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황금 물고기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수철 옮김 / 문학동네 / 199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의 첫 문장은 ‘예닐곱 살 무렵에 나는 유괴당했다.’이다. 첫 문장부터 그녀의 표류를 있게 한 근원적 이유이자 그녀에게 가장 아픈 상처인 사실을 담담하게 털어놓고 있다. 제일 약한 부분을 처음부터 내보이는 화자가 나에게 더 이상 숨길 사실이란 것이 무엇이 있을까? 아무것도 숨기는 것 없이 다 털어놓을 것 같았다. 그런 화자를 대하는 나는 왠지, 술자리에서 자신의 내밀한 부분까지 털어놓는 친구를 앞에 둔 것처럼 왠지 모를 친근감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털어놓을까 궁금함을 가지며 소설에 집중할 수 있었다. 과연,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매우 흥미로웠다.
이 소설을 처음 접할 때 나는, 시절이 어려웠지만 순수함을 잃지 않았던 과거를 회상하는 소설 또는 순수했던 화자가 세상과 접촉하면서 농익은 중년으로 변해가는 소설을 생각했다. 이 책에서도 라일라라는 소녀는 많은 일을 겪으면서 점점 나이 들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이 소설을 한 편의 성장소설로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책장을 덮을 즈음에 와서 나는 이 책은 한 소녀의 성장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한 개인의 성장이야기가 아니라 한 집단의 성장이야기 같았다. 그렇게 느낀 이유는 세상의 올가미와 그물이 위협하는 황금 물고기인 라일라로부터 눈을 돌리니 수많은 황금 물고기가 라일라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라일라들’이었다. 라일라처럼 검은 피부를 가진 흑인들도 또 다른 황금 물고기였고, 사회의 뒤편에서 가늘게 호흡하는 소수자들도 황금 물고기였다. 한편 아직도 식민 시대의 의식을 버리지 못한 일부 백인들, 소수자를 억압하는 지배자들은 황금 물고기를 가두려는 그물이며 올가미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라일라의 성장이야기라기보다는 라일라가 대표하는 각 세계의 소수자들의 ‘역사’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서구인들의 비서구인들에 대한 식민주의. 식민주의는 실패했지만 차별과 의식 속의 지배는 아직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그 의식 속에 존재하는 차별은 현실에서 다시 발현된다. 그 악순환. 서구인들의 비서구에 대한, 특히 아프리카에 대한 정치적인 지배는 끝났다. 하지만 경제적 문화적인 지배는 계속되고 있다. 100 여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지배당해 온 그들의 경제와 문화는 식민모국인 유럽의 여러 나라에 종속되어버리고 말았다. 때문에 아직도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에서 유럽으로 흘러들어오는 흑인이나 유색인종이 많은 것이다. 우리가 산업화시대 때 농촌에서 서울로 옮겨 갔듯이, 일제강점기 때 출세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듯이 말이다. 하지만 식민모국으로 옮겨간 그들의 삶은 라일라가 목격한 자블로 거리의 흑인들의 삶과 일치한다. 그들은 뿌리 깊은 차별 속에서 식민모국인들의 공공의 적으로, 그들 사회의 하층민으로 자리 잡는다.
르 클레지오는 이 소설을 통해 그 악순환에 대해 분명한 말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서구인이 아니다. 백색 피부가 아닌 검은 피부의 소녀이다. 바로 이 사실만으로도 그 해답은 찾을 수 있다. 피지배자, 그들의 눈으로, 그들의 본류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에 장 빌랑이라는 프랑스인 교수는 라일라와 함께 힐랄 부족의 마을로 들어간다. 나는 이 장 빌랑이 바로 작가 자신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현실적인 심각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 그들의 눈으로 보기 위해서, 그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 이것은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장 빌랑은 작가만은 아니다. 장 빌랑은 작가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의식 속의 차별을 간직한 서구인, 지배자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백인만이 지배자는 아니다. 우리도 의식적으로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소수자에 대해 얼마나 많은 폭력을 저지르는가. 외국인 노동자들, 혼혈아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식민주의적 사고를 하는 서구인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장 빌랑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라밀라가 도착한 마을은 라밀라만의 고향인가? 아니다. 그곳은 우리 모두가 도착해야 하는 마음속의 고향이다. 현실 속의 차별과 억압을 부정하고, 또다른 ‘라밀라들’의 손을 잡고 함께 도착해야 할 우리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작가가 바라는 세계도, 내가 바라는 세계도 그곳에 있다. 라밀라가 말한 사랑의 시대는 바로 그 고향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모두 ‘라일라들’의 손을 잡고 그 고향으로 가야한다. 다소 계몽적이고 공익광고 같은 것이지만 내가 이 작품을 통해 얻은 결과이자 교훈은 바로 이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