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상 입문 - 데리다, 들뢰즈, 푸코에서 메이야수, 하먼, 라뤼엘까지 인생을 바꾸는 철학 Philos 시리즈 19
지바 마사야 지음, 김상운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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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놀라운 점은 '현대사상 입문'이라는 거침없는 제목을 달았다는 것이고, 더 놀라운 점은 이해하기 쉽다는 것이다. '입문'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이 책을 한 번 읽은 것만으로도 복잡하기로 유명한 데리다를 이해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책이다. 들뢰즈를 직접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마성까지 지닌 책이다. 정직한 제목과 정직한 내용.


현대사상을 배우면 복잡한 것을 단순화하지 않고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단순화할 수 없는 현실의 어려움을 전보다 '높은 해상도'로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바 마사야, 현대사상 입문, 12쪽


저자가 알기 쉽게 정리하는 현대 사상-프랑스 철학, 특히 포스트구조주의 중심-의 핵심은 '복잡한 세계를 복잡하게 대하기'라고 할 수 있다. 통일된 규칙과 엄격한 질서를 휘둘러 세계를 매끈하고 단순하게 지배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거품처럼 정신없고 소란스러우며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


특히 팬데믹 이후 중앙집권적인 통제에 익숙해진 우리들은 남들과 다른 '차이'에 유독 예민해지고(저 사람이 기침을 하잖아! 당장 격리시켜!) 혐오가 일상화되고 있다. '현대사상은 질서를 강화하는 움직임에 대한 경계심을 갖고 질서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 즉 '차이'에 주목합니다(14쪽)' 저자는 데리다와 들뢰즈, 푸코를 중심으로 세 철학자의 앞뒤로 이름이 새겨진 철학자들의 사상을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이들의 철학이 난해할지언정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거듭 강조한다.


우선, 이항대립의 탈구축이라고 하는 데리다의 논법에 익숙해집시다.

그것을 모든 존재로 확대해 "컵은 컵, 고양이는 고양이, 저 사람은 저 사람, 나는 나"라는 구별을 넘어서, 사물은 역동적으로 횡단적인 연결을 전개하고 있다는 들뢰즈적인 비전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도처에 무관계도 있으며, 모든 것이 연결되어 헷갈려서 '엉망'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소다수처럼 거품이 나는 세계라는 이미지. 이것이 존재의 탈구축입니다.

이로부터 사회문제의 구체성으로 논의를 옮겨 갑니다. "저것은 제대로 된 삶의 방식이 아니다, 일탈이다"라며 배제하는 권력관계를 먼저 인식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강제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의 불안으로부터 무의식적으로 만들어 낸 체제라고 인식합니다.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관리, 통제 사회 비판이 사회의 탈구축입니다. 이항대립의 어느 한쪽으로 갈라치지 않고 잡다한 삶의 방식을 '헤엄치게 두는' 애매함에 타자성을 존중하는 윤리가 있습니다.

지바 마사야, 현대사상 입문, 110쪽


복잡한 세상을 복잡한 그대로 바라보기, 그 속에서 '왜 사는가?'같은 답이 보이지 않는 무거운 질문에 집착하다 좌절하기보다, 오늘 저녁 메뉴를 고르고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정해진 작업들을 처리하는 인생의 작은 과제들을 처리하며 성취감을 누리기.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현대사상 입문]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뜻밖의 실용적인 지식이었다.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면 작가가 부록으로 달아 둔 '현대사상 읽기' 방법을 적용해 최신 철학자들의 저작들을 읽어 보도록 하자^^!


*위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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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 을유세계문학전집 126
에밀리 디킨슨 지음, 조애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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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은-힘이다-

존재-자체가-

더 유능해지지 않아도-

충분히-전지전능하다-

살아 있고-의지만 있으면 된다!

우리가-유한한 존재이더라도-

창조주인-신만큼-

유능하다!

에밀리 디킨슨, 677(디킨슨의 시는 제목이 없어 번호로 대신함)

집 안에 스스로를 가둔 '흰 옷을 입은 시인'의 이미지였던 에밀리 디킨슨, 그에게 처음 관심이 갔던 계기는 2년 전 읽었던 마리아 포포바의 책 [진리의 발견]이었다. 책의 내용과 서술 방식과 책이 소개하는 인물들 모두가 내게는 충격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강렬하게 각인된 이름은 시인 에밀리 디킨슨. 다만 그때는 그의 시보다는 생애 중심으로 읽었고 그의 시를 본격적으로 읽은 건 을유문화사의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된 [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이다.

한국어 문장에 익숙지 않은 줄표'-'가 화살처럼 쏟아지는 그의 시는 짧고 강력하다. 디킨슨의 시 속에서 인간의 유한한 생명은 단숨에 신의 무한한 전지전능함과 동등해진다. 은둔과 죽음의 시인으로 막연하게 생각했던 그의 시는 여름의 열기로 맥동하고, 시행 사이로 뜨거운 사랑이 흘러넘치며, 삶 그 자체로 가득 차 있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읽으면 시인은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자, 라는 정의를 내리고 싶어진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다해 삶을 사랑하고 시를 쓰기 위해 스스로를 가둔 능동적인 사람이었다. '명성은 곧 치울 접시에 담긴/잘 상하는 음식(1659'이라는 싯구와 같이 명성의 접시를 거절하고 세간의 영광에 흔들리지 않으며 스스로의 삶을 써서 남겼다.

시인이 세상을 떠난 뒤 그가 남긴 1800여편의 시 중 몇 편을 고른 선집만 읽고 에밀리 디킨슨을 전부 안다고 할 순 없다. 그가 남긴 '생명의 빛(883)'에 나 자신을 잠시 비추고 갈 뿐이다. 영원히 꺼지지 않을 시의 빛.

내가 죽음에게 들를 수가 없어-

친절하게 그가 내게 들렀다-

마차에는 우리 둘-

그리고 불멸뿐.

우리는 천천히 달렸다-그는 전혀 서두르지 않았다.

그가 공손히 청하는 바람에

나는 하던 일과 휴가까지,

제쳐 두고 떠났다-

우리는 학교를 지났다-

노는 시간이라 아이들이-옹기종기 모여-놀고 있었다-

우리는 곡물들이 물끄러미 바라보는 들판을 지나쳤다-

우리는 지는 해를 지나쳤다-

아니 오히려-지는 해가 우리를 지나쳤다-

차가운 이슬방울이 떨렸다-

나는 얇은 드레스에-

망사-목도리만 두르고 있었다-

우리는 불룩한 둔덕처럼

보이는 집 앞에 멈췄다-

지붕은 거의 보이지 않고-

처마는-땅속에-묻혀 있었다-

그로부터-수백 년이 흘렀다-그런데

처음에 말의 머리가

영원을 향하고 있을 거라 추측한

그날 하루보다 더 짧은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에밀리 디킨슨, 712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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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속의 영원 - 저항하고 꿈꾸고 연결하는 발명품, 책의 모험
이레네 바예호 지음, 이경민 옮김 / 반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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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우리에게 시들지 않는 선례를 물려주었다. 인간의 평등, 지도자 선택의 가능성, 아이들에게 노동보다 교육이 낫다는 직감, 병자와 약자와 노인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 등, 이 모든 발명은 고대의 발견, 즉 불확실한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고전을 통해 가능했다. 책이 없었다면 우리 세계의 가장 좋은 것들은 망각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이레네 바예호, 갈대 속의 영원


내 책상 위엔 현대 한국 소설과 고대 로마 황제가 쓴 명상록, 16세기 프랑스에서 출간된 에세이 장르를 탄생시킨 책과 전 세계의 신화를 모아 놓은 책이 쌓여 있다. 시대를 가리지 않고 전 세계로 떠날 수 있다. 책상에 앉아 책을 펼치기만 한다면.


당연한 상식이기에 잊고 있지만, 사실 우리가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사상과 그 당시의 정치 체계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은 무척 이상한 일이다. 시간이란 거스를 수 없는 것인데 도대체 어떻게? 


책은 가능하다. 책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낡고 찢어지고 불에 타거나 파손될 위험은 충분하다. 정신 나간 독재자가 출간된 책들을 모두 태워버리고 구덩이에 던져버리라 명령할 수도 있다. 전 세계의 책이 모여 있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파괴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책은 영원하지 않다.


그리고 책은 영원하다. 사람들은 책의 파괴에 맞서 필사본을 만들고 책의 내용을 암기해 입에서 입으로 전달했다. 책이 금지되면 필연적으로 사본이 만들어지고 암암리에 유통되었다. 그렇게 시간을 거슬러 전해진 책들은 고전이 되어 양장본으로 제작되어 책장에 꽂혀 있다. 왕족이나 귀족이 아닌 평범한 인간의 서재 안에. 책을 통해 우리는 생각하고, 생각을 통해 인간은 자유로워진다. 책은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 그건 당연하면서 당연하지 않은 기적 같은 일이다.


산문은 사건과 논리의 세계를 보여주는 놀라운 매개물이 되었다. 혁신적인 표현들은 사유의 공간을 확장했다. 그로 인해 관점도 확장됐고, 이는 역사와 철학과 과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지적 작업을 가리키는 말로 '테오리아theoria'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말은 그리스어로 뭔가를 바라보는 행위, 즉 관조를 의미한다. 세계를 생각하는 일은 책과 독서를 통해 가능하다. 다시 말해, 급류처럼 흘러가는 말을 들어서가 아니라 말을 보고 그 말을 천천히 숙고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라틴어로 책libro은 자유libre를 의미하는 형용사와 비슷하게 들린다. 이 두 단어의 인도유럽어 기원은 서로 다르지만 말이다.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와 같은 로망스어는 그런 발음의 유사성을 물려받았고, 이는 '독서'와 '자유'를 동일시하는 언어유희를 가능케 한다. 모든 시대의 학식 있는 사람들에게 이 둘은 결국에는 하나로 합쳐지는 열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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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0
엔도 슈사쿠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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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 감동적인 독서 했다. 지극히 몰입한. 신은 어디에나 있으며 인간 밖이 안에 있다, 선과 악은 하나로 뒤엉켜 있다, 인간을 삶에서 죽음으로 실어 나르 강과 같은 . 신을 생각하며 쓰고 있는 설이린애처럼 느껴지. 현숙한인을 만나 지혜로 대화 듣는.


책을 읽고 인도 바라나시에 가고 싶다는 생각 굳이 가보지 않아도 있다는 생각 , 인도의난과선이 싫고 명의 관광객으로들에게 가벼이 뜯어먹히고 싶진 않다. 속에 형상화된인간의 깊은 강’으로서의 갠지스 강으로억하리라.


답이 없는문의 답을 찾아듬거리며 나아가 인간의 이야기 언제나 감동을 준다. 아내 잃고늦게 아내와랑을닫게 이소베, 인생에 의미 찾지 못하던 미쓰코, 자신만의 신을 찾아다니는 오쓰가 가 닿았다. 인간의침에 묵묵히 받아들이는 깊은 .

 


강은 그의 외침을 받아 내고 그대로 묵묵히 흘러간다. 그런데 그 은빛 침묵에는, 어떤 힘이 있었다. 강은 오늘까지 수많은 인간의 죽음을 보듬으면서 그것을 다음 세상으로 실어 갔듯이, 강변의 바위에 걸터앉은 남자의 인생의 목소리도 실어 갔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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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과 시작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대산세계문학총서 62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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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전화벨이 울린다. 그림 속의 왕들은 나라를 다스렸을 모르지만 전화를 받을 없다. 대리석으로 영원히 남겨진 영웅들은 굳어버린 손을 뻗어 전화를 받지 못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반응' 익숙한 예술품들에게 잘못 전화를 어떤 인간, '하지만 그는 엄연히 살아 있다, 그래서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실수) 시인은 미술관에 갔다가 우연히 잘못 걸린 전화벨소리를 듣고 시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시는 그런 것이다. '평범하다' 쉽게 얘기하는 일상의 순간이 모두 시다


우연히 깨어난 새벽 시는 '삼십대를 위한 시간'이자 '다른 모든 시간의 바닥' 된다.(새벽

가족 사진첩을 보며 그들이 무심한 세월 극적인 사건 없이 '결국 감기에 걸려 죽었다' 보통의 인간들을 조명한다.(사진첩

'이제는 내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수많은 나날 하나.'(1973 5 16


평범하다고 말하기조차 평범한 어떤 하루를 호명하며 시인은 시를 쓴다. 우주의 모든 날들을, 60억명의 모든 인간들을 시로 적지 못한 윤리적인 책임감에 시달리며.

 

지구상에 존재하는 60억의 사람들.

상상력은 그랬듯이 언제나 자리에 고정되어 있다.

거대한 숫자는 감당하지 못하고,

사소하고, 개별적인 것에 감동을 느낀다.

어둠 속에서 손전등 불빛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가장 앞줄에 있는 얼굴들만 닥치는 대로 비추곤 한다.

그럴 뒷줄에 있는 나머지 얼굴들은 모조리 생략되고 만다.

기억 속에서도, 회한 속에서도 그들은 영원 속으로 도태되고 만다.

-<거대한 숫자>중에서

 

'내가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할 없음을'(작은 아래서통감하는 시인은 역사가 쉽게 저지르는 잘못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는데, 전쟁이나 강제 수용소의 수많은 죽음을 숫자 하나로 뭉뚱그려버리는 태도를 말한다.

 

역사는 유골들을 어떻게든 제로(0) 상태로 결산하려 애쓰고 있다.

명에다 명이 죽어도, 여전히 명이라고 말한다.

명은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어딘가로 감쪽같이 사라져버린다.

-<야스오의 강제 기아 수용소>중에서

 

시는 이래야 하는 것이다. 명에서 누락된 명의 죽음을 목도하고 그를 기록하는 . 내가 잠든 동안 죽어간 목숨들, 내가 밥을 먹는 동안 지구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전쟁, 내가 멍하니 흘려보내는 초의 시간들을 놓치지 않고 기억하려 애쓰는 노력. 세상에 평범한 것은 어디에도 없고, 사는지 모르겠는 나라는 존재 자체부터 평범하지 않은 기적과 같은 결과물이니까.

 

우리는 정확한 단어를 찾아(단어를 찾아서) ' 모르겠어' 답을 해결하려 애써야 한다.

 

내가 '미래'라는 낱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단어의 첫째 음절은 이미 과거를 향해 출발한다.

 

내가 '고요'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순간,

나는 이미 정적을 깨고 있다.

 

내가 '아무것도'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이미 무언가를 창조하게 된다.

결코 무에 귀속될 없는

실재하는 무엇인가를.

 

-<가장 이상한 단어>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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