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의 단편집『친절한 복희씨』는 여전히 바래지 않은 작가의 노련하고 농익은 글솜씨가 재미있는 한편 앞선 단편집『너무도 쓸쓸한 당신』에 비하면 조금 실망스럽기도 하다. 실망한 이유는 몇 개의 단편에서 내가 지금 작가의 산문집을 읽고 있는지 아님 소설을 읽고 있는 건지 헷갈렸기 때문인데 작가의 소설을 읽는 것과 작가의 사생활을 읽는 것은 분명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작가는 소설집은 9년 만에 출간하는 것이지만 그 사이 산문집은 꾸준하게 발표해 왔다. 작가가 특정 구성에서 같은 얘기를 반복하면 '아, 이것은 작가의 고정관념이겠거니' 하게 마련인데 예를 들면 박완서의 경우 '며느리'를 보는 시선이 그러하다. 박완서 소설에 등장하는 '며느리(혹은 조카며느리)'는 거의가 영악하다. 사전적인 의미 그대로 '영리하고 약은'데 특이한 점은 시어머니(혹은 시고모/시이모)와 며느리 사이가 요즘의 세태에 어울리게 '쿨'하다는 것이다. 특히 시어머니의 대처가 그러하다. 영악한 며느리는 아들과 손주들에게 든든한 울타리 노릇을 할 것이라는 이유로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서운한 것이 있어도 일장일단(一長一短)의 현실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소설집의 목차 중「거저나 마찬가지」를 읽을 때는 요즘 젊은 작가군(정이현, 김애란 등)의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드는데, 하지만 이야기가 막바지에 이를 즈음 역시 백전노장의 작가는 겉멋에 잔뜩 든 고민풀이 혹은 개똥철학의 낙서장에 머무는 젊은 작가들과 또렷한 차이를 드러낸다. 아마 이것이 근 40년 가까이 창작활동의 일선에서 버티고 있는 노작가의 힘이려니 싶다. 다소 실망스럽다고는 했으나 그 실망은 작가의 글솜씨가 퇴락했다거나 소설이 재미없다는 의미와는 관계가 없다. 국내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새록새록 더해가는 궁금증은 왜 (대충)50여년 전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글을 더 잘 쓸까, 하는 거다. 교육적, 문화적, 사상적 수혜자는 해방 전후의 작가들보다 새마을 운동 이후의 세대 아닌가. 만약 누군가 그 이유를 배부른 예술과 배고픈 예술의 차이라고 한다면 화가 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