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에필로그
정영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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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쪽, 내가 옆으로 새는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내가 소설을 쓰면서 계속해서 시달리게 되는 또다른 한 가지, 그다지 크지도 작지도 않지만 저항할 생각이 없고 되도록 저항하지 않는, 말을 가장 무용한 방식으로 쓰고 싶은 유혹 때문이고, 나는 말을 유용하게보다는 무용하게 사용하는 것이, 그리고 무용하게 사용할수록 더 흥미롭기도 하고, 이 소설은 말을 얼마나 무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 보는 것이기도 하고, 옆으로 새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소설에도 삶에도 핵심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옆으로 새는, 아무런 핵심이 없는 하나마나 한 거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길게 하다보면 때로는 생각 자체가 없어지며 아무 생각도 들지 않게 되며 일종의 명상 상태에 들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것과는 상관없이, 나는 그런데, 라는 이 단순하고 보잘것없어 보이고 별로 하는 것도 없어 보이고 그래서 무시해도 좋을 것 같아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접속부사에 대해서라면 할말이 꽤 있지만 그것에 대해서까지 얘기할 것은 없는 것 같고, 그런데 나는 약간의 정신적 자유를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종의 정신적 스트레칭으로 괜찮은 것으로 생각하기는 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옆으로 새게 하는 것은 일종의 정신적 스트레칭을 과도하게 하는 것으로, 그 부작용으로 정신과 몸이 뻐근해지는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고,


나는 이 소설을 집 앞 한강공원에서 돗자리를 펴고 읽기 위해 챙겼는데, 이 소설을 읽다가 한 문단이 한 문장인 아무리 읽어도 끝이 나지 않는 문장의 강물에 빠져 흘러가다보면 책 내용이 아닌 내 생각에 빠져 곁길로 새게 되는데, 서사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하기엔 정영문의 소설은 서사랄 게 없고 핵심이 없고 도무지 주제랄 게 없어 보이는 애매모호함이 싫은 사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영문의 강물을 탈출하겠지만 나는 기꺼이 소설의 강물에 몸을 담가보는데,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 아닌 딴생각에 빠진 내 모습을 작가가 흐뭇하게 바라보지는 않겠지만, 본인이 본문에서 권유한 정신적 스트레칭을 정석으로 하는 독자를 귀여워하는 마음은 조금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서사가 없다고는 할 수는 없는게 작가이자 주인공인 나는 캐나다 벤쿠버에 갔고, 벤쿠버 해안에 떠내려오는 인간의 발에 대한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이야기가 있고, 티라미수의 기원에 대한 탐구가 있고, 오므라이스와 오믈렛의 차이에 대한 연구 혹은 거대한 호박에 대한 고찰 혹은 프랑스 브르타뉴의 기억 혹은 캐나다에서 실종된 수입 낙타 혹은 야쿠자 혹은 예술가 혹은 19세기 소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는, 앞의 내용을 떠올리기 위해 소설을 뒤적이며 눈에 보이는대로 주섬주섬 집어넣어 보았는데, 이 독후감을 아무도 읽지 않겠지만 혹 읽게 된다면 도대체 저 소재들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궁금한 사람이 있지는 않겠지만 있다면 꼭 본문을 읽어보라고 할 수 있고, 말을 가장 무용한 방식으로 쓰고 싶은 유혹을 이기지 못해 옆으로 새고 또 새는 소설을, 핵심이 없는 소설을,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하는 소설 속에서, '소설에도 삶에도 핵심이 없다'는 주제를 기어코 뽑아내 가지고 가는 주입식 문학 교육을 받았고 고대로 그런 교육을 하는 습관이 나와버려 작가의 의도에 벗어난 독서를 한 기록을 여기에 남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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