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쇼핑 - 아무것도 사지 않은 1년, 그 생생한 기록
주디스 러바인 지음, 곽미경 옮김 / 좋은생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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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호 <한겨레21> 특집, ‘2010년 1년 동안 쇼핑 안 하기’ 프로젝트 기사를 읽고 뜨끔했다. 나야말로 저 대열에 합류해야 하는데. 그 프로젝트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을 주디스 러바인의 <굿바이 쇼핑>이 출간되었다. 아무 것도 사지 않은 1년의 기록이다. 신용카드 한도까지 긁고 직불카드를 응원 깃발 흔들 듯 신나게 흔들다가 ‘이제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 러바인은 그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겼을 뿐이다. 집에 있는 물건 재고조사를 한 뒤 남편과 함께 쇼핑 없이 살아간다. 포도주가 생필품인지 사치품인지에 대한 논란은 일부에 불과하다. 쇼핑을 줄이고 싶은 사람들은 열독해볼만한 책이다. 다만, 쇼핑으로 스트레스 해소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읽어도 큰 도움이 안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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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 미국 건축의 아버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브루스 브룩스 파이퍼 지음, 이종인 옮김 / 미메시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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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가장 미국적이고 가장 유명한 현대 건축가의 한 사람. 마치 <서양미술사>의 한 페이지처럼 각인되어버린 그 유명한 낙수장을 비롯,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등 그의 작품 이력을 시대순으로 화보, 해설을 통해 볼 수 있는 책이 바로 <라이트-미국 건축의 아버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다. 고층으로 세워 올리는 대신 주변의 자연과 호흡하는 가로로 길게 누운 수많은 저택들이 태어난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꽤 재미있는데, 1900년 즈음 ‘건축에서 박스 파괴하기’를 모토로 최대한 노력했다. 놀라운 것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낙수장이 바로 대공황기에 지어졌다는 데 있다. 값싼 주택 건설 시스템을 개발하는 일을 주로 맡고 있었던 당시의 라이트는 “폭포와 함께 살라고” 저택이 폭포의 일부가 되도록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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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치 체포록 - 에도의 명탐정 한시치의 기이한 사건기록부
오카모토 기도 지음, 추지나 옮김 / 책세상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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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탐정소설 ‘도리모노’의 시작을 알린 <한시치 체포록>은 셜록 홈스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는 오카모토 기도가 1917년 발표한 일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메이지유신 이전 일본사회를 만화경처럼 흥미진진하게 들여다보게 해주는 이 책을, 미야베 미유키는 시대소설을 쓰기 전에 항상 읽는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기담과 괴담을 다루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그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 인간의 소행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이 기실 인간에게서 시작된다.
단편 <쓰노쿠니야>는 괴담으로 시작해 명쾌한 미스터리로 끝난다. 쓰노쿠니야라는 술 도매상이 곧 망하리라는 소문이 떠돈다. 그 집에서 친자식을 낳으면서 큰딸로 키워온 양녀를 버린 탓에 귀신이 씌었다고 생각하는 주변인의 시선과 연달아 발생하는 죽음의 음산한 분위기가 당시 서민들의 삶과 조화를 이루며 진행된다. 주인공 한시치를 처음 소개하는 단편인 <오후미의 혼령>은 일본 공포만화에 나올 법한 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낸다. 재앙을 당하지 않을까 겁먹은 등장인물을 묘사하면서 진지하게 “가까운 절로 날마다 참배를 하러다니기 시작했다”고 쓰는 것은 전근대성 묘사의 일환이겠으나, 100년이 지난 지금도 뭐가 다른가 싶어 웃게 된다. 인간세상은 징글맞도록 변하지 않는다. 그때도 사이코패스가 있었고, 꽃뱀이 있었고, 미신이 있었다. 이 책은 깜짝 놀랄 반전이나 화려한 속도감이 아닌, 느릿느릿 구전되는 옛이야기의 매혹을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에게는 미야베 미유키의 <메롱>이나 하다케나카 메구미의 <샤바케> 시리즈, 교고쿠 나쓰히코의 <항설백물어>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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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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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수식할 말이 너무 많아서 난감하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처럼. 도무지 외워지지 않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은, <키다리 아저씨> 식의 서간체 소설이고(편지들로만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제2차 세계대전중에 독일군 점령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 했던 영국의 한 작은 섬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브리짓 존스의 일기>처럼 여주인공이 여자에 대한 수완이 좋은 돈 많은 마초 남자와 수줍음이 많지만 진지하고 다정한 남자 사이에서 갈등을 하며 사랑을 찾아나가게 되며, 독자는 몇몇 대목에서 눈물을 참느라 이를 악물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키득거리며 히죽거리게 되어 있다.
1946년 1월, 전쟁 기간 동안 해학넘치는 에세이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 영국의 여자 작가 줄리엣이 주인공. 어느날 그녀는 낯선 사람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는다. 줄리엣이 처분한 책을 우연히 손에 넣게 된 사람에게서 온 편지에 답장을 하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라는 묘한 이름의 북클럽에 대해 알게 된 줄리엣은 다음 책의 주인공으로 그들을 선택한다. 한편 미국에서 온 부유한 출판업자 마컴이 줄리엣에게 작업을 건다. 글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유대를 다지고 사랑에 빠지는, 그야말로 손으로 쓴 편지가 오가던 시대를 격렬하게 그리워하게 만든다는 부작용 아닌 부작용이 있다. 평생을 작가 지망생으로 살다 이 책 출간을 앞에 두고 세상을 떠난 메리 앤 섀퍼와 그녀를 도와 이야기를 다듬고 마무리한 조카 애니 배로스가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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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춤추다 - 서울-베를린, 언어의 집을 부수고 떠난 유랑자들
서경식 & 타와다 요오꼬 지음. 서은혜 옮김 / 창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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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글은 읽는 자를 염두에 두고 씌어진다. 심지어 일기조차 어느정도는 그렇다. 하지만 편지만큼 적극적으로 독자를 글 한복판으로 끌고 들어가는 글은 없다. 답을 기대하고, 답할 여지를 남겨두며, 나아가서는 다툼, 사랑, 혹은 영원한 결별을 상대가 행동하게 만드는 글이니까. 답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서간체 소설이건 서간집이건 재미있는 점은, 그런 문답의 과정이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얼굴을 마주하고 나누는 대화가 아니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이나 각자가 처한 상황 등을 이유로 편지들 사이에는 간극이 생긴다. 묻지 않았던 것에 대한 대답, 질문에 대한 회피,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 사이의 긴장.
이주 신간 지면에 소개할 책들은 세권 다 서간문이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위험한 관계>의 냉소보다는 <키다리 아저씨>의 낭만을 닮은 서간체 소설이고, <공공의 적>은 부르주아 좌파 지식인과 냉소적인 우파 소설가, 자칭 ‘경멸을 받아 마땅한 자들’의 서신교환이다. 그리고 <경계에서 춤추다>.
<경계에서 춤추다>는 재일 조선인 2세로 고국을 떠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에세이로 잘 알려진 도쿄게이자이대학 교수 서경식과 1993년 아카타가와상을 수상한 일본 소설가 타와다 요코가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책이다. 재일 조선인 2세로 서울에 살고 있는 서경식과 일본인이지만 베를린에 살고 있는 타와다 요코는 집, 이름, 여행, 빛, 목소리, 번역, 순교, 고향, 동물을 소재로 대화를 해 나간다. 초반에는 당연히 그런 정체성, 국적, 거주지가 관심사가 된다. 초반에는 무겁게 한 단어 한 단어 내딛지만, 여행과 빛, 순교 쪽으로, 그러니까 둘의 대화가 계속될수록 편지들에서는 단순해보이지만 깊은 성찰이 돋보인다. 이름이 보통명사와 다른 점은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를 잊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설령 의미를 알고 있더라도 쓰면서 의미를 잊게 된다, 그게 좋은 것이다. 여행은 자신을 붙잡아두고 있는 일상으로부터의 일시적인 해방이라고 많은 이들이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이름을 말해야 하고, 신분증명을 요구당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여행이라는 것 역시, 자신을 재정의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특유의 진지함 때문에 웃게 되는 대목도 있다. 타마(玉)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면서 상당히 진지한 (조심스레 살살 쓸어보아야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지할 수 있는) 말투로 “‘생명이 태어나는 곳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타마’에 해당되는 것은 한국어에서는 아무래도 ’알’이라는 말 쪽인 듯합니다. 이 말 앞에 ’불’이라는 말을 붙이면 고환을 뜻하게 됩니다. 불과 알이 붙어서 프랑스어처럼 연음되면서 ’부랄’이라고 발음합니다. 어쩐지 발음까지 그럴듯하지 않습니까?”라는 서경식의 말이라니. 부랄에서 프랑스어의 연음을 느끼다니.
타와다 요코는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적이 있지만 그 작품이 소개된 적은 없다. 이 서간집을 읽으면서 그녀의 표현력에 감탄하다보면(특히 빛에 대한 편지!) 그녀의 소설도 곧 한국에서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행운이 한국 독자들에게 따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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