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공지영 지음 / 김영사 / 2001년 7월
구판절판


목사님은 그때 말씀하셨던 것이다. 모든 창조설화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만 창세기의 하느님은 어둠과 혼돈과 공허라는 질료를 가지고 세상을 창조하신다고, 그리고 그것은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일회의 사건이 아니라, 개인의 일생에서도 반드시 일어나야만 하는 일이라고‥. 이 기행이 내게, 혼돈과 공허 그리고 삶과 사람들에 대한 허무감에 싸여 있던 내게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을까. 내 어둠과 공허는 진정 창조의 질료가 될 수 있을까‥.-22쪽

하기는 종교뿐일까. 처음에는 신성하던 것이 세력을 얻고 나면 모두 본디의 그 뜻을 잃고 마는 것이 세상 이치인지‥. 써 놓고 보니 그게 어디 종교나 세력뿐이랴 싶다. 결국 사람이 그러한지‥하느님이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서 쫓아내신 게 어쩌면 사랑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손수 옷을 지어 입히시고 앞으로 죽음과 노동과 출산의 고통을 예고해 주신 것이 사랑이었다는 그런 생각‥. 많은 것들을 가지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에게 고통과 결핍은 가장 좋은 학교일 테니까. 안주하게 되면, 편안하게 되면 우리는 처음의 신성함을 잃고야 마는 그런 약한 존재일지도 모르니까‥.-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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