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들마치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6
조지 엘리엇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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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성녀 테레사가 태어나지만 그 무엇도 창시하지 못했고, 이루지 못한 선을 향한 다감한 심장의 고동과 흐느낌은 오랫동안 인정받을 행위에 집중하지 못한 채 장애물들 사이에서 파르르 떨며 흩어져 버린다.

조지 엘리엇, [미들마치], 프렐류드 9p, 민음사


나는 왜 이렇게 19세기 영국 소설에 미친듯이 빠져드는 것일까,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가 너무 재미있고 대단하다고 하루 종일 떠들 수 있는 덕후의 마음은 이미 BBC선정 가장 위대한 영국 소설 등 다수의 추천 도서 목록 상위에 이 소설이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로 뒷받침한다. 항상 궁금했다. '위대한 소설' 운운하는 목록에서 [미들마치]를 자주 마주치는데 완역본으로 읽을 기회가 없었다. 작년 주영사에서, 올해 민음사에서 연이어 한국어 번역본이 나왔고 드디어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19세기 영국 소설을 사랑할까, 독서 입문기에 돌잡이로 제인 오스틴을 잡아버렸고 첫만남의 강렬함이 독서 유전자에 굳게 새겨진 결과일지도. 왜 그녀는 단 여섯 권의 장편소설만 남겼는지 원망하며 읽고 또 읽었다. 제인 오스틴은 1817년 42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그로부터 2년 뒤 조지 엘리엇이 태어난다. [미들마치]를 읽으면서 생각했다. 만약 제인 오스틴이 작가로서 경제적인 안정과 건강을 챙겨가며 오래 소설을 쓸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미들마치]와 같은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혼자서 상상해 보는 것이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 현대 로맨스물의 기원이자 기초라면,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는 현대 장편소설의 모든 것, 소설이라는 장르의 정체성이다. 19세기 영국의 시골 도시 미들마치를 배경으로 한 시대를 생생하게 형상화하는 기법,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 개성을 가지고 살아 움직이는 모습, 인간의 심리를 정교하게 드러내는 문체, 당대 철학적, 윤리적 과제를 탐구하는 진지한 소설적 주제. 버지니아 울프가 '성인을 위해 쓰인 극소수의 영국 소설 중 하나'라 평한 말 그대로 우리는 소설을 단순한 재미가 아닌 윤리적이고 철학적 탐구를 위해 읽기도 한다는 사실을 [미들마치]는 증명한다.


한국어 번역본 기준 1400페이지가 넘는 대작이라 작품의 장점에 대해 열거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첫 완독에서 눈에 들어온 건 주인공 도러시아의 운명과 선택이다. 소설 프롤로그(프렐류드)에서 작가는 성녀 테레사를 예로 들어 높은 이상을 품은 인물은 계속해서 태어나지만 이를 실현시킬 만한 세상이 아닐 경우에 대해 언급한다. 성녀 테레사의 영혼을 가지고 19세기 빅토리아 영국 시대 태어난 여자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여자에게 선택지란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 뿐이다. 소설은 '결혼'을 중심으로 도러시아와 리드게이트 두 인물을 상세히 다룬다. 그들은 높은 이상을 추구하고, 추구하는 과정에서 결혼이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믿고 결혼하고, 실패한다.


그런 슬픔에 대해서 무엇보다도 많이 생각했어요. 위대한 것을 사랑하고 그것에 도달하려 애쓰지만 실패하고 마는 것 말이에요.

조지 엘리엇, 미들마치, 2권 549쪽, 민음사


시대적 한계에 부딪힌 여자 도러시아, 역사에 남을 의학적 발견을 추구했으나 몰락하는 리드게이트, 둘 말고도 소설 속 미들마치에 거주하는 수많은 인물이 뭔가를 추구하고 실패하고 때로 뭔가를 얻는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발버둥친다. 대부분 얻는 데 실패한다. 그 과정을 따라가며 그들과 우리는 뭔가를 얻는다. '새로 태어난 테레사는 수도원 체제를 개혁할 기회를 얻지 못할 테고, 새로 태어난 안티고네는 오빠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모두에게 도전하느라 자신의 영웅적 신심을 소진하지 않을 것이다.'(2권 668쪽) 우리의 시선은 하늘로 향해 있으나 두 다리는 땅에 단단히 묶여 있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소설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맺음된다.


하지만 그녀의 존재가 주위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은 헤아릴 수 없이 퍼져 나갔다. 세상의 점진적 개선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행위 덕분이기도 하고, 당신이나 내가 처한 상황이 대단히 나쁠 수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충실히 무명의 삶을 살다가 아무도 찾지 않는 무덤에서 쉬고 있는 많은 사람들 덕분이기도 하다.

조지 엘리엇, 미들마치 2권 피날레, 669쪽, 음사


왜 소설을 읽어야 하는지 묻는다면 이 소설을 읽어보라 하고 싶다. 누군가는 이렇게 두꺼운 19세기 소설을 왜 읽어야 하냐며 도망칠 테고, 어떤 이는 끝까지 읽은 뒤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자며 달려올 지도 모르고, 나는 기꺼이 기다린다. 제 취미는 19세기 영국 소설 읽기입니다, 입문서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추천합니다, 심화 버전으로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를 읽고 오십시오. 소설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주제로 토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인간의 역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인간이라는 신비로운 혼합체가 시간의 다양한 실험대에 올라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성녀 테레사의 생애를 잠시라도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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