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공지영 지음 / 김영사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도서관에서 아무 생각 없이 빌려온 책이 기대 이상의 재미를 주는 경우가 있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어쩌면 이 책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이 책이 내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시의 적절했다고 할수도 있겠다. 도서관의 수많은 장서 중에 우연히 내 눈에 발견되고 빌리게 된 것. 그 또한 어쩌면 하느님의 축복일것이다.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 상실. 세례 받은 이후에도 방향을 잡을 수 없는 신앙. 가끔 가면 어색하기만 한 성당. 20대와 가톨릭에 갓 입문한 초년병으로서의 그런 혼란 속에서 나는 이 책을 접했다.

책이름은 수도원 기행이지만 사실 이 책은 유럽 수도원의 풍경이나 문물보다는, 수도원 기행 중에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서 느낀 작가의 생각과 고백과 회고가 중심이 되어있다. 때문에, 작가는 기행의 마지막에 와서는 ‘결국 이 세상 모두가 수도원이고 내가 길 위에서 만난 그 모든 사람들이 사실은 수도자’라고 깨닫는다. 책 중간중간에 담겨진 사진들로 유럽 수도원의 생김새와 경치를 상당부분 느낄 수 있었고, 매우 솔직하게 느껴지는 작가의 고백은 책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었다. 여행은 보고 듣는 것뿐만이 아니기에 많은 부분이 작가의 감상으로 채워진 것이 별로 나쁠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 감상들의 상당 부분은 지금의 나에게 많은 가르침과 위로를 주는 것이었다.

작가는 가톨릭 신자였지만 18년 동안이나 냉담했다. 하지만 다시 가톨릭으로 돌아왔다. 나는 작가가 다시 가톨릭으로 돌아온 이유, 삶의 고통과 허무 그리고 혼돈 속에서도 다시 하느님께 돌아와 ‘항복’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그 이유가 갓 신앙을 갖게 되어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나에게 어떤 길을 제시해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책에서 나는 그 이유들을 몇 가지 발견했고, 결론적으로 그것은 나에게 약간의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어둠과 혼돈과 공허는 하느님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한 질료가 된다는 구절은 특히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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