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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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단편집『친절한 복희씨』는 여전히 바래지 않은 작가의 노련하고 농익은 글솜씨가 재미있는 한편 앞선 단편집『너무도 쓸쓸한 당신』에 비하면 조금 실망스럽기도 하다. 실망한 이유는 몇 개의 단편에서 내가 지금 작가의 산문집을 읽고 있는지 아님 소설을 읽고 있는 건지 헷갈렸기 때문인데 작가의 소설을 읽는 것과 작가의 사생활을 읽는 것은 분명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작가는 소설집은 9년 만에 출간하는 것이지만 그 사이 산문집은 꾸준하게 발표해 왔다.
작가가 특정 구성에서 같은 얘기를 반복하면 '아, 이것은 작가의 고정관념이겠거니' 하게 마련인데 예를 들면 박완서의 경우 '며느리'를 보는 시선이 그러하다. 박완서 소설에 등장하는 '며느리(혹은 조카며느리)'는 거의가 영악하다. 사전적인 의미 그대로 '영리하고 약은'데 특이한 점은 시어머니(혹은 시고모/시이모)와 며느리 사이가 요즘의 세태에 어울리게 '쿨'하다는 것이다. 특히 시어머니의 대처가 그러하다. 영악한 며느리는 아들과 손주들에게 든든한 울타리 노릇을 할 것이라는 이유로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서운한 것이 있어도 일장일단(一長一短)의 현실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소설집의 목차 중「거저나 마찬가지」를 읽을 때는 요즘 젊은 작가군(정이현, 김애란 등)의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드는데, 하지만 이야기가 막바지에 이를 즈음 역시 백전노장의 작가는 겉멋에 잔뜩 든 고민풀이 혹은 개똥철학의 낙서장에 머무는 젊은 작가들과 또렷한 차이를 드러낸다. 아마 이것이 근 40년 가까이 창작활동의 일선에서 버티고 있는 노작가의 힘이려니 싶다.
다소 실망스럽다고는 했으나 그 실망은 작가의 글솜씨가 퇴락했다거나 소설이 재미없다는 의미와는 관계가 없다.
국내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새록새록 더해가는 궁금증은 왜 (대충)50여년 전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글을 더 잘 쓸까, 하는 거다. 교육적, 문화적, 사상적 수혜자는 해방 전후의 작가들보다 새마을 운동 이후의 세대 아닌가. 만약 누군가 그 이유를 배부른 예술과 배고픈 예술의 차이라고 한다면 화가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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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심리학 -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6가지 불변의 법칙 설득의 심리학 시리즈
로버트 치알디니 지음, 이현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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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세술에 관한 책은『탈무드』한 권이면 족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처세술 관련 책들이 서점의 베스트셀링 자리를 늘 독차지하는 것이 늘 신기하다. 유행이 되어 버린 '*** 심리학' 제목을 달고 나오는 자기 계발서 역시 마찬가지. 그러니까 심리학이 궁금하면 심리학자의 저서를 직접 읽는 것이 가장 낫다고 생각하는 내가 벌써 오래전부터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이 책을 내내 외면하다가 뒤늦게, 결국 구입까지 하게 된 것은 역시나 '파격 할인'의 영향이다. 치알디니는 자신의 책이 이러한 판매전략을 통해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까? 아마 알겠지...

온라인 서점마다 서평 수가 가뿐하게 세 자리를 넘고, 몇 년 째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고, 아류작인가 싶게 비슷한 제목의 숱한 심리학 관련 책을 양산하고 있는, 안 읽었지만 이젠 얼핏 읽은 듯 기시감이 들 정도로 낯익은 책이 정가의 반에, 요즘 오를대로 오른 웬만한 과자 가격과 맞먹는 가격에 나오면 취향과 상관없이 구매 버튼을 누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인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 책의 목차 중 낯이 익은 에피소드 두 개는『스키너의 심리학 상자』『지식e』시리즈에도 등장한다.

심리기법이 가장 많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현장은 '마켓'이다.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 모두 조금이라도 이익을 더 남기고자, 손해를 덜 보고자 흥정을 벌이는데 이때 의식/무의식적으로 다양한 심리기법이 동원되는 것이다.

다음은 '일관성의 근거를 만드는 미끼 기법'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내부적 변화를 동반한 개입의 가장 큰 매력은 그것이 자기 스스로 성장한다는 점이다. 일단 사람이 내부적으로 변하게 되면 힘들여서 그 변화를 지속시키거나 강화시키려고 노력할 필요가 전혀 없다. 우리 내부에서 생성되는 심리적인 일관성의 압력이 그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해주기 때문이다. - p.160 

이 내용을 한 단어로 압축하면 '자기합리화'다.
참고로 자기합리화는 대부분의 충동 구매의 가장 강력한 적인데 일단 판매자는 가격, 상품평, 한정 수량 등을 이용해 미끼를 던져 놓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아주 약간이라도 그 미끼에 걸려든 구매자는 그 물건을 사야만 하는, 안 사면 안 되는 '자기합리화'와 줄다리기를 벌이게 된다. 물론 이 싸움에서 백기를 드는 쪽은 거의 언제나 구매자다.

이 외에도 책 속에 등장하는 심리기법 중 주로 홈쇼핑몰 방송에서 자주 보이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도 이 물건 좋다고 인정해요(사회적 증거의 법칙)', '이런 기회는 다시 안 와요(희소성 강조)'가 눈에 띈다.

최근 물건을 사고 나서 후회하는 일이 있었는데 내가 자책한 가장 큰 이유는 정보 수집에 소홀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책에는 이것과 관련된 내용이 등장한다. 내용에 의하면 자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자신이 수집한 정보에 따라 반응하는데 컴퓨터 보급으로 네트워크를 개인이 자유자재로 사용하게 되면서 오히려 과다한 정보가 개인의 정보 활용 능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즉, 정보가 너무 과다하여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특정 내용에 의지해 판단을 내리게 된다는 것인데 내가 최근에 저지른 실수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정보처리 능력에도 한계성은 존재한다. 시간, 에너지, 자원 등의 효율성에 대한 고려때문에 경우에 따라서 우리는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하여 최상의 의사결정에 도달하는 방식보다는 단 하나의 중요한 정보에 의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원시적인, 그리고 자동화된 반응 행태를 선택하기도 한다. (중략) - p.377 

어쩌겠는가. 게으른 내 탓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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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세 번째 부산행이다. 이번은 3, 4일 정도로 체류 기간이 짧지만, 기간에 상관없이 일단 집을 비운다는 점에서 여행은 그 자체로 여러모로 피곤하고 신경이 쓰인다. 
그러니까 여행 내내 '내가 가스를 잠갔던가?', '거실에 커튼을 쳤던가?' 등등 귀찮은 고민들과 씨름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했던 상황과 마주치는 일도 종종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마음산책 블로그를 보는 순간 제일 처음 든 생각은, "아..."
우리 집에는 마음산책 책이 과장 없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책도 있고, 책을 찍어 줄 카메라도 있지만, 정작 내가 거기에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나 궁즉통(窮則通). 혹시나 하고 개인홈을 뒤졌더니, 조금 있다! ^^




- 요네하라 마리의 에세이를 모으기 시작한 건 올 초 들어서다.
요네하라 마리는 책 내용에 앞서 작가의 이력이 독특하고, 무엇보다 두 마리의 반려묘가 관심을 끈다. 고양이는, 무조건 일단 클릭하고 보는 대상.  




- 나를 요네하라 마리에게로 이끈 이는 더 설명이 필요 없는 고종석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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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삶>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삶 - 특별하지 않은 청춘들의, 하지만 특별한 이야기
박근영 지음, 하덕현 사진 / 나무수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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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밴쿠버에 갔을 때의 일이다. 어쩌다 일행과 떨어져 혼자 사흘을 보내게 되었는데 혼자가 되는 그 순간부터 숙박지였던 홀리데이인은 만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감옥처럼 다가왔다. 그럼에도 나는 하릴없이 호텔 밖 산책을 하는 대신 호텔 방에 틀어박혔다. 낯선 곳을 헤매는 것보다 낯선 곳에 웅크리는 편이 더 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밤. 난생 처음 낯선 곳에 남겨진 첫날 밤, 이불을 머리 꼭대기까지 뒤집어쓰고 웅크리고 누웠는데 자꾸만 무서웠다. 그것이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느낀 고독의 실체였다.
이튿날은 무작정 나가서 걸어 다녔는데 10월의 밴쿠버는 날씨가 변덕스러워서 금방 비가 쏟아질 것처럼 먹구름이 새까맣게 하늘을 덮는가 하면 어느새 거짓말처럼 햇살이 정박 중인 요트 위로 짱짱하게 내리 쬐었다. 그리하여 철 지난 관광지 같은 그곳을 돌아다니면서 나는 그저 집으로 갈 생각만 했었다. 나중에야 내가 묵었던 홀리데이인의 정문을 나가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걸어 내려가면 서울 시내와 똑같이 사람들과 각종 상점으로 번잡한 곳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았다. 만약 내가 사흘 내내 정문의 왼쪽으로만 걸어나갈 게 아니라 한번쯤 오른쪽으로 방향을 정했더라면 내 밴쿠버에서의 사흘은 훨씬 덜 외로웠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내 생을 통틀어 밴쿠버에서 보낸 그 사흘이 내 삶에 대해, 존재에 대해 가장 깊이 고민하고 사색한 시간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상을 알 수 없는 깊은 절망감과 외로움도 그때뿐, 지금은 그때의 감정을 기억조차 못한다. 다만 그때 그랬었지, 하는 정서적인 흔적만 남아 있다. 물론 그 흔적과 이어진 밴쿠버라는 도시에 대한 기억도 함께 남았다. 

밴쿠버가 우울한 기억으로 남은 공간이라면 신주쿠는 유쾌한 기억을 안겨 준 공간이다.

2002. 6. 신주쿠에서 마주친 표지판
[쓰레기 회수일 이외에 버리지 마시오]

벌써 8년 전이다. 도쿄 신주쿠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눈에 쏘옥 들어온 표지판인데 처음엔 한글을 보면서도 한글이라는 것을 얼른 체감하지 못했다. 그러다 뒤늦게 한글을 알아 보고 표지판 앞에서 정말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웃었다. 겁을 줘야 할 경고문이 삐뚤삐뚤 글씨로 인해 친숙감마저 든다.
사진을 정리하면서 또 봐도 역시 재밌다. 아래쪽 잘 보이지 않는 글씨의 내용은 신주쿠署의 연락처다.

신주쿠내 쇼쿠안도리 구역에 가면 마치 서울에 있는 듯 착각을 하게 된다. 한국 PC방에, 은행에(외환/국민) 온통 한국말에 한국어 간판에 한국말로 손님을 호객하는 상인들까지. 특히 2002년 6월 월드컵 때 쇼쿠안도리의 한국 갈비집 앞마당은 모여든 한국 사람들이 외치는 "대- 한!민!국!"으로 장관이었다.  

과거의 사진을 정리할 때면 늘 깨닫는 것이 있다. 내가 눈을 뜨고 있는 순간, 내가 움직이고 의식하는 순간... 그 어느 순간에도 나는 공간 속에 존재했고 그 공간을 통해 바깥과 소통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부산 여행길에 챙겨서 온『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삶』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일단 책의 제목이 좋다. '다만', '누구나의 삶' 이라니, 사적이면서 동시에 소통의 창구인 공간을 얘기하는 이 책의 제목으로 참 적절하다. 
책은 누군가 나를 대신해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그들의 다양한 삶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그 대화를 들려준다. 읽으면서 즐거웠던 이유는 그들의 삶을 관통하는 혹은 삶과 잇닿은 그들만의 공간 위로 과거 어느 순간 내게 어떤 의미로 절실했던 공간이 겹치는 경험이 잦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전략)얼마 전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법륜 스님 법회에 참석하게 됐는데 스님께서 두려움에는 실체가 없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실체도 없는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이 겁먹고 사는 거라고."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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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 코끼리의 등>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내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
니나 슈미트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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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절 나는 독일 문학과 전혜린에 한창 빠져 있었는데 그 덕분에 내겐 청소년기를 함께 했던 독일 문학에 대한 일종의 '의리'같은 것이 있다. 독일문학이라면, 일단, 무조건, 호감부터 가지고 보는 일종의 부채의식이랄까. 그런데 오랜만에 읽은 독일 현대 소설『내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의 인상은 뭐랄까, 표지 내지에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라는 설명도 있지만 아, 요즘 독일에선 이런 소설이 인기가 있구나, 싶었다.
여러모로 낯이 익은 제목은 내용면에서도 비슷한 제목의 여타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루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권태기에 접어든 연인이 있고, 연인의 옛 연인이 같은 도시로 이사 오고, 사랑의 고전 테마인 삼각관계가 형성되고, 삼각관계에서 빠질 수 없는 양념인 질투로 인해 비롯되는 갖가지 해프닝들이 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다.
『내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는 말하자면 독일 칙릿인데, 우리 기준으로 노처녀에 해당하는 34세인 안토니아의 유쾌한 성격과 그 성격이 빚어내는 좌충우돌 해프닝이 여러모로 선배 격인 '브리짓 존스'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안토니아가 하는 고민은 '노처녀'라는 꼬리표와 상관없이 연애를 시작한 모든 여자들이 공통으로 겪는 고민이다.
여자는 남자와 연애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이 남자가 나를 사랑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데 그리하여 사실상 시작부터 남자와 여자의 연애는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문제는 연애의 시작이 남자에겐 사랑을 확인하는 종착역인 반면 여자에겐 사랑을 확인하는 출발역이라는 것이다. 주위에 연애를 하는 여자친구가 있어 본 사람은 다 안다. (남자친구와 이별하기 직전까지)그녀들을 무한반복으로 괴롭히는 고민은 "아무래도 그가 날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라는 걸.

안토니아의 좀 독특한 친구 카타는 '2년 위기설'로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의 등장으로 연애에 위기를 맞은 안토니아의 불안을 더욱 부추기는데 카타의 주장처럼 연애가 호르몬만으로 정의되는 것이라면, 그러니까 이론대로 되는 것이라면 인류사의 가장 오랜 이벤트일 '연애'가 얼마나 간단해지겠는가.

소설을 통해 나를 가장 웃겼던 인물은 바로 '흥분한 청소 닭' 카타다. 물론 안토니아의 시니컬한 혼잣말도 재미있다. 서사보다는 사건 중심이고, 화자가 1인칭이라 소설을 다 읽고 나면 한바탕 재미있는 수다를 듣고 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원제가 궁금해서 확인하니 '누구 하나 울 때까지'다. 원래 제목이 훨씬 좋은데 왜 제목을 바꿨을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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