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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 대결, 아문센과 스콧 - 아문센 대 스콧, 그들의 세기적 대결과 엇갈린 운명
라이너 K.랑너 지음, 배진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슈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읽으면서 매력을 느낀 사건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손에 꼽을 것이 로버트 팰컨 스콧에 관한 이야기였다. 남극을 가운데 두고 벌인 대결에서 스콧은 분명 패배자였지만 츠바이크의 글 속에서는 주인공이었고, 나는 그 책을 읽으며 스콧의 패배에서 안타까움과 감동을 느꼈다. 단지, 그 '남극의 대결'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찾은 것이 이 책이었다. 나의 관심사에 꼭맞는 책을 이토록 절묘하게 만나게 되서 무척 기뻤다.
이 책은 스콧에 대해 애잔한 마음을 가지고 들여다 본 츠바이크의 관점과는 달리 스콧과 아문센 사이에서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눈에 띄었다. 아문센과 스콧의 어린 시절부터 1911년부터 1912년 사이에 벌어진 남극에서의 대결까지 바쁘게 오가면서, 아문센은 왜 승리했고 스콧은 왜 패배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 책은 적절한 구성과 설명을 통해 잘 보여주었다.
내 조악한 비유를 들어 아문센과 스콧을 비교하자면 아문센은 남극 위의 조조였고 스콧은 남극의 유비였다. 아문센은 남극점을 공략하는 데 있어 세세한 것까지 모두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으며 위기 상황에서 냉철한, 때로는 냉혹하기까지 한 판단을 내리면서 지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스콧은 군인으로서 조직의 규율, 질서에 너무 길들여져 독자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 너무 서툴렀고 계획적이기 보다 감정적이었고 임시응변으로 대처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아문센의 승리는 필연적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스콧의 패배가 안타까운 것은 능력에 비해 너무 큰 목표였던 남극점 정복을 향해 보여줬던 열정과 당나귀 한 마리에 보여준 대책없는 낭만, 기진맥진하는 복귀 여정에서도 원석을 가지고 가려고 했던 바보같을 정도의 호기심과 같은 인간미 때문일 것이다. - 아문센에게서는 비록 그가 승리자이긴 하지만 스콧에게서 보이는 이러한 인간미가 보이지 않는다 -
만약, 스콧이 운좋게 살아남아 영국으로 돌아왔다면 이렇게까지 이름을 남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미안한 일이나, 영국으로 살아돌아갔더라면 비루하게 죽어갔을 것이다. 2류로, 패배자로 기억되어 금새 잊혀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저자의 말대로 당시 영국의 분위기가 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미화한 점도 있지만, 그는 죽음을 통해서 완전해졌다.
상당히 잘 만들어진 책이지만 우리 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색한 문장도 간간이 눈에 보였다. 또한 편집하는 과정에서 작가에 대한 소개나 책에 나오는 지명과 인물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했다. 남극점 정복 루트를 실어서 그나마 도움이 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같은 문화권에서는 이런 사항들을 책 말미에 부록으로 담을 필요가 없을지 몰라도 다른 문화권에서 번역할 때는 과다하다 싶을 정도의 추가 정보와 부연 설명을 담아주어야 한다. 그것이 독자에 대한 예의이고, 다른 나라의 책을 번역해 오는 과정에서 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다. 이 책에서 꽤 많은 사진과 지도를 실어 이해에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기립박수를 주기에는 약간 모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