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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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최신작 장편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완독하고 기념할 겸 출판사에서 준비한 팝업 공간 '무라카미 하루키 스테이션'에 다녀왔다. 가는 길에 비가 내린다. 소설 초반부 주인공 '그'가 '그녀'와의 영속적인 관계를 꿈꾸며 떠올리는, 비가 내리는 바다의 광경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바다 위로 아무리 많은 비가 내려도 바다는 영원히 바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도 시간은 시간 그 자체.


그 여름, 나는 열일곱 살이었다. 그리고 내 안의 시간은 그때 실질적으로 정지했다. 시곗바늘은 언제나처럼 앞으로 나아가며 시간을 쌓아갔지만, 나에게 진짜 시간은-마음의 벽에 박힌 시계는-그대로 움직임을 뚝 멈추었다. 그로부터 삼십년 가까운 세월은 그저 공허를 메우는 데 소비해온 것이나 다름없다. 텅 빈 부분을 무언가로 채울 필요가 있기에 주위에 보이는 것으로 그때그때 메워갔을 뿐이다. 공기를 들이마실 필요가 있기에 사람은 자면서도 무의식중에 호흡을 계속한다. 그것과 마찬가지다.

무라카미 하루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254쪽

주인공은 열일곱 살에 절대적이라고 해도 좋을 사랑의 대상을 만나고 영영 잃어버린다. 그녀가 사라진 뒤의 시간은 멈춘 것과 동시에 흘러간다. 시곗바늘이 없는 시계탑이 서 있는 벽 안의 도시와 같이, 내 안의 내면의 시간은 외부에 흐르는 시간과 분리된다. 본체와 그림자가 분리되듯이, 나는 나의 삶과 무관해진다. 가끔 내가 무언가의, 누군가의 그림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111쪽) 나는 그림자와 본체로 나뉘어 그 사이에 벽을 친다. 왜? 마음의 역병(528쪽)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령 이런 것이다. 소설 중반부 주요 인물이자 가장 인상깊은, 산 속 작은 마을의 도서관 관장이었던 고야쓰 씨가 겪었던 일들을 생각해 보자. 그는 문학에 뜻이 있었으나 꿈을 이루지 못했고, 꿈을 이루진 못했으나 가업을 이어 성실하게 살아간 사람이었다. 사랑에 빠졌고, 결혼했고, 사랑스러운 아들을 얻었고, 아들을 사고로 잃고, 아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가진 것을 모두 잃었을 때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 그는 계속해서 살아나갔다. 가업이었던 양조장을 도서관으로 바꾸고 치마를 입고 다니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기 위해 그는 노력했다.

"가끔 저 자신을 알 수 없어집니다." 나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혹은 잃는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이 인생을 저 자신으로, 저의 본체로 살고 있다는 실감이 들지 않습니다. 나 자신이 그저 그림자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그런 때면 제가 그저 나 자신의 겉모습만 흉내내서, 교묘하게 나인 척하며 살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해집니다."

"본체와 그림자란 원래 표리일체입니다." 고야스 씨가 나지막히 말했다. "본체와 그림자는 상황에 따라 역할을 맞바꾸기도 합니다. 그럼으로써 사람은 역경을 뛰어넘어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랍니다. 무언가를 흉내내는 일도, 무언가인 척하는 일도 때로는 중요할지 모릅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지금 이곳에 있는 당신이, 당신 자신이니까요."

같은 책, 452쪽

결코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삶의 충격에 나가떨어진 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삶의 목적도 상실했으나 시간은 나를 배려하지 않는다. 시간은 가차없이 흐르고 나는 삶을 이어가야 한다. 나를 분리해 벽을 치고 외면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건 진짜 내가 아니야, 나는 나를 연기하는 가짜일 뿐이야, 괴로워하는 내게 속삭이는 어떤 목소리, 괜찮다는 목소리, 믿는 마음을 잃지 말라는 목소리가 소설 속에서 새어나온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이 주는 해소되지 않는 슬픔은 하루키의 가장 유명한 소설인 [노르웨이의 숲]의 중심 정서와 이어진다.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이미지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했던 장소다. 나는 이 두 소설의 장점만이 집결된 완결판이 이번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라고 본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하루키의 단점은 쏙 빠지고(뜬금없는 성적 묘사 같은) 하루키의 장점이 두드러지는 소설이라 생각하며 아껴 읽었다.

그의 최고작이라기보다 완결작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한 명의 작가가 쓸 수 있는 이야기 모티프는 한정되어 있고, 하루키가 쓸 수 있고 써야만 했던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비로소 당신은 벽을 넘어 그 도시에 도착하는데 성공하셨군요,


기쁜 마음으로 읽다가 한편으로 그의 나이를 떠올리고 불안해졌다.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시간은 공평하게 흐른다. 애정하는 작가의 시간만큼은 불공평하게 주어지기를 바라는 독자의 이기적인 마음 역시 자꾸만 벽을 탈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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