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렇게 19세기 영국 소설에 미친듯이 빠져드는 것일까,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가 너무 재미있고 대단하다고 하루 종일 떠들 수 있는 덕후의 마음은 이미 BBC선정 가장 위대한 영국 소설 등 다수의 추천 도서 목록 상위에 이 소설이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로 뒷받침한다. 항상 궁금했다. '위대한 소설' 운운하는 목록에서 [미들마치]를 자주 마주치는데 완역본으로 읽을 기회가 없었다. 작년 주영사에서, 올해 민음사에서 연이어 한국어 번역본이 나왔고 드디어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19세기 영국 소설을 사랑할까, 독서 입문기에 돌잡이로 제인 오스틴을 잡아버렸고 첫만남의 강렬함이 독서 유전자에 굳게 새겨진 결과일지도. 왜 그녀는 단 여섯 권의 장편소설만 남겼는지 원망하며 읽고 또 읽었다. 제인 오스틴은 1817년 42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그로부터 2년 뒤 조지 엘리엇이 태어난다. [미들마치]를 읽으면서 생각했다. 만약 제인 오스틴이 작가로서 경제적인 안정과 건강을 챙겨가며 오래 소설을 쓸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미들마치]와 같은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혼자서 상상해 보는 것이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 현대 로맨스물의 기원이자 기초라면,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는 현대 장편소설의 모든 것, 소설이라는 장르의 정체성이다. 19세기 영국의 시골 도시 미들마치를 배경으로 한 시대를 생생하게 형상화하는 기법,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 개성을 가지고 살아 움직이는 모습, 인간의 심리를 정교하게 드러내는 문체, 당대 철학적, 윤리적 과제를 탐구하는 진지한 소설적 주제. 버지니아 울프가 '성인을 위해 쓰인 극소수의 영국 소설 중 하나'라 평한 말 그대로 우리는 소설을 단순한 재미가 아닌 윤리적이고 철학적 탐구를 위해 읽기도 한다는 사실을 [미들마치]는 증명한다.
한국어 번역본 기준 1400페이지가 넘는 대작이라 작품의 장점에 대해 열거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첫 완독에서 눈에 들어온 건 주인공 도러시아의 운명과 선택이다. 소설 프롤로그(프렐류드)에서 작가는 성녀 테레사를 예로 들어 높은 이상을 품은 인물은 계속해서 태어나지만 이를 실현시킬 만한 세상이 아닐 경우에 대해 언급한다. 성녀 테레사의 영혼을 가지고 19세기 빅토리아 영국 시대 태어난 여자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여자에게 선택지란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 뿐이다. 소설은 '결혼'을 중심으로 도러시아와 리드게이트 두 인물을 상세히 다룬다. 그들은 높은 이상을 추구하고, 추구하는 과정에서 결혼이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믿고 결혼하고, 실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