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 속의 영원 - 저항하고 꿈꾸고 연결하는 발명품, 책의 모험
이레네 바예호 지음, 이경민 옮김 / 반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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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우리에게 시들지 않는 선례를 물려주었다. 인간의 평등, 지도자 선택의 가능성, 아이들에게 노동보다 교육이 낫다는 직감, 병자와 약자와 노인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 등, 이 모든 발명은 고대의 발견, 즉 불확실한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고전을 통해 가능했다. 책이 없었다면 우리 세계의 가장 좋은 것들은 망각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이레네 바예호, 갈대 속의 영원


내 책상 위엔 현대 한국 소설과 고대 로마 황제가 쓴 명상록, 16세기 프랑스에서 출간된 에세이 장르를 탄생시킨 책과 전 세계의 신화를 모아 놓은 책이 쌓여 있다. 시대를 가리지 않고 전 세계로 떠날 수 있다. 책상에 앉아 책을 펼치기만 한다면.


당연한 상식이기에 잊고 있지만, 사실 우리가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사상과 그 당시의 정치 체계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은 무척 이상한 일이다. 시간이란 거스를 수 없는 것인데 도대체 어떻게? 


책은 가능하다. 책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낡고 찢어지고 불에 타거나 파손될 위험은 충분하다. 정신 나간 독재자가 출간된 책들을 모두 태워버리고 구덩이에 던져버리라 명령할 수도 있다. 전 세계의 책이 모여 있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파괴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책은 영원하지 않다.


그리고 책은 영원하다. 사람들은 책의 파괴에 맞서 필사본을 만들고 책의 내용을 암기해 입에서 입으로 전달했다. 책이 금지되면 필연적으로 사본이 만들어지고 암암리에 유통되었다. 그렇게 시간을 거슬러 전해진 책들은 고전이 되어 양장본으로 제작되어 책장에 꽂혀 있다. 왕족이나 귀족이 아닌 평범한 인간의 서재 안에. 책을 통해 우리는 생각하고, 생각을 통해 인간은 자유로워진다. 책은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 그건 당연하면서 당연하지 않은 기적 같은 일이다.


산문은 사건과 논리의 세계를 보여주는 놀라운 매개물이 되었다. 혁신적인 표현들은 사유의 공간을 확장했다. 그로 인해 관점도 확장됐고, 이는 역사와 철학과 과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지적 작업을 가리키는 말로 '테오리아theoria'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말은 그리스어로 뭔가를 바라보는 행위, 즉 관조를 의미한다. 세계를 생각하는 일은 책과 독서를 통해 가능하다. 다시 말해, 급류처럼 흘러가는 말을 들어서가 아니라 말을 보고 그 말을 천천히 숙고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라틴어로 책libro은 자유libre를 의미하는 형용사와 비슷하게 들린다. 이 두 단어의 인도유럽어 기원은 서로 다르지만 말이다.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와 같은 로망스어는 그런 발음의 유사성을 물려받았고, 이는 '독서'와 '자유'를 동일시하는 언어유희를 가능케 한다. 모든 시대의 학식 있는 사람들에게 이 둘은 결국에는 하나로 합쳐지는 열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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