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가진 권력 중 하나는 지금은 가능하지 않은 일을 실현시킬 수 있는 힘이다. 인공자궁이 실현화되어 정자와 난자만으로 인간이 태어날 수 있다면? 인간의 신체 없이도 출생이 가능해진 세계라면? 자연스럽게 올더스 헉슬리의 1932년 소설 [멋진 신세계]가 떠오른다. 모든 인간이 인간 부화기에서 태어나는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의 뒤를 이어, 한국인의 일부가 인공 자궁에서 태어나는 204X년의 세계는 멋지다고 할 수 있을까?
인공 자궁에서 태어난 체외인은 '멋진 인간brave new human'이라 할 수 있을까? 소설을 통해 우리는 잠시 상상해 본다. 생물학적으로 인간과 구분되지 않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부모가 존재하지 않고 가족을 가지지 않은 인간은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혹 사랑의 결여나 무딘 감정 등 비인간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애초에 인간이란 무엇이고 인간성이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정지돈의 소설은 인공 자궁을 다룬 디스토피아 소설이자, 인공 자궁이라는 소재를 거울 삼아 용기 있게 인간의 내부에 존재하는 심연을 들여다 본 하나의 시도다. 거울 속에 비친 건 악몽(-47쪽, 우리는 악몽을 업데이트하고 있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