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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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가장 아팠던 건 <답신>, 

울었던 건 <이모에게>, 

기억에 남는 대사는 <일 년>, 

밑줄이 많은 건 <몫>, 따뜻함은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반복해서 읽을 작품은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너는 왜 그렇게 예민하냐며 너만 참으면 된다고 뭉뚱그리는 세상의 폭력에 맞서는 아주 희미한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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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인생
이슬아 지음, 이훤 사진 / 디플롯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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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끝내주는 인생이었어."

임종 직전 이 말을 하늘 한 점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인생이란,

가령 이슬아의 '끝내주는 인생' 행보를 따라가 본다면


성실히 노동하고(그녀는 글을 쓴다, 마감에 괴로워하며..)

꾸준히 운동하고(태권도장과 요가원을 다니고 달리기를 한다)

가까운 이를 사랑하고, 사랑의 기록을 남기고, 

고양이 탐이의 죽음을 슬퍼하고 살처분되는 돼지의 죽음을 슬퍼하고 고기를 먹지 않고

영어 공부를 하고 영어 선생님과 친해지고 같이 작업을 하고

군부대에서 강연하는 실수(ㅋㅋㅋ)를 하고, 기타 등등


이슬아 작가님의 글을 읽고 나면 나를 둘러싼 세상의 빛이 조금 달라지는데

그 빛은 깊은 밤 적당한 조도의 조명을 켠 책상 위 빛과 같은 종류의 것이다.

세상을 조금 더 깊게 볼 수 있는 빛이다.


내 주변의 세상이 나의 인생이다.

그녀의 끝내주는 인생의 여정을 꾸준히 글로 따라잡으며 나 역시 나의 인생을 '끝내준다'는 수식어로 꾸밀 수 있기를 조금은 소망한다. 

살아남는 이야기는 끝이 없다. 나이 든 언니들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말하곤 한다. 하나의 고생을 지나면 또 다른 고생이 있는 삶이었다고. 그중에서도 어떤 언니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끝내주는 인생이었다고. 그 언니의 말을 들으면 너무 용기가 나서 막 웃는다.
나는 내가 고생 한복판에서도 이렇게 농담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희망한다. "오, 끝내주는데?" 임종 직전에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정말이지 끝내주는 인생이었어." 그날이 죽는 날임을 미리 알아차릴 행운이 주어진다면 말이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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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밤과 화해하기 원한다 (알라딘 한정판 북커버 에디션) - 엘제 라스커 쉴러 시집
엘제 라스커 쉴러 지음, 배수아 옮김 / 아티초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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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작가님 번역이라 더 기대되는 시집 새롭게 발견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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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미쳐 있는 - 실비아 플라스에서 리베카 솔닛까지, 미국 여성 작가들과 페미니즘의 상상력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류경희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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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대로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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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 암실문고
브라이언 무어 지음, 고유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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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은 무조건적으로 사랑스러워야 할까?


몰입도 높은 이 소설의 주인공 주디스 헌 양은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일찍 부모를 잃고 아픈 이모 병수발하다 혼기를 놓친 독신녀 헌 양은 재산도 거의 없고 외모는 못생긴, 재산도 미모도 가진 것이 거의 없는 인물이다. 


그가 가진 건 끝을 모르는 망상, 약간의 연금. 자수와 피아노를 가르치며 하숙집을 전전하는 그는 알코올 의존증을 가지고 있고, 소설 본편 속 라이스 부인의 하숙집에서 일련의 사건을 겪은 뒤 알콜중독으로 급격하게 내리막을 탄다. 상대의 말을 부풀려 해석하고 쉽게 의지하다 상대가 손절하면 악한 인물로 매도하고 공격하며 집착한다. 절망 속에서 술을 마신다. 계속해서 마신다.


-393쪽, 당신에게는 남은 희망이 없어요, 모이라. 그럼 당신도 나처럼 되는 거예요. 대낮에 망상이나 하면서 그 꿈을 붙잡고 싶어 하는 거죠. 하지만 붙잡을 수 없어요. 그래서 술을 마셔요. 그 망상을 실현해주는 힘을 얻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모이라, 그 인간이 실제로는 어떤 인간이건 간에, 그는 당신에게 상냥한 말을 건네는 왕자님이 되요.


내 주변에 헌 양 같은 이가 있다면, 술을 마시고 한밤중에 집 문을 두드리며 내 얘기 좀 들어 달라 절규하는 이가 있다면 순순히 받아줄 자신은 없다. 조용히 손절하고 외면하지 않을까..


외로움,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인간이 얼마나 될까. 

고독과 외로움은 다르다. 능동적인 고독과 수동적인 외로움의 어마어마한 차이. 외로움은 형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소설 속에서도 독신 남성과 독신 여성의 차이를 비교하며 묘사하듯, 과거에는 남성보다 여성이 외로움을 견디기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멀리 여행을 떠나기도 어렵고, 돈을 버는 일에도 한정적이고, 수입 자체가 차이가 날 수밖에 없고,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종착지는 수녀원이나 요양원 뿐이지 않았을까. 스스로를 책임질 방법이 없다. 그러니 술을 마시며 망상 속으로 도주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독신 여성에 대한 경고나 풍자, 조롱이 주제가 아니다. 동정하기 쉽고 받아들이긴 어려운 이 주인공은 외로움이라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발버둥치는 실존적인 인간이다. 배우자와 친구에게 사랑받으며 살아가는 삶을 욕망했고, 그 단순하고 평범한 욕망은 충족되지 못할 수록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망상이 비대해져만 갔다. 욕망이 좌절될수록 발버둥치고 발버둥칠수록 더 낮은 곳으로 추락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불편하다. 그리고 좋은 소설은 불편한 소설이다. 


'너는 추하고 가난하여 외롭게 살아야 한다'는 선고에 납득하지 못하고 애써 보지만 카프카적인 소송은 집행되고 주디스 헌은 병원에 갇힌다. 우리는 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함부로 그의 노력을 비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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