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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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배움의 발견은 타라 웨스트오버의 자서전이다. 등장하는 사건들이저자의 비의도적인 왜곡이 어느 정도 있음을 고려하더라도모두 사실이라는 이야기다. 나는 이 책이 소설이었으면 했다. 정말 괴로웠다. 읽는 내내 아버지 진 웨스트오버에 대한 분노와 어머니 페이에 대한 실망, 오빠 숀에 대한 혐오가 일었다. 하지만 우리가 늘 실수하는 것 중 하나는 모든 사건을 개인에 대한 혐오로 치환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 ‘페이’, ‘이 있다. 그 이름은 박 아무개일 수도 있고, ‘응우옌일 수도 있다. 지은이의 경험이 극적이긴 하나, 종교와 가족이라는 이름의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은 많았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타라의 아버지 은 모르몬교 신자인데, 괴팍한 원리주의자이다. 성경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기를 즐기며, 종말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믿고 있고, 학교나 병원 등 국가 제도를 불신한다. 그는 국가가 자신을 개종시키려 할지도 모른다는 피해망상에 빠져 아이다호주의 산골에 자신만의 성채를 만들었다. 그가 주력하는 일은 종말을 대비해 복숭아 통조림이나 석유 등 전략물자를 비축하는 일이다. 정말 의아한 일이다. 만약, 그날이 와서 휴거하게 된다면 하늘로 올라갈 텐데, 왜 그렇게 땅의 물건에 집착하는 것인지. 그의 광신은 자신과 가족을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구성원 모두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할 뿐이다. 과연 종교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

 

   요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종교의 해악을 새삼 느낀다. 온 나라가 사회적 거리 두기를 통해 이 난관을 헤쳐나가려 하는 시점에서도 일부 교회에서는 예배와 소규모 그룹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 감염을 촉발하고 있다. 애초의 신천지 신도들의 비밀스러운 집회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확진자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37일 자정 기준으로 종교 관련된 확진자 수는 6,593명 중 4,026명으로 61%에 이른다. 확진자들이 감염경로를 밝히기를 꺼리거나, 아직 조사 중인 경우를 포함하면 이 비율은 더 커졌으면 커졌지 작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전쟁과 환난 속에서도 예배를 게을리할 수 없다고 하겠지만, 과연 신이 있다면 자신의 신도들이 아프고 병들기를 원할 것인지 의문이다. 자식이 아프기를 바라거나 아픔을 통해서라도 성장하기를 원하는 부모가 없듯 말이다. 이 예배는 일부 종교인들의 헌금에 대한 욕심이거나, 권위를 지키기 위한 행동일 뿐이라고 말한다면, 신성모독인 걸까.

 

   종교가 삶에 대한 폭압으로 작용할 때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나의 행복과 사회의 성숙을 바라지 않고, 그저 묻지마식의 복종과 헌신을 원하는 신이 있다면 그 권좌에서 끌어내려야 한다. 그런 신의 자식이 되는 것을 단연코 거부해야 한다. 그 거부를 통해 저주를 받더라도, 그 신에게 헌납하는 내 일생이 어쩌면 더 잔혹한 저주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타라의 아버지를 보더라도 말이다.

 

   한편으로는, 가족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리를 얼마나 괴롭힐 수 있는지 이 책은 보여준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더 심하게 말하고, 더 아무렇지도 않게 대한다. 그리고 그런 행동들은 인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타라의 아버지는 위험한 일들에 아들과 딸을 밀어 넣고, 자식들이 절단이나 화상 등 심각한 상처를 입어도 병원에 보내지 않는다. 자식들을 사랑으로 대하지 않고, 도구로 여기는 듯하다. 학교나 병원에 보내지 않고, 어렵게 성장하려는 자식들을 기어코 다시 자신의 위압 아래 가두려는 것을 볼 때 너무 끔찍했다.

 

*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내게 미칠 수 있도록 허락하는지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다>라고 나는 일기에 썼다. 그러나 숀오빠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내게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내게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해 줬다. 그보다 더 큰 영향력은 존재할 수가 없었다. _ 315쪽

 

   사실 사람은 어렸을 때 가족의 안락함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사춘기를 거쳐 반항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갖추게 된다. 기존의 질서를 의심하고 반항하지 않으면 성장하지 못한다. 나는 올해 아빠가 된다. 내가 아이에게 어떤 아빠가 될지, 걱정과 불안이 앞선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더욱더 그렇다. 자식을 방임하지도 지나치게 억압하지도 않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 언제든 뛰어넘을 수 있고, 돌아오면 안락한 낮은 울타리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나를 뛰어넘어야 할 것이다. 내 세계에 아이를 묶어두고 싶지 않다.

 

* 오빠(타일러)가 일어서며 말했다. “집 바깥의 세상은 넓어, 타라. 아버지가 자기 눈으로 보는 세상을 네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을 더 이상 듣지 않기 시작하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일 거야.”_196쪽

   결국 종교와 가족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배움이다. 부모와 종교가 말하는 품 안의 질서가 전부가 아니라는 깨달음,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는 순간 사람은 더 나은 사람이 된다. 사실 이것은 모든 종류의 성장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작은 질서만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배우기를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멈춘다. 이것은 사람이나 사회나 마찬가지이다. 기존의 방식이 전부라고 생각할 때, 성장은 멈춘다. 우리 사회가 정체되어있다고 느끼고, 언론과 종교가 나서 혐오와 불안을 부채질해도, 우리는 더 나은 세상에는 무엇이 있는지 탐색하고 배워야 한다.

 

   타라의 선택은 그런 면에서 너무나 찬란했다. 우리도 배워야 한다. 우리의 삶의 성숙을 위해서,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과거가 아름다운 것은 우리가 경험을 하는 순간에 생기는 감정은 잘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확장된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현재가 아니라 오직 과거에 대해서만 완성된 감정을 지니게 된다. (버지니아 울프) - P7

"어떻게 된 거냐?" 아버지가 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으며 물었다. "떨어졌어요." 내가 숨 가쁜 목소리로 말했다. 숨을 쉴 수가 없었고, 등이 엄청나게 욱신거렸다. 몸이 두 동강 난 느낌이었다. "어쩌다 그런 거니?" 아버지가 말했다. 연민에 찬 목소리였지만 실망감이 묻어 있었다. 나는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거뜬히 해낼 수 있어야 했어.> 나는 생각했다. <간단한 일이었잖아.> - P112

그 순간 나는 나 스스로를 부서뜨릴 수 없는 돌과 같은 존재로 보게 됐다. 그런 다음에야 나는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그 경험이 내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오빠는 내게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내게 영향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생각이 얼마나 소름끼치도록 맞았는지 그때만 해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나 자신을 내 안에서 비워 낼 수 있었는지를. 그 밤의 경험이 끼친 영향에 대해 집착적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장 중요한 진실을 잘못 이해했던 것이다. 그 경험이 나에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 그 자체가 그 경험의 영향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 P182

오빠(타일러)가 일어서며 말했다. "집 바깥의 세상은 넓어, 타라. 아버지가 자기 눈으로 보는 세상을 네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을 더 이상 듣지 않기 시작하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일 거야." - P196

엄마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엄마의 시선에 실린 힘은 몇 년만에 느껴 보는 것이었다. 정신이 아뜩해졌다. "엄마가 낳은 모든 자식 중에서," 엄마가 말했다. "제일 먼저 집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떠날 아이는 너라고 생각했었다. 타일러가 그럴 줄은 예상하지 못해서 깜짝 놀랐었지. 하지만 너는 아니야. 여기 있지마. 가거라. 아무것도 네가 떠나는 것을 방해하도록 두지 마라." 나는 아버지가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엄마가 한숨을 쉬었고, 시선이 흔들렸다. 마치 최면 상태에서 빠져나오는 듯했다. 아버지가 부엌 식탁에 앉았고, 엄마는 일어서서 아버지 아침을 차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리버럴한 교수들에 대해 설교를 하기 시작했고, 엄마는 팬케이크 반죽을 만들면서 때때로 아버지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의미로 중얼중얼 장단을 맞췄다. - P216

나는 항상 아버지가 믿는 신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우리 가족이 읍내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은 교회에 가긴 하지만 종교는 같지 않다는 것을 의식했다. 다른 사람들은 겸양을 <믿었지만> 우리는 겸양을 실천했다. 다른 사람들은 주님의 치유 능력을 <믿었지만> 우리는 주님의 손에 치유를 맡겼다. 다른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믿었지만> 우리는 실제로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 나는 우리 가족만이 진정한 모르몬교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대학, 이 교회 안에서 처음으로 나는 그 간극의 거대함을 실감했다. 나는 그제야 이해가 됐다. 우리 가족과 함께하지 않으면 이방인들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이쪽 아니면 저쪽이었다. 그 사이에는 발을 걸칠 자리가 전혀 없었다. - P254

그렇게 아버지와 숀 오빠는 동지가 됐다. 두 사람이 의견일치를 본 것은 단 한가지였다. 대학 맛을 본 내가 주제넘은 아이가 됐고, 그런 나를 치료할 방법은 어떻게든 과거를 상기시켜 주는 것뿐이라는 사실 말이다. 그렇게 해서 이전의 내 모습에 다시 닻을 내리고 거기 고정시켜야 한다고 두 사람은 동의한 듯했다. - P280

나는 나 자신을 돌이켜 보기 시작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을 하지 않은 건 아닐까? 어떤 말을 속삭이고 어떤 말을 외쳤던가? 결국 내가 다른 방법으로 의사 표현을 했다면, 더 차분히 말을 했다면 오빠(숀)가 멈췄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그것을 스스로 믿을 때까지 일기장에 그렇게 써내려갔다.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나도 그 사실을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잘못이라는 결론은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그렇게 믿으면 상황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 P309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내게 미칠 수 있도록 허락하는지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다>라고 나는 일기에 썼다. 그러나 숀오빠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내게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내게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해 줬다. 그보다 더 큰 영향력은 존재할 수가 없었다. - P315

조울증이라는 용어를 처음 들은 것은 바로 그런 상황에서였다. 심리학 개론 수업 중에 교수가 영사기 스크린에 나열된 조울증 증상을 큰 소리로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우울증, 조증, 편집증, 희열, 과대망상, 피해망상, 나는 절박한 마음으로 교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 아버지다.> 나는 공책에 그렇게 적었다. <아버지를 묘사하고 있다.> - P327

내가 원한 것은 도덕적인 조언이었다.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내 소명을 다하라는 신의 부름과 내 마음속에서 나를 부르는 다른 목소리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에 대한 조언을 원했었다. 그러나 케리 박사는 그런 내 질문은 옆으로 밀어놓고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먼저 학생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 본 후, 학생이 어떤 사람인지 결정하세요." - P361

"바람을 받으며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바람을 받으며 서 있는 것에 관해 생각하지 않아서예요." 내가 말했다. "바람은 그냥 바람일 뿐이에요. 지상에서 이 정도 바람을 맞고 쓰러지지 않는다면 공중에서도 이 정도 바람에 쓰러지지 않아요. 아무런 차이가 없어요. 유일한 차이는 머릿속에 있을 뿐이지요." - P371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버려야 해요." 케리 박사가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학생은 가짜 사금파리가 아니에요. 그런 가짜는 특별한 빛을 비출 때만 빛이 나지요. 학생이 어떤 사람이 되든,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나가든, 그것은 학생의 본 모습이에요. 늘 자기 안에 존재했던 본질적인 모습. 케임브리지여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학생 안에 가지고 있는 거예요. 학생은 순금이에요. 브리검 영으로 돌아가든, 산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든 그 본질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다른 사람이 학생을 보는 눈은 변할지 모르고, 학생이 자신을 보는 눈도 변할지 모르지만. 어차피 순금도 빛에 따라서는 덜 빛나 보일 때도 있으니까. 하지만 빛이 덜 난다면 그게 허상인 거예요. 지금까지 항상 그랬어요." - P379

나는 의사의 모습과 그의 부패한 현대 의학을 떠올리고 몸서리를 쳤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전까지는 깨닫지 못했던 사실을 이해했다. 내가 아버지의 세상을 거부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세상이 아닌 바깥세상에서 살 용기를 아직 찾지 못했다는 사실 말이다. - P401

그날 밤 나는 오빠(리처드)를 자세히 관찰했다. 내가 보기에 오빠는 두 세상 모두에 살면서 모든 주의와 신념에 충실하려고 애쓰는 듯했다. 아버지가 의사들이 사탄의 하수인들이라고 욕을 하자, 리처드 오빠는 카미 언니 쪽을 보면서 작게 웃었다. 마치 아버지가 농담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러나 아버지의 눈썹이 추켜올라가자 오빠의 얼굴은 바로 진지한 사색과 동의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오빠는 아버지의 아들이어야 할지, 아내 카미의 남편이어야 할지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여러 차원을 왔다 갔다 하면서 끊임없이 변신하고 있었다. - P406

"부엌으로 너를 돌아오게 하기 위해 먼저 케임브리지로 보냈어야 했다는 걸 누가 짐작이라도 했겠냐? 부엌이야말로 네가 있을 곳인데 말이지."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 P407

<너는 내 딸인데, 내가 너를 보호했어야 했는데.> 그 말을 읽는 순간 나는 한평생을 다시 살았다. 그것은 실제 내가 살아 온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삶이었다. 나는 다른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다른 사람이 됐다. 나는 마술 같은 그 말의 힘을 그때도 이해하지 못했고,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은 이것뿐이다. 엄마가 자신이 되고 싶었던 엄마가 내게 되어 주지 못했다는 말을 한 순간, 엄마는 처음으로 자신이 되고 싶었던 엄마가 되었다. - P422

내가 대리석으로 지어진 콘세르바토리에서 공부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외교관이 아니어서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이고, 엄마가 그런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사람이어서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내 수치심은 철컥철컥 돌아가는 전단기의 칼날로부터 나를 밀어내는 대신, 오히려 그쪽으로 나를 밀어 넣는 아버지를 가졌다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었다. 내 수치심은 내가 바닥에 엎드려서 목을 눌리고 있는데도 바로 옆방에서 엄마가 눈과 귀를 막고, 그순간 내 엄마가 내 엄마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었다. - P424

과거는 영향을 끼칠 수 없는, 대단치 않은 유령에 불과했다. 무게를 지닌 것은 미래뿐이었다. - P425

부모님이 넘어갈 정도로 새로 태어나는 연기를 잘 해내면, 작년에 내가 한 모든 말과 행동을 내 것이 아닌 걸로 만들 수 있었다. 모든 말과 행동을 취소하고 악마의 탓으로 돌린 다음 새 출발을 하는 것이다. 새로 정화된 신자로서 얼마나 좋은 위상을 차지할 것인지 상상해 봤다. 얼마나 사랑을 받을 것인지도. 내 기억을 부모님의 기억으로 대체하기만 하면 나도 다시 가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P464

아버지와 나는 함께 사원을 바라봤다. 아버지는 신을 봤고, 나는 대리석을 봤다. 우리는 서로 바라봤다. 아버지는 저주받은 여자를 봤고, 나는 제정신이 아닌 노인, 글자 그대로 자신의 믿음 때문에 망가진 노인을 봤다. 그리고 그 노인은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득의양양했다. 나는 산초 판사의 말을 기억했다. <모험을 떠나는 기사는 패배를 한 후 자신이 황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 P465

그러나 나는 같은 선택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순간 알고 있었다. 내가 그때까지 해온 모든 노력, 몇 년 동안 해온 모든 공부는 바로 이 특권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내게 준 것 이상의 진실을 보고 경험하고, 그 진실들을 사용해 내 정신을 구축할 수 있는 특권. 나는 수많은 생각과 수만은 역사와 수많은 시각들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스스로 자신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믿게 됐다. 지금 굴복한다는 것은 단순히 언쟁에 한번 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것은 내 정신의 소유권을 잃는다는 의미였다. 이것이 내게 요구되는 대가였다. 이제 이해가 됐다. 아버지가 내게서 쫓고자 하는 것은 악마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 P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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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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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읽다가 조금이라도 현실적이지 않다고 느껴지면 몰입이 파지직하고 깨진다. 소설뿐만 아니라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대한 반감일 수도 있다. 나에게 트랜스포머어벤져스의 세계는 익숙하지도 않고, 선망의 대상도 아니다. 어느 때는 내 앞에 주어진 삶이, 괴수에 의해 파괴된 도시보다 더 난장판이고, 내 앞의 상사가 조커보다 더 악랄하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구태여 그렇게까지 멀리 나가야 하나? 어느새 더럽게합리적이고 재미없는 어른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소설을 읽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정말 단숨에 읽었다. 이야기 속 인물들과 하나가 되어서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었다. 나도 책장이 넘어가는 게 아까웠다는 세간의 평가들에 좋아요를 누른 1인 중 하나다.

 

  이 책은 8개의 짧은 소설들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가 2~30대 직장인들에게 무척 공감이 되는 이야기들이다. ‘익숙함공감은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자 약점이다. ‘내가 아는 이야기’, ‘나에게 익숙한 이야기는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시함을 유발한다. 친숙하게 느껴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미 아는 이야기’, ‘식상한 이야기가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리는 듯하다. 이 시대를 대변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로 극찬을 받기도 하고, 깍쟁이 직장여성의 깊이 없는 일기 정도로 비하되기도 한다.

 

  내 의견을 묻는다면, 나는 전자의 평가에 가깝다. 올해 가장 뜨거웠던 책은 ‘90년생이 온다가 아닐까 하는데 이 책도 그 비슷한 흐름 속에 있다. 사회로 새롭게 진입한 젊은 세대들이 추구하는 바와 충돌하는 지점을 정확히 보여준다. 수평적인 조직을 추구한다지만 기존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조직문화, 원칙 없이 오너의 기분에 따라 추진되는 일들 등 직장에서의 불의(不義)들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이 시대 직장인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꿈꾸고, 정치의 민주화만큼 일상에서도 정의가 충만하기를 꿈꾸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과 부딪친다. 우리들은 더 이상 직장과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이르러 거대한 성공을 얻게 되기를 꿈꾸지 않는데 말이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_ 73(e-book)

전 막 열심히 하기도 싫고, 막 성공하고 싶지도 않은데요.” _ 135(e-book) 

  우리의 분노는 사회체제나 구조에까지 번지지 못하고 원인이라고 생각되는 주변의 직접적인 인물과 현상에 꽂히곤 한다기업의 지배 구조자본의 본질이 어떤가보다는 오너의 언행불일치를 비웃고축의금을 내지도 않으면서 받으려고만 하는 직장 언니의 뻔뻔함에 분노하며잘해준다고 생각했지만 불성실함으로 대응하는 가사도우미에 화가 난다사실 이것이 우리 세대의 한계이기도 하다소소한 불의에는 분노하지만그 이면에 있는 거대한 불의의 구조에 대한 의문이나 고민에까지 이르지는 않는다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위태하게 외줄타기를 하고 있지만결국에는 이 서바이벌 게임의 생존자가 되기를 원하지 돈키호테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연봉계약서에 서명하던 그 순간씁쓸한 감정이 들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나는 정말이지진심으로기뻤다방송국이고 피디고 뭐고 지긋지긋했다대신 4대 보험이 어쩌고 하는 말들과 상여금특근수당연차와 실비보험 같은 단어들이 그렇게나 따뜻하고 푹신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수습 기간이 끝나고 정직원이 되면서 회사에서 가족 의료비도 지원해주었다아빠는 그 돈으로 수술할 수 있었다. _ 247(e-book)


  그럼에도 나는, 2019년을 살아가는 2~30대 직장인의 일상과 생각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 타임머신에 단 하나의 물건을 담아야 한다면, 이 책을 넣고 싶다. 우리와 가장 가까이 근접한 소설이다. 회사일과 글쓰기를 병행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작가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이 많고 많은 유혹이 넘쳐나는 세계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그것만으로도 자신감을 얻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공유하는 직장인으로서 작가의 앞날을 기대하고, 또 응원하고 싶다.

 

이 사람아. 잘 생각해야 돼. 요즘은 그냥 순간이야, 순간. 딱 한 곡이라고. 이 많고 많은 유혹이 넘쳐나는 세계에서 삼분 정도 사람들의 귀와 마음을 사로잡았으면 그걸로 된 거야. 최선을 다한 거야.” _ 131(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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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11-29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book쪽수도 있나요? 전에 밀리의서재에서 보니 쪽수 없던데 ㅎㅎ 있어야하는게 당연한거죠 ㅎ

송도둘리 2019-11-29 12:47   좋아요 1 | URL
이북에는 쪽수가 없더라고요...그냥 제가 화면에서 읽을 때 나오는 쪽수를 적어놨습니다. 아마 다들 화면 크기에 따라 다르긴 할텐데...나중에 제가 다시 찾을 때 편하려고요. ^^;;
 
[eBook] 직지 2 직지 : 아모르 마네트 2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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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지의 가치는 비단 세계 최고(最古)’라는 데 머무르지는 않는다. 지은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 민족이 금속활자, 한글, 반도체로 세계 지식정보의 역사에 끊임없이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 대한 이 정도의 자긍심은 필요하다. 그것이 국뽕으로 흐르지 않고, 가치와 방향성을 제시한다면 말이다


  이 책에 담긴 지은이의 의도는 좋았지만, 소설으로서는 정말 형편없다. 추리 소설의 방식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결합하려 하였지만, 서로 어색하게 얽혀서 완벽하게 부정교합이 되고 말았다. 1권의 숨막히는 전개가 2권에서는 사라진다. 주인공의 상상이라는 형식을 빌려 어색한 판타지로 흘러간다. 서로 조화롭지도 않고, 그저 작중인물들은 지은이의 '의도'를 향해 달려갈 뿐이다. 


  가슴에 담고 있는 말이 있어도, 그것을 이야기로 숙성시키는 시간은 필요하다. 이 책은 그 숙성의 시간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것 같다. 말하고자 하는 바의 아름다움에 비하여 참, 아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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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이 온다 (리커버 특별판) - 간단함, 병맛, 솔직함으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임홍택 지음 / 웨일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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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무상 필요 때문에 1달 가까이 90년대생 신입 직원들 40여 명과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할 일이 생겼다. 몇 년 전에도 했던 일인데, 그때와 비교하면 힘이 배는 들었다. 조직, 예산의 지원과 업무 조건은 그대로인데 90년대생 직원들의 요구사항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이 너무 피곤했다. 그들은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업무를 함에 있어서 이러이러한 지원이 필요한데 왜 주어지지 않는지’, ‘내가 먼저 끝냈으면 인센티브가 있어야 하는데 왜 다른 직원들과 퇴근을 같이 해야 하는지의문을 제기했다. 내가 그네들보다 10년 가까이 선배인데, 아랑곳하지 않고 직간접적으로 제기되는 불만들이 당혹스럽고 때론 불쾌하기도 했다. 선배의 권위도, 무언의 공포 분위기 조성도, ‘이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우리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식의 협박도 잘 통하지 않았다. 90년대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별종들이 나타난 걸까.

 

   책을 읽다 보면 세대가 변한 게 아니라 시대가 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들도 시대에 부지런히 적응하고 있을 뿐이다. 스마트폰과 모바일 환경에 익숙하고, 유튜브니, SNS니 안 하면 바보가 되는 세상에서 자란 세대들이다. 간결하고, 재미있고, 즉각적인 것을 추구하는 그들이 처음 맞닥뜨리는 사회는 어떤가? 비정규직과 정규직 차별, 일과시간과 마찬가지인 야근, 주어진 일에 비해 터무니없는 열정페이 등 부조리가 넘쳐난다. 태어날 때부터 민주화의 결실을 누려온 그들이 기대하는 공정민주의 가치와는 전혀 다른 살풍경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도피처를 찾은 것이 안정적이고, 채용과정이 상대적으로 공정한 공무원이다. 그들이 유독 도전을 싫어하고 안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세대라서가 아니라 고를 수 있는 선택지 중에 가장나아 보이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다.

 

문유석 부장판사는 변한 것은 세대가 아니라 시대라는 말을 통해 인간은 누구나 주어진 여건하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요즘의 젊은이들 또한 저성장 시대에 맞는 생존 전략, 행복 전략을 본능적으로 찾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 같이 인간 또한 생존을 위해 환경에 적응하고, 이를 위한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 노력한다. 변해버린 시대에 적응하려는 선택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_ 40

 

   권위적인 관리자들이나 사회의 행태를 보면서 80년대생들까지는 조금만 참으면 나도 저 위치에 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90년대생들은 다르다. 원하면 바로바로 얻고, 반응이 오는 시대에 언제까지 참고 기다리라는 것이냐고 반항한다. 그들이 학교를 나와 사회로 들어오면서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분야에서 만연한 꼰대스러움과 그에 대한 거부가 전방위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래서 시끄럽고, 혼란스럽다. 나는 90년대생이 문제가 아니라 더는 변화를 피할 수 없는 시점이 왔다고 생각한다. 90년대생뿐만 아니라 2000년대생도 곧 사회에 나온다. 그들은 더할 것이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불협화음에 대해 ‘90년대생들이 문제라고 인식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 사회가 더는 이전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구나!’라는 판단이 이루어져야 한다.

 

   제도의 변화가 시급하다. 사회나 조직은 한 번에 말끔히 바꿀 수가 없다. 제도가 우선이냐, 문화가 우선이냐에 대해 각자의 판단이 다를 수는 있지만, 무엇보다도 제도가 견인해 나가야 한다. 지은이는 일에서 자기계발의 기회를 찾도록 알려주는 것을 회사에서 90년대생을 관리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 그것은 너무 이상적이다. 지은이도 우려하고 있듯이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는 근무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고, 직무에 대한 책임과 권한이 분명하지 않은 상명하복의 조직문화에서 열정을 외부에서 요구하거나 권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제도가 어느 정도 선진적으로 개선되는 것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직무와 자기계발을 연관시키는 것은 개개인의 삶에서 각자가 연마해야 할 일이다.

 

업무 몰입이나 흥미 증진에 있어서 제도의 변화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90년대생들에게 일을 통해서 배울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을 통해 성장을 할 수 없다면 지금의 일은 의미가 없고 죽은 시간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지금의 이 업무가 나를 성장시키는 시간이 된다면 일은 단순한 돈벌이 이상의 의미가 될 수 있다. _ 225

 

   얼마 전 우리 조직의 장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간부회의 석상에서 권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그의 행동은 그 이후에도 변화가 없다. 조직을 개선하지도, 업무분장을 새로 하지도, 조직문화를 개선하지도 않는다. 업무 시간 외에 보내는 카톡도 여전하다고 한다. 그는 이 책의 어느 부분에서 감명을 받은 걸까. 우리가 같은 책을 읽긴 한 걸까 궁금해진다. 비단 90년대생에 대한 이해뿐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어떻게 바꿔가야 할지 고민하기 위해 다들 한 번 읽었으면 좋겠다. 엉뚱한 부분에 밑줄 치지 말고,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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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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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일이 큰 소설이다. 우주인이 되려고 애쓰는 직장인을 다룬다. 러시아의 가가린센터까지 우리를 데리고 간다. 하지만 그의 꿈과 도전을 모두 다 응원해주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서는 딴 짓을 하는 주인공을 어떻게든 쫓아내려고 혈안이다. 그의 인 우주인이 되려고 이역만리에 왔지만, 이곳, 러시아에서도 보이지 않는 암투가 벌어진다.

 

우주인이 된다는 것은 중력의 영향이 없는 무중력의 세계를 꿈꾸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중력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으니 일상에서의 도피, 또는, 이상향, 천국을 꿈꾸는 것과 같다. 하지만 사람은 중력을 떠나서 오래 머무를 수 없다. 결국 지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우주인들의 조직이든, 회사든, 연구원이든 조직과 경쟁이 있는 한 암투와 분투, 눈물과 땀이 어디든 도사리고 있다. 낭만천지란 없다. 결국, ‘만 남을 뿐이다.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만이 남는다.

 

주인공은 승자의 마음가짐을 깨닫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때의 삶은, 그 이전과의 삶과는 분명히 다르리라.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우주에 가지 않고도 이 소설을 통해 그 진리의 일면을 깨달을 수 있으니. 문장이 다소 매끄럽지 않게 느껴졌지만, 소재도 신선하고 어떤 깨달음을 주는 책이었다. 좋았다.

이 한가하고 평화로운 풍경의 껍질 한 귀퉁이 속에서 살고 죽는 싸움이 이렇게 사납게 펼쳐지고 있다니. 공기에는 별이 이렇게 풍부하고 고요한데도 끔찍한 살육이 꼬리를 물다니. 몸부림과 발버둥이 저리 처절하다니. 내가 알지 못했을 뿐 내 인생의 발걸음 하나마다 가까운 곳에서는 이런 개미들의 싸움이 있었다. 연구소에서건 여기서건. - P236

용기는 계속할 힘이 아니다. 힘이 없어도 그냥 계속하는 것이다. 우레 같은 외침만 용기가 아니다. 쉬었다가 다시 해보자. 나지막이 속삭이는 것도 용기다. - P318

돌이켜보면 그것은……내가 싫어하는 사람처럼 되고 싶지 않아서인지 모른다. 당시에는 몰랐는데……서서히 내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내가 다니던 연구소든 다른 직장에서든 아랫사람들을 조금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만한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높이 오를수록 아래를 무시하고 잔인하게 구는 사람들. 북돋고 끌어주기보다 자르고 떨궈내는 사람들. 그런 모습을 이용해서 더 윗사람들은 그 자리를 지켜주고. 미안함 없이 태연한 모습들. 그러헥 자리를 지켜봤자 고작 몇 달이나 몇 년에 불과해선지도 모른다. 내가 요구받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자리를 보장해준다는, 혜택도 아닌 혜택과 맞바꾸는 실토, 강요된 정직이 나는 싫었다. 나는 승자가 아니라도 좋았다. 승자보다 더 승자다운 것, 승자의 됨됨이를 지니는 것, 그래서 미더움을 주고 소박한 정을 나누는 것이 더 소중했다. - P394

나는 여기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가? ……아니, 내가 모험을 하지 않고 편안하게만 있었더라면…… 나는 아직 뭘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바쁘기만 한 바보로 살았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쳇바퀴를 돌면서 가끔 푸념하고 화를 내기만 하는 채로. - P408

우리는 무중력에서 오래 살 수가 없어요. 지상으로 돌아와야 해요. 제 생각은 평범해지겠다는 것이에요……. 우리는 평범했지만 앞날로 나아가는 이런 팀워크를 통해서 비범한 데까지 갈 수 있는 거예요. 우리는 한때 대단한 것처럼 주목받을 수는 있지만 비범한 듯이 오래 남을 수는 없어요. 때가 되면 평범으로 돌아와야 해요……. 그러려면 연민을 지녀야 해요. 간발의 차이로 저의 뒤에 서야 했던 사람들에게…… 그들은 더 헌신적이어서, 그리고 어쩌면 운이 없어서 뒤에 섰을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는 다들 발사장에서 불운의 질투를 피하려고 얼마나 노심초사하는지 이미 지켜봤잖아요. 제가 그런 마음일 때 설령 모나고 모자란 곳이 있어도 남들이 보살펴주려고 하지 않겠어요? 이것이 제가 이진우라는 사람에게서 배운 것이에요. - P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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