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의 미친 여자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박오복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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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절판 상태였던 [다락방의 미친 여자] 재출간 펀딩 알람이 뜨자마자 주문했다.


9월 초 책을 받아 오늘까지 두 달 넘게 천 페이지가 넘는 '다락방'에 갇혀 탐독했다.


다락방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자, [제인 에어]의 미친 여자가 갇혀 있던 '다락방'이자 수많은 여성들이 가부장의 명령에 복종 혹은 불복종한 대가로 감금된 방이다. '집안의 천사'라는 이미지에 끼워맞춰야만 했던 재능 있는 여성들에게 주어진 두 가지 길-패배하거나, 미치거나. 그리고 지지 않기 위해, 미치지 않기 위해 소설과 시로 새로운 길을 찾아나섰던 19세기 여성 작가들-제인 오스틴, 메리 셸리, 브론테 자매, 조지 엘리엇, 에밀리 디킨슨, 선배 작가의 작업을 이어나가는 20세기의 버지니아 울프, 실비아 플라스, 도리스 레싱...그녀들의 ‘다시 쓰기’.

앞으로 보겠지만, 여성 작가는 남성 작가가 만들어놓은 '천사'와 '괴물'이라는 양극단의 이미지를 특별히 더 읽어내고 적응하고 초월해야 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쓸 수 있으려면 먼저 '집 안의 천사를 죽여야 한다'고 선언했다. 다시말해 여성은 자기를 '살해해' 예술에 가두어놓았던 미학적 이상을 죽여야 한다. 모든 여성 작가는 천사와 정반대쪽에 있는 대립쌍인 집 안의 '괴물'도 죽여야 한다. 메두사의 얼굴을 한 이 괴물도 여성의 창조력을 죽이기 때문이다. 샌드라 길버트, 수전 구바 [다락방의 미친 여자], 95쪽

가부장이 선점 언어를 빼앗긴 여성들은 스스로를 정의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분열된다. '오히려 미친 여자는 어떤 의미에서 작가의 분신이고 작가 자신의 불안과 분노의 이미지다. 실제로 여성이 쓴 많은 소설과 시에는 미친 여자가 출현한다.' (189쪽)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오래도록 사랑하며 반복해서 읽어 왔던 내 눈 앞에 이 책이 펼쳐 보인 제인 에어-버사의 분열된 자아 분석은 충격적이었다.


마찬가지로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의 핵심적인 커플, 캐서린 언쇼-히스클리프의 자아 분열 과정을 목도하는 건 익숙한 작품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만들었다.

미치지 않기 위해 미친 여성을 소설 속에 풀어놓는 전략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한 작가들, 아예 '흰옷을 입은 여자'로 미친 여성 그 자체가 되는 것으로 예술의 궁극을 탐구한 시인.


내게 이 책은 분투하는 등장인물로 가득한 한 편의 교양 소설로 읽힌다. 교양소설이 내면적으로 형성해 나가는 과정을 묘사한 소설이라면, [다락방의 미친 여자] 속 수많은 여성들이야말로 스스로를 정의하는 일에 온 존재를 바친 진정한 주인공들이다.


자신의 어려운 처지에 대처하기 위해 다시 쓰기를 선택한 여성 작가는 비록 자신의 분노를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할 수는 있었을지라도, 남성이 만든 장르나 인습 안에서 여성의 비밀을 은폐하며 양피지에 덧쓰거나 암호화된 예술 작품을 생산했다. [폭풍의 언덕]을 비롯해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도깨비 시장>, 버지니아 울프의 [올란도], 실비아 플라스의 [에어리얼]같은 좀 더 최근의 여성(페미니즘적이기까지 한)신화들은 바로 이런 방법을 선택한 여자들의 작품이다.샌드라 길버트, 수전 구바 [다락방의 미친 여자], 413쪽


가부장제를 거부하는 여자는 타자의 통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해방을 통해서 권력을 찾고자 한다. 여자들에게 권력 자체는 치명적이지 않아도 위험한 것처럼 보인다. 사회에 수용될 수 있는 통로를 제공받지 못한 독립적이고 창조적인 여자는 교활한 마녀로 낙인 찍힌다. 만약 그녀가 예술가가 된다면, 그녀는 자아 파괴의 가능성에 직면하고, 만일 그녀가 예술가가 되지 않는다면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파괴할 것이다. 와스디가 여성의 예술성이 불러올 고통을 구현하고 있다면, 마담 발라펜스는 예술가가 되지 못하고 불구의 '비여성화된'역할에 갇힌 자의 무시무시한 결말을 보여주고 있다. 여성 예술가는 자신을 부활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샌드라 길버트, 수전 구바 [다락방의 미친 여자], 753쪽


로세티와 브라우닝 같은 작가들, 우리가 보았던 모든 소설가가 허구를 만들어낼 때 몽환에 도취되어 표현했던 분노와 죄의 환상을 디킨슨은 삶과 그녀 자신의 존재로 글자 그대로 수행했다. 조지 엘리엇과 크리스티나 로세티는 파괴와 체념의 천사에 대해 썼던 반면, 디킨슨은 스스로 그런 천사가 되었다. 샬럿 브론테가 자신의 불안을 고아의 이미지에 투사할 때, 에밀리 디킨슨은 스스로 그 아이의 역할을 재연했다. [래크랜트 성]의 마리아 에지워스에서 [제인 에어]의 샬럿 브론테, [폭풍의 언덕]의 에밀리 브론테, [미들마치]의 조지 엘리엇에 이르는 18세기 말과 19세기의 거의 모든 여성 작가는 '미친 여자'라는 씁쓸한 자화상을 자기 소설의 다락방에 은닉시켰던 반면, 에밀리 디킨슨은 스스로 미친 여자가 된 것이다. 샌드라 길버트, 수전 구바[다락방의 미친 여자], 9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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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심장 가까이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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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도중에 미쳐 버리지 않고 삶을 이해하게 된다 해도 그 앎을 지식으로 보존하기란 불가능하다. 삶을 완전하게 소유하고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앎을 하나의 태도, 삶의 태도로 삼는 것이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야생의 심장 가까이


처음 이 글의 제목은 '삶을 살아가기의 어려움'이었다.

소설도 아닌 소설 감상문의 제목으로 지나치게 거창하다.

삶을 살아가기, 그냥 살면 되는 것 아닌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데뷔작 [야생의 심장 가까이]의 주인공,

주아나는 그냥 살지 않는-못한다.

생각 없이 살 수 없다. 그건 삶이 아니니까.

그러나 생각하며 살면 광기가 기다린다, 필연적으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존재한다(222쪽)


주아나, 그녀, 여자는 지나치게 존재한다.

숨 쉬는 것을 의식하는 순간부터 숨이 부자연스러워지듯,

삶을 사유하는 순간 삶은 한없이 무거워진다.

이토록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삶을 지탱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주아나가 찾은 답은?

주아나를 통해 탐구하는 리스펙토르의 결말은?

이 소설 전체가 답이 될 수 있고,

답을 부정할 수도 있다.

요약 불가능, 사실 소설은 한 줄로 요약할 수 없다.


소설을 소유하는 유일한 방법은 소설을 태도로 삼는 것이다.


리스펙토르라는 하나의 태도,

나는 그 태도에 매혹되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없다는 건 기이한 일이다. 너무 잘 아는 걸 말할 수가 없으니까. 무엇보다도 그걸 말하기가 두렵다. 말하려는 순간 내가 느끼는 걸 표현할 수 없을뿐더러, 내가 느끼는 것이 서서히 내가 말하는 것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같은 책, 27쪽


나는 비 위에 있는 기적을 발견했어, 하고 주아나는 생각했다. 굵다랗고, 진지하며, 반짝거리는 별들로 쪼개진 기적. 고정된 경고 같은: 등대 같은. 그것들은 무엇을 말하려 하는 걸까? 나는 그들이 품은 비밀을 감지한다. 그 반짝임은 내 안에서 흐르는 신비, 광범위하고 필사적이며 낭만적인 음조로 흐느끼는 무감각한 신비다. 신이시여, 적어도 그것들과는 소통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것들에 입 맞추며 갈망을 만족시킬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들의 빛을 제 입술로 느끼고, 그 빛이 제 몸 안에서 빛나게 해 주세요. 그리하여 내 몸이 동트기 직전의 순간처럼 투명하고 시원하고 촉촉한 상태로 반짝이게 해 주세요.

같은 책, 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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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심장 가까이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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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펙토르라는 하나의 태도를 지니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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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을유사상고전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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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새해 첫 달 이 책과 함께 보낼 수 있어 행운이었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삶의 습관을 점검하고 새로운 태도로 몸과 마음을 다듬을 좋은 기회니까. 개인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쇼펜하우어가 건네는 적절한 조언들에 큰 도움을 받았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의 원제는 '소품과 부록'이고 쇼펜하우어의 대표 저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이후에 출간되어 그에게 뒤늦은 명성을 안겨 준 책이다. 독서 순서는 이 책을 먼저 읽고 '나 쇼펜하우어와 궁합이 잘 맞네...?'하면 자연스럽게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로 넘어가는 것이 좋다. 훨씬 명료한 서술과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내용들-우리에게 행복만큼 중요하고 궁금한 관심사가 어디 있겠는가?-이 쇼펜하우어의 세계로 진입하는 장벽을 가볍게 낮춰 준다.


책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제목에 집중하여 '행복론'을 중심으로 정리한다면,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행복이란 '나 자신으로부터, 고통을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것'이라는 방법론으로 말할 수 있다. 세계는 나의 표상-먼저 내가 있고 그다음에 세계가 있다-이고, 삶이란 고통이며, 지금 이 순간이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쇼펜하우어의 세계관은 고통으로 가득한 의지(욕망, 욕구, 갈망, 추구, 노력 등)로 이루어진 곳이다. '인생이란 어떻게든 끝마쳐야 하는 힘든 과제와 같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때 "나는 인생을 견뎌 냈다"라는 말은 멋진 표현이다(266쪽)' 행복한 상태는 소극적이고 고통은 적극적이기에 우리는 고통을 줄이는 방법으로 행복에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37쪽, 이 때문에 가장 좋고 가장 바람직한 것은 각자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고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이 많을수록, 따라서 향유의 원천을 자기 자신 속에서 더 많이 발견할수록 인간은 더 행복해진다.

115쪽, 그러므로 행복론은 그 명칭 자체가 미화하는 표현이고, '행복하게 산다'라는 말은 '덜 불행하게', 즉 그럭저럭 견디며 산다는 의미일 뿐이라는 가르침으로 시작해야 한다. 물론 인생이란 향락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을 이겨 내고 처리하기 위한 것이다.

127쪽, 현재만이 진실하고 현실적이다. 현실은 현실적으로 충만한 시간이고, 우리의 생활은 오로지 현실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현재를 항시 명랑한 기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직접적인 불쾌감이나 고통이 없는 그런대로 견딜 만한 자유로운 시간은 일부러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이 좋다. 다시 말해 과거에 품은 희망이 실패로 돌아갔다거나 미래에 대한 우려 때문에 짜증 난 얼굴로 현재를 우울하게 보내서는 안 된다. 지난 일에 대한 불만이나 미래에 대한 우려 때문에 현재의 좋은 시간을 내팽개치거나 경솔하게 망쳐 버리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다.

131쪽,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고 자기 자신이 전부일 수 있어서, "나는 모든 재산을 몸에 지니고 다닌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확실히 우리의 행복에 가장 유익한 특성이다.


삶은 고통이라는 관점이 절망적이라는 인식보다 고통이기에 이를 견딜 방법을 모색하는 긍정적 태도가 크게 다가왔다. 고통을 견딜 주체는 오직 나 자신 뿐이니 내가 할 일은 나를 다듬는 것. 타인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외부의 요인(돈, 명예, 우리가 욕망하는 수많은 것들)에 나의 행복을 의탁하고 얽매이지 않으며, 스스로 자유로워 질 것. 그렇다고 세계와 아주 단절되지는 말 것. 고슴도치들이 상대방의 가시를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발견하듯(이 비유를 쇼펜하우어가 처음 썼다! 503쪽) 서로를 견디고 존중할 수 있는 정중함과 예의를 발견할 것.


이만하면 연초에 읽을 만한 훌륭한 행복론과 인생론이 아니겠는가.

#쇼펜하우어 #철학자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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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 난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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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알람 ‘신형철’ 이름 하나에 두근거리는 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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