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라도 일기를 쓰지 않으면 손가락에 가시가 돋고 집 앞 편의점에 잠깐 나갈 때도 주머니에 수첩과 펜을 챙겨야 하는 일기 분리불안증을 30년 넘게 앓고 있는 내가, 작년 가을 '일기'를 주제로 한 고요서사 문체연구반에 참여한 건 뻔한 클리셰일 수 있다. 사람들이 모여 일기를 읽고 자신이 쓴 일기를 공개하고 오직 일기 얘기만 하는 행복한 시간...! 을 주관한 금정연 작가님은 하루종일 일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아마?) 인간 일기이자 일기의 인간화로, 초록초록한 새싹이 돋아나는 봄 초록초록한 일기책을 출간하고야 말았다.
일기의 일기, 일기의 읽기, 금정연 작가님 본인의 일기이자 다른 작가의 일기를 인용한 일기 읽기이자 일기에 대한 고찰이 담긴 일기는 지금까지 책으로 출간된 타인의 일기를 실컷 읽고 즐길 수 있는 일기의 서적화로...일기는 원래 책이 맞긴 한데? 다만 보통의 인간인 우리는 일기를 쓸 때 책 출간을 염두에 두고 쓰진 않는다. 아무도 읽지 않으리란 사실을 알면서도 쓰는 글쓰기가 일기다. 내 일기의 독자는 오직 나 한 명 뿐이다.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고독한 작업이고 고독의 끝판왕일 일기 쓰기를 우리는 왜 멈추지 않는 것일까. 초등학생 때 숙제로 꼬박꼬박 쓴 일기 쓰기의 습관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은 자기계발적 사고관의 채찍질일까, '내가 아는 최고의 핑계'(270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