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 허스트베트 개인의 어머니로 시작되는 에세이는 세계 전체의 '어머니'라는 관념-버지니아 울프가 '집안의 천사'라 정의한 가부장적 세계 속 어머니라는 개념-을 고찰하며 뻗어나가는 지적 여정을 거침없이 수행한다. 이 묵직한 에세이는 작가의 어머니로 시작해 여성혐오를 고찰하는 연구로 확장되며 한없이 깊어진다. 작가 본인이 겪은 여성혐오 사례들, '뇌 문신'이라 이름붙인 수많은 사례를 열거하며 여성혐오의 시작을 고대 그리스부터 추적해 현대 과학 연구까지 침범한 고정관념을 발견하고 타파한다.
시리 허스트베트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줄리엔 반 룬의 [생각하는 여자]라는 책에서였다. 철학사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여성 사상가들을 찾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 책으로 책 자체도 인상깊었고 책에서 소개된 이름을 전부 적어두었다. 시리 허스트베트의 데뷔작을 찾아 읽었고 작가 폴 오스터와 결혼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의 아내, 무의식적인 여성혐오적 사고방식, 에세이에서 허스트베트는 자신의 작품을 남편이 썼다고 굳게 믿는 기자와 독자들을 만났던 경험을 언급한다. 에세이에 실린 문학-과학-철학-사회학-기타 수많은 학문의 장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사유하는 그의 글을 읽으면 빛나는 지성을 결코 의심할 수 없다. 내 안에도 자리한 여성혐오적 사고방식을 발견하는 건 고통스럽다. 이 에세이는 불편하다. 그렇기에 반드시 읽어야 한다.
여자가 남자보다 훌륭할 리 없다는 선입견의 안경을 쓴 이들이 '감히 글을 쓰지 말고 아이를 낳고 키워라!' 외치며 분노하며 날뛰게 내버려 두고, 그는 유유히 자신의 글을 쓴다. 이제 반대로 정의한다. 폴 오스터가 시리 허스트베트의 남편이라니,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