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로메 유모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12
시오노 나나미 지음, 백은실 옮김 / 한길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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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한창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이 유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 마음에도 유행에 편승하고 싶었던지 나는 도서관에서 덥석 그 책을 빌려왔다. 하지만 다 읽지는 못했다. 작은 글씨로 빽빽한 책장, 낯선 이름과 지명들 때문이었다. 그 때까지 ‘만화로 보는 고전’과 같은 류의 책들만 봐왔던 나는 그 책이 너무나도 낯설고 어려웠다. 이렇게 끝났던 시오노 나나미와의 만남은 올 해 들어 다시 시작되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책이름이라 덥석 집고 나니, 시오노 나나미의 책이었다. 잠깐 책을 훑어보니 흥미로웠다. ‘일단 빌려나보자’ 하는 마음으로 집에 와서 천천히 읽어보니 더욱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신화와 성서에 나오는 인물들과 지중해를 둘러싼 지방의 인물들에 대한 시오노 나나미의 재해석이다. 여기서 재해석이라고 하는 말이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다. 보통 우리가 역사상의 인물(엄격히 말하면 이 책에 다뤄진 인물 몇몇은 역사인물이 아닐 것이다)에 대한 해석이라고 하면, 우리가 사실로 취급하는 기록들에 근거하여 개연성에 따라 구체화한 것을 의미하는데 이 글은 그 정의로부터 더욱 자유롭다는 것이다. 작가는 기록들에 드러나지 않은 정황을 그럴듯해 보이는 ‘상상’으로 채워나간다. 때문에, 이 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와 사뭇 다르다.

우리가 대부분의 역사드라마나 영화, 소설에서 발견하게 되는, 작가의 상상에 의한 역사인물들의 일대기는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어 쉽게 수긍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특히, 그런 창작물들은 이미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해버려 깊이 몰입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은 대체로 그렇지 않았다. ‘정말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 또는 ‘그럴 듯 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에 수록된 몇 가지 이야기는 ‘글쎄’ 라는 느낌도 들었다. 또, 익숙히 알고 있는 텍스트보다는 상상에 크게 의존했기 때문에 앞서 말했던 ‘이건 가짜야’라고 의심하게 되는 상황에 빠지기도 했다. 물론, 모든 이야기들(예를 들어소설과 같은)이 엄격히 구분하면 가짜에 속하겠지만 읽을 당시만이라도 ‘이건 진짜야’라고 독자를 믿게 만들고 빠져들게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몇 이야기는 성공했고, 몇 이야기는 성공하지 못했다.

전반적으로 유쾌하기도 하고 흥미로웠던 책이었지만 다 읽고 나서는 순간 멍해졌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보았지?’ 라는 느낌도 들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기발한 상상력과 재주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는 생각이다. 나는 그저 작가의 ‘잘 노는’ 모습을 멍하니 보고 나온 것 같았다. 마치, 이 책에서 다룬 인물들인 단테와 네로, 브루투스 등의 인물에 대한 기존의 이야기들을 들은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작가는 자신의 상상물을 독자의 의심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기존의 역사가들은 결국 깜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와 같은 방어막을 많이 쳐놓았다. 때문에 독자는 시오노 나나미와 같은 자유로운 상상을 펼칠 수가 없었다. 그런 방어막들은 ‘이게 사실이야, 기존의 주장은 사실을 잘 몰라서 그래, 가짜야.’라는 위협으로도 들렸고, 내 상상은 그 방어막 앞에 가로막혔다.

결론적으로 이 책을 읽은 후의 내 감상은, 잘 짜여진 일인극을 어두운 극장에서 혼자 보고 나온 느낌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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