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열일곱 살에 절대적이라고 해도 좋을 사랑의 대상을 만나고 영영 잃어버린다. 그녀가 사라진 뒤의 시간은 멈춘 것과 동시에 흘러간다. 시곗바늘이 없는 시계탑이 서 있는 벽 안의 도시와 같이, 내 안의 내면의 시간은 외부에 흐르는 시간과 분리된다. 본체와 그림자가 분리되듯이, 나는 나의 삶과 무관해진다. 가끔 내가 무언가의, 누군가의 그림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111쪽) 나는 그림자와 본체로 나뉘어 그 사이에 벽을 친다. 왜? 마음의 역병(528쪽)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령 이런 것이다. 소설 중반부 주요 인물이자 가장 인상깊은, 산 속 작은 마을의 도서관 관장이었던 고야쓰 씨가 겪었던 일들을 생각해 보자. 그는 문학에 뜻이 있었으나 꿈을 이루지 못했고, 꿈을 이루진 못했으나 가업을 이어 성실하게 살아간 사람이었다. 사랑에 빠졌고, 결혼했고, 사랑스러운 아들을 얻었고, 아들을 사고로 잃고, 아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가진 것을 모두 잃었을 때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 그는 계속해서 살아나갔다. 가업이었던 양조장을 도서관으로 바꾸고 치마를 입고 다니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기 위해 그는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