 지금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듯 우리 안에서 안식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하는 선한 일이 실은 당신이 우리를 통해서 하시는 일이오니 그때의 우리의 안식도 실은 당신이 우리를 통해서 누리는 안식일 것입니다. .. 당신께 간구하게 하소서. 당신 안에서 그것을 찾게 하소서. 그것을 위해 당신의 문을 두드리게 하소서. 그렇게 함으로써만 우리는 그것을 얻을 것이요, 그렇게 함으로써만 우리는 그것을 찾을 것이요, 그렇게 함으로써만 그 문은 우리에게 열릴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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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dolf Karl Bultmann, 1884-1976   

루돌프 불트만은 1884년 8월 20일 올덴부르크 지방 비펠슈테데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칼 야스퍼스와 함께) 인문계 올덴부르크 김나지움에 입학했고, 1903-7년에 튀빙엔대학, 베를린대학, 마르부르크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헤르만 궁켈(구약학), 율러허와 요하네스 바이스(신약성서), 하르낙(교회사), 헤르만(조직신학)등이 그의 신학적 스승이었다.

1910년에는 바이스와 율리허에게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12년 신약성서학 분야의 교수자격 논문을 취득했다. 박사논문은 "바울의 설교와 견유학파-스토아학파 논쟁의 문체"였으며, 교수 자격논문 제목은 "몹스에스티아의 테오도레에 대한 주석"이었다. 1912-16년에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신약학 강사로 활동했고, 1916-20년 브레슬라우대학의 정교수로 활동했는데, 그곳에서 그의 최초의 방대한, 오늘날까지도 고전적인 주석서로 손꼽히는 <공관복음서 전승사>(Die Geschichte der synoptischen Tradition, 1921)를 집필했다. 이 저작으로 불트만은 (슈미트, 디벨리우스와 함께) 신약성서학에 양식사적 방법론을 확립시켜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년 동안 기센 대학에서 머무른 다음 1921년, 그는 그의 "학문적 고향"인 마르부르크대학에서 초빙을 받는다. 1920년부터 (역사비평적 연구와 같은 학문적 전통을 간직하되)자유주의 신학의 주석학적, 신학적 근본 확신과 거리를 두고 바르트와 고가르텐으로 대표되던 변증법적 신학에 접근했으며, 1923-1928년 사이에는 그의 신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 마르틴 하이데거와 의견을 주고 받기도 했다.

1934년부터 불트만은 고백교회의 일원이 되었고, 여기서 자유로운 학문적 노력을 위한 권리와 가치를 주장하는 일에 앞장을 섰다. 1939년 9월부터 마르부르크대학 신학부의 권위를 수호했고, 교회 안에서 아리안 조항을 도입하는 일에 반대했다. 

1941년, 그는 <신약성서와 신화>라는 강연을 하는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학계와 교회에서 '비신화화'라는 문제를 일으키는 초석이 된다. 이 문제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열띤 논쟁을 일으켰다. 1951년 정년으로 은퇴할 때까지 그는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가르쳤다. 그는 그곳에서 많은 논쟁을 일으켰고,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 시대의 신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1976년 7월 30일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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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신학사상 1
김균진 지음 / 연세대학교출판부 / 2003년 8월
18,000원 → 18,000원(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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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트만
데이비드 퍼거슨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2000년 6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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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트만의 실존론적 신학
발터 슈미탈스 / 대한기독교서회 / 1983년 8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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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불트만 신학의 재조명 - 신학사상문고 9
B.야스페르트 / 한국신학연구소 / 198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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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trich Bonhoeffer, 1906-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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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신학사상 1
김균진 지음 / 연세대학교출판부 / 2003년 8월
18,000원 → 18,000원(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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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
에버하르트 베트게 지음, 김순현 옮김 / 복있는사람 / 2006년 8월
11,500원 → 10,350원(10%할인) / 마일리지 5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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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외.저항.혁명 - 형성신서 36
디트리히 본회퍼 / 형성사 / 1982년 4월
2,300원 → 2,300원(0%할인) / 마일리지 11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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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따르라
디이트리히 본 회퍼 / 대한기독교서회 / 1965년 9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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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lfhart Pannen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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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학 1- 인간본성론, 신학총서 29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지음, 박일영 옮김 / 분도출판사 / 1996년 6월
5,500원 → 4,950원(10%할인) / 마일리지 2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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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학 2- 인간사회론, 신학총서 30
볼파르트 파넨베르크 지음, 박일영 옮김 / 분도출판사 / 1996년 6월
6,000원 → 5,400원(10%할인) / 마일리지 3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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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학 3- 인간문화론, 신학총서 31
볼파르트 파넨베르크 지음, 박일영 옮김 / 분도출판사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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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신학
판넨베르크 외 지음 / 한국신학연구소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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