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 너머 -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12가지 법칙
조던 B. 피터슨 지음, 김한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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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덮을지, 계속 읽을지 몇 번이고 고민했다. 하지만 지은이의 전작도 읽다가 중간에 포기했기에 이 책마저 그럴 수는 없었다. 일종의 미안함(?) 때문에 겨우겨우 읽어냈다. 사실 조던 피터슨은 해리포터나 동화를 예시로 들면서 쉽게 쓰려고 무진장 노력한 것 같다. 자기 책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이해하기 쉽게 써서라고 말하고 있으니 알 만하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듣는 이야기는 또 있다. 내 강연과 글이 사람들이 알고는 있지만 명확히 나타낼 수 없는 것을 표현하기 때문에 좋아한다는 말이다. 이미 암묵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을 명료하게 표현하는 일은 세상을 이롭게 한다. (중략) 사람들이 직감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명확히 말할 수 없는 것에 다리를 놓아주는 건 지식인이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_ 191쪽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읽기 어렵다. 번역을 거칠 수밖에 없는 근본적 한계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글을 너무 어렵게 풀어나간다는 것이 문제다. 문장도 대체로 긴 편이고, 사용하는 용어나 글의 연결에 다소 힘이 들어가 있다. '나 너무 쉽게 이야기하고 있잖아'라고 하면서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스스로는 대중들이 이해할만한 수준으로 '명료하게 썼다'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다. 한 마디로 '재수 없다.' 물론 이 재수 없음을 감내하고 나면 몇 가지 인생의 지혜를 얻게 된다. 설마, 이렇게 어렵게 읽히는 이유가 '고진감래'라는 저자의 철학 때문이라면 정말 '짱 재수 없다.'


  어렵다는 건 필요하다는 뜻이다. _ 141쪽

  필요한 전진을 가로막는 장애물에 자발적으로 맞설 때 우리는 더 강해진다. _ 151쪽

  게다가 인간을 따라다니는 부정적인 요소들은 대체로 그 짝인 긍정적인 요소들과 균형을 이룬다는 것을 알면 매우 유용하다. _ 392쪽

  "내가 쉬운 길을 가도"는 스스로에게 내리는 저주다. _ 400쪽


  저자의 지혜란, 사실 다소 보수적이다. 첫 번째 법칙도 기존 제도를 함부로 깎아내지 말라는 말로 시작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수신제가 치국평천하'하라는 것이다. 일단 목표를 세우고 작은 것부터라도 시작하고, 기존의 제도 앞에서 우선 겸손 하라고 가르친다. 다소 허무해질 수도 있고, 꼰대 아저씨의 일장 연설로 들릴 여지도 충분하다.


  하지만 나도 이제 나이를 먹어가는 모양이다. 조던 피터슨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니 말이다. 바꿀 수 있는 것보다 바꿀 수 없는 게 더 많음을 알게 되고, 이렇게 바꾸겠다 저렇게 바꾸겠다 날뛰는 사람들도 다 그놈이 그놈이더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 하나 제대로 건사하는 것, 그것만이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어지는 것이다. 사실, 그것도 가능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이나 세계에 대해 너무 큰 기대도 말고 '너무 거창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자는 말이 왠지 내 몸에 꼭 맞게 느껴진다.


  앞으로 내가 조던 피터슨의 책을 다시 읽게 될까? 아마도, 전작에 대한 빚을 갚았으니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 이 정도의 메시지를 주는 책들은, 이런 문해적 고난을 겪지 않더라도 많기 때문이다. 어쩌면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나오는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나 무명작가의 짧은 에세이에서 더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논리적인 결과로 도출한 법칙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줄 때 더 와닿기 때문이다.


  겸손하라. 방을 청소하라. 가족을 보살피라. 양심을 따르라. 바르게 살라. 생산적이고 흥미로운 일에 전념하라. 이것들을 잘 해냈을 때 더 큰 문제를 찾아 도전하라. 여기에서도 성공한다면 더 야심찬 계획으로 이동하라. 이 모든 과정에 꼭 필요한 출발점으로서, 이데올로기를 버려라. _ 209쪽


그 진리는, 사람은 타인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마음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생각을 통해 만물의 질서를 유지하지만, 생각하기는 주로 말하기를 통해 이뤄진다. 우리는 과거에 관해 얘기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우리를 괴롭히는 사소하고 때늦은 근심에서 벗어나 진짜 중요한 경험에 집중할 수 있다. 우리는 현재 상태와 미래 계획에 관해 얘기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으며, 왜 그곳으로 가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짜낸 전략과 전술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그 효율성과 적응력을 검증할 수 있다. 말을 하는 동안에는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우리의 신체적 반응·동기·감정을 어설프지 않게 조율하여 명료성과 질서를 높이고, 불합리하거나 지나친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는 말을 할 필요가 있다. 기억하고 또 잊기 위해서다. - P29

그는 초보자로서의 역할을 받아들인 뒤 그것을 초월했다. 다시 말해 더 이상 이 세계에서 점하게 된 자리와 다른 사람들을 향해 냉소를 날리지 않고, 주어진 구조와 위치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전에는 자존심에 가로막혀 보이지 않았던 기회와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젊은이는 이제 자신이 속한 사회제도를 폄하하지 않고 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겸손함이 쌓이자 성공의 길이 열렸다. - P46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역설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 삶의 안전한 울타리를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여 우리의 제도를 건강하고 활기차게 유지해야 한다는 역설을 말이다. 세계의 안전성과 역동성은 우리가 그 이중 능력을 얼마나 완벽하게 수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 P72

우리는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를 선택한다. 살면서 추구할 가치가 있는 흥미로운 어떤 것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할 때 우리는 그것에 이끌려 길을 가고, 그러다 또다시 의미 있는 빛을 만난다. 우리는 이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추구하고 발전하고 성장하고 번성한다. 위험한 여행이지만 가슴 설레는 모험이기도 하다. - P88

높고 고상하고 심오한 어떤 것을 겨냥하라. 그 과정에서 더 좋은 길이 나타나면, 일단 몇 걸음을 걸어본 다음 경로를 바꿔라. 하지만 조심하라. 길을 바꾸는 것과 포기하는 것이 쉽게 구분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땐 방법이 있다. 현재의 길에서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을 배운 뒤에 당신 앞에 놓인 새길이 현재의 길보다 더 어려워 보인다면, 마음을 바꿀 때 당신이 자기 자신을 속이거나 배신하지 않고 있다고 확신해도 좋다. 이런 식이라면 지그재그로 전진하게 된다. 가장 효율적인 여행 방법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다른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목표를 추구하는 동안 스스로 훈련하면서, 또 필요한 것들을 알아가면서 당신의 목표는 불가피하게 바뀌기 때문이다. - P109

문제는 이것이다. 그런 일들이 백 가지 천 가지 쌓이면 당신의 삶은 비참해지고 결혼 생활은 파탄 난다. 따라서 행복하지 않다면 행복한 체하지 마라. 서로 협의해 적절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다면 상의하라. 싸움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 순간에는 불쾌할지라도 낙타 등에 붙은 작은 지푸라기를 떼어내야 한다(지푸라기 하나가 낙타 등을 부러뜨린다는 서양의 속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한도를 넘으면 파국을 가져온다는 뜻이다-옮긴이). 모두가 사소하게 여기는 일상적인 사건일수록 이런 조언은 특히 중요하다. 삶은 반복이며, 반복되는 잘못을 바로잡는 일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 P115

목적이 없으면 우리는 견디기 어려운 불안에 항상 시달리게 된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널려 있어 선택의 폭이 너무 넓다. 우리는 목적에 집중함으로써 참을 수 없는 혼돈을 억누를 수 있다. 원하는 것을 분명히 하고 열심히 추구한다 해도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반드시‘ 실패한다. - P129

필요한 전진을 가로막는 장애물에 자발적으로 맞설 때 우리는 더 강해진다. 그렇다고 ‘분에 넘치게 일을 벌이라‘는 건 아니다(‘자발적으로 전투에 임했다‘는 말이 ‘무모하게 충돌했다‘를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정신을 차리고 용기와 기술과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정도에 정확히 맞춰 도전하는 것이 현명하다. 또한 아직 다 파악하지 못한 상대와 무모하게 충돌하는 건 피해야 한다. - P151

이데올로기 창시자는 세계를 크고 무차별적인 조각들로 나누고, 각각의 문제점(들)을 밝히고, 그럴듯한 악당을 내세운 뒤, 이를 설명해주는 원리나 작용력 몇 가지를 만들어낸다(그 추상화된 실체들은 세계를 이해하는 데 실제로 얼마간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런 뒤에는 그 몇가지를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강조하고, 다른 중요한(어쩌면 더 중요한) 변수들은 무시한다. 이를 위해 동기 체계나 대규모의 사회 연구 또는 가설들을 활용하면 효과적이다. 또한 부정적인 감정·분개·파괴심을 일으키는 암묵적 원인들과 설명 원리들을 뽑아낸 뒤에, 그에 대한 모든 의심과 토론을 금기시한다. 다음으로는 이론의 효과를 사후분석의 영역으로 몰아넣고, 모든 현상은 이 새로운 전체주의 이론의 부차적 결과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학파가 출현해 이 알고리즘적 환원을 선전하면 이데올로기는 학계와 일상 모두에서 지배력을 얻게 되며, 이에 따르지 않거나 비판적인 사람들은 암묵적으로나 명시적으로 악마화된다. - P201

겸손하라. 방을 청소하라. 가족을 보살피라. 양심을 따르라. 바르게 살라. 생산적이고 흥미로운 일에 전념하라. 이것들을 잘 해냈을 때 더 큰 문제를 찾아 도전하라. 여기에서도 성공한다면 더 야심찬 계획으로 이동하라. 이 모든 과정에 꼭 필요한 출발점으로서, 이데올로기를 버려라. - P209

그런 상황에서 고집을 꺾지 않는 건 수술처럼 끔찍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다. 당신은 두렵고 힘들고 괴로울 것이다. 배우자에게 저리 꺼지라는 말, 아니 그보다 심한 말을 듣고도 대화를 계속한다는 건 용기를 넘어서 무모함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건 좋은 일이고, 존경할만한 행동이다. 말하고 싶지 않은 어떤 이유로 괴로워하는 사람은 그 문제에 대해 두 가지 마음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화를 내며 회피하고 싶어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인지적으로 부담스럽고, 도덕적으로 까다롭고, 정서적으로 스트레스가 따른다. 그 밖에도 신뢰가 필요한데, 사람들은 버럭 화를 내어 신뢰를 시험한다. 감히 누군가가 내 민감한 문제에 접근하려고 할 때, 그가 내 마음속 장벽을 하나든 둘이든 셋이든 열이든 모두 뛰어넘어 사태의 끔찍한 밑바닥까지 이해할 정도로 충분한 애정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 P324

완벽한 사람은 없다. 세상에는 하자가 있는 사람들뿐이다. 고쳐 쓸 수 없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심한 하자가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또한 다들 개인적으로 특이한 면을 가지고 있다. (중략) 따라서 용기를 내어 서약을 받아들이고 책임을 지려는 두 사람은 성숙한 어른으로서 결혼을 한 뒤 완전체로 거듭난다. 결혼에 대한 확신이 없어도 사람은 결혼 생활을 통해 성장한다. 그러니 배우자와 모든 것에 관해 대화하라. 물론 서로 대화하고 협상하는 과정은 매우 고통스러울 수 있으나, 결국 평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어렵사리 평화를 이룩했다면 감사하라. 둘이 모이면 반드시 싸우는 법이니 말이다. - P340

당신 아이의 인생에 악의 여왕을 초대하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 아이는 온실의 화초처럼 약하게 자란다. 당신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온갖 대책을 세워도 악의 여왕은 아이 앞에 나타난다. - P370

너무 거창한 사람이 되지는 말자. 우리는 평화·안전·자유, 그리고 점진적 개선을 허락하는 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 이렇게 할 수만 있어도 그 자체로 기적이다. 개인과 사회와 자연이 동시에 모두 좋아질 수 있다는 말을 들을 때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의심해야 한다. 특히 우리 자신의 내재적·개인적 선의의 결과로 그런 개선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면 더욱 의심해야 한다. 우리는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그런 선의는 언제 어디서나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 P388

당신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나고 있거나 조만간 일어나리라는 것은 현실의 구조가 정해놓은 기정사실이다. 끔찍한 일은 반드시 일어나지만, 거기에는 무작위 요소가 있다. 당신은 ‘그래 봤자 별 위로도, 도움도 되지 않아‘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무작위 요소를 인정하면 개인적인 요소를 멀리할 수 있다. 무작위성은 방호벽이 되어 맹렬히 밀려드는 자기중심적인 분개를 막아낼 수 있다. 게다가 인간을 따라다니는 부정적인 요소들은 대체로 그 짝인 긍정적인 요소들과 균형을 이룬다는 것을 알면 매우 유용하다. - P392

"내가 쉬운 길을 가도"는 스스로에게 내리는 저주다. 만일 당신이 피하지 않고 어려운 일을 해낸다면 사람들은 당신을 신뢰하게 되고, 당신도 자기 자신을 신뢰하게 되며, 그로 인해 어려운 일을 더 잘하게 된다. 그럼 상황은 좋아질 수밖에 없다. 만일 그 모든 것을 외면하고 내팽개쳐둔다면, 당신은 부모가 모든 걸 대신해주는 아이가 되어 인생의 어려움과 도전에 직접 부딪치며 성장하는 능력을 잃는다. - P400

실존적 공포에 대해 분개, 거짓, 교만으로 대응하는 건 올바르지 않다. 대신 당신과 사회와 세계의 존재를 정당화할 그 무엇이 충분하다고 가정해보자. 즉 당신 자신에 대한 믿음, 인간에 대한 믿음, 존재 자체의 구조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이다. 또한 세상의 위험과 맞설 수 있고 삶을 가장 훌륭한 모습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당신에게 충분히 있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는 고결함, 위엄, 의미가 활짝 꽃피우는 삶을 살 수 있다. 주변을 지옥으로 바꿀 정도로 원통해하지 않고 존재의 부정적인 요소들을 견딜 때 그런 삶이 가능해진다. - P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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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역사를 경계하여 미래를 대비하라
류성룡 지음, 오세진 외 역해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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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비록을 읽을 때는 항상 분한 마음이 든다. 특히, 지휘관들이 하나가 되어 적을 무찌를 생각은 하지 않고 쥐꼬리만 한 자기 권위를 세우고자 백성의 목숨을 함부로 대할 때 폭발한다. 적을 만나면 제일 먼저 도망가기 바쁘면서 왜 안에서만 기강을 잡는지... 전쟁 초반 기록의 대부분은 지휘관이 도망가거나, 죽거나, 군심을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백성이나 부하를 참한다. 이런 이들을 시쳇말로 '방구석 여포'라고 한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무능한 관리들이 일본 군대보다 더 무서웠을 것이다.


  누군가를 지휘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항상 명심해야 한다. 자신들이 누리는 막대한 권한은 의무와 짝지어져 있다는 것을 말이다. 책임을 져야 할 순간에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권리 또한 누릴 자격이 없다. 이 분노가 과연 500년 전의 사건에 국한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저 옛날이야기라면 좋겠지만, '방구석 여포'들은 여전히 곳곳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홍익출판사의 번역본이 질적인 완성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적어도 상당히 노력했다는 인상을 준다. 특히, 고전을 읽을 때는 항상 전후 맥락을 알 수 없어 수박 겉핥기 하는 느낌이 들기 마련인데, <징비록 깊이 읽기>라는 해설을 군데군데 삽입하여 이해를 돕고 있다. 예컨대, 징비록의 녹후잡기에 보면, 류성룡이 해주 지역에서 청어가 안 잡히게 된 것을 이변으로 해석하고 안타까워하는 부분이 있다. 만약 이 부분만 읽었다면, '임진왜란 전에 이상한 일들이 많았었구나!'하고 지나갈 수 있는데 <징비록 깊이 읽기>를 통해 이 사건과 공납의 폐해, 나아가 조정의 무능까지 연결하여 생각할 계기를 준다. 이런 점은 무척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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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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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나 카레니나' 완독은 2020년 새해 목표였는데, 2021년 3월이 돼서야 끝났다. 굳이 변명하자면, 1권에서 폭주하던 전개가 2권에서 갑자기 느려지더니 3권에서는 급기야 정체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안나와 브론스키 사이의 갈등은 곪고 곪아 어떤 식으로든 파국을 기다리고 있었고, 각종 모임에서 전개되는 여러 논쟁들은 당시 러시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는 몰입하기 힘들었다. 레빈의 고민과 번민은 또 어떤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는 왜 사는지에 대한 그의 끝없는 고민에 한편으로는  공감하면서도 '그래서 결론이 뭔데?'라고 재촉하게 되는 답답함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이런저런 이유로 3권을 읽는데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셈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결말이 담긴 '7부'로 끝이 날 만도 한데, 톨스토이는 8부로 끝을 맺는다. 심지어 안나의 죽음에 대한 브론스키나 카레닌의 반응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안나의 죽음 뒤에도 그저 자연스럽고 마땅히 흘러가는 세상사와 레빈의 머릿속을(또!) 보여줄 뿐이다. 오히려 동생의 죽음에도 예의 천진난만함을 잃지 않은 스티바를 보며 - 가족의 죽음 뒤에도 삶은 계속되는 것이므로 이해가 되면서도 - '으휴 인간아….'라는 낮은 탄성을 뱉게 된다. 신에게도, 인간에게도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안나는 죽음을 선택하고, 그 죽음을 통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느끼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톨스토이가 굳이 8부를 붙인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사실 안나 자체가 권선징악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는 복잡한 인물이긴 하지만, 브론스키나 카레닌 또한 마땅히 처벌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7부로 끝나는 것은 '불륜한 자, 벌 받을지어다' 러는 권선징악의 가르침이 될 뿐인데, 그렇게 결론 지을 만큼 삶은 단순하지 않다.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는 걸까? 그녀는 살고 싶은 거야. 하느님이 우리의 영혼에 그것을 불어넣었잖아. 어쩌면 나도 그녀와 똑같이 행동했을지도 몰라. _ 126쪽(돌리의 생각)


  8부 전체를 거쳐 보여주는 레빈의 사색 속에 톨스토이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압축된 것 같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삶과 체험으로 얻은 것만이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우리가 필요한 것은 이미 가지고 태어났다는 발견' 말이다. 그 발견 또는 깨달음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그 내면의 힘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조언이다. 그렇게 결심하더라도 또 실수하고 번민하고 좌충우돌할 거라고 한 발 빼면서도, 그래도 그런 삶에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이 새로운 감정은 나를 바꾸지도, 나를 행복하게 하지도 않아. 그리고 내가 상상하던 것처럼 갑자기 나를 계몽시키지도 않아. 아들에 대한 감정과 마찬가지지. 역시 뜻밖의 선물은 없었어. 믿음인지 아닌지, 난 이게 무엇인지 모르겠어. 하지만 이 감정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통을 통해 들어와 내 영혼 속에 견고하게 뿌리를 내렸어. 난 여전히 마부 이반에게 화를 내겠지. 여전히 논쟁을 벌이고, 여전히 내 생각을 부적절하게 표현할 거야. 나의 지성소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심지어 아내와의 사이에도 여전히 벽이 존재할 거야. 난 여전히 나의 두려움 때문에 아내를 비난하고 그것을 후회하겠지. 나의 이성으로는 내가 왜 기도를 하는지 깨닫지 못할 테고, 그러면서도 난 여전히 기도를 할거야. 하지만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그 모든 일에 상관없이, 이제 나의 삶은, 나의 모든 삶은, 삶의 매 순간은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선의 명백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나에게는 그것을 삶의 매 순간 속에 불어넣을 힘이 있어!' _ 560쪽


  끝으로, 톨스토이의 인간에 대한 이해, 감정의 묘사는 정말 탁월한 것 같다. 출산 후 아내의 무사함을 확인하고 아이를 처음 안았을 때, 아빠의 감정에 대해 이토록 적확한 묘사가 있을까. 안나와 브론스키의 갈등, 숱하게 묘사되는 부부싸움에 대한 묘사도 압권이다. 사소한 일로 인해 불거지는 갈등, 화해에 대한 시도, 하지만 질 수 없다는 의지, 불가피한(!) 양보, 그리고 이어지는 왠지 진 것 같다는 억울함, 자연스럽게 싸늘해지는 태도, 다시 이어지는 갈등, 이 모든 감정이 순서 없이 얽히고설키는 그 지난한 과정을 어쩜 이렇게 잘 그려냈을까. 이 책이 당대에도 그렇지만 후대에도 높이 평가받는 데는 감정을 현실적으로 잘 그려냈다는 데 있는 것 같다. 만나면 반갑다고 뺨 때리고, 매회 고음 발성 없이는 전개되지 않는 어느 드라마와는 다르게 말이다.


하지만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 지금, 그는 그녀가 건강하게 살아 있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토록 절망적으로 울어 대는 존재가 그의 아들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사고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키티는 살아 있고 고통은 끝났다. 그리고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그는 그것을 이해했고 그것으로 인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하지만 아이는?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왔으며,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런 생각에 익숙해질 수 없었다. 아기는 그에게 불필요한 무언가로, 지나친 과잉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그는 오랫동안 아기에게 익숙해질 수 없었다. _ 348쪽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는 걸까? 그녀는 살고 싶은 거야. 하느님이 우리의 영혼에 그것을 불어넣었잖아. 어쩌면 나도 그녀와 똑같이 행동했을지도 몰라. - P126

"난 언제나 당신을 사랑했어요.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당신이 그에게 바라는 모습이 아니라 그의 모습 그대로 그를 온전히 사랑하죠." - P139

하지만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 지금, 그는 그녀가 건강하게 살아 있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토록 절망적으로 울어 대는 존재가 그의 아들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사고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키티는 살아 있고 고통은 끝났다. 그리고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그는 그것을 이해했고 그것으로 인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하지만 아이는?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왔으며,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런 생각에 익숙해질 수 없었다. 아기는 그에게 불필요한 무언가로, 지나친 과잉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그는 오랫동안 아기에게 익숙해질 수 없었다. - P348

가정생활에서 무언가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부부간의 완벽한 불화나 애정 어린 화합이 필요하다. 그러나 부부 관계가 불명확하거나 이것도 저것도 아닐 경우에는, 아무것도 실행할 수 없게 된다. 많은 가정이 단지 완전한 불화도 화합도 없다는 이유로 부부 모두에게 지긋지긋한 그 묵은 자리에 수년 동안 머무르곤 한다. - P396

‘우리도 그와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 역시 이성으로 자연력의 중요성과 인생의 의미를 찾는답시고 똑같은 짓을 했던 건 아닐까?‘ 그는 계속 생각했다.
‘철학의 이론들은 인간에게 부자연스럽고 기이한 사유 방법을 통해 인간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것,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에 대한 깨달음으로 인간을 이끈다 하면서, 사실은 아이들과 똑같은 짓을 했던 게 아닐까? 각 철학자들의 이론 발전을 보면 그들이 농부 표도르만큼이나 분명히, 아니 표도르보다 더 분명할 것도 없이 이미 삶의 중요한 의미를 알고 있으면서, 그저 미심쩍은 사유방식을 거쳐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것으로 되돌아가려는 것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느냐 말이야?‘ - P523

레빈은 마부의 참견에 화를 내며 말했다. 여느 때와 똑같이 그런 참견은 그의 화를 돋우었다. 그러나 곧 그는 현실과 접촉했을 때 정신 상태가 자신을 즉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착각이었는지 깨닫고서 슬픔을 느꼈다. - P528

이 새로운 감정은 나를 바꾸지도, 나를 행복하게 하지도 않아. 그리고 내가 상상하던 것처럼 갑자기 나를 계몽시키지도 않아. 아들에 대한 감정과 마찬가지지. 역시 뜻밖의 선물은 없었어. 믿음인지 아닌지, 난 이게 무엇인지 모르겠어. 하지만 이 감정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통을 통해 들어와 내 영혼 속에 견고하게 뿌리를 내렸어. 난 여전히 마부 이반에게 화를 내겠지. 여전히 논쟁을 벌이고, 여전히 내 생각을 부적절하게 표현할 거야. 나의 지성소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심지어 아내와의 사이에도 여전히 벽이 존재할 거야. 난 여전히 나의 두려움 때문에 아내를 비난하고 그것을 후회하겠지. 나의 이성으로는 내가 왜 기도를 하는지 깨닫지 못할 테고, 그러면서도 난 여전히 기도를 할거야. 하지만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그 모든 일에 상관없이, 이제 나의 삶은, 나의 모든 삶은, 삶의 매 순간은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선의 명백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 P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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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3-18 18: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드립니다!

송도둘리 2021-03-18 20:2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너무 오래 걸렸네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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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 전부터 육아휴직 중이다. 내 하루는 아이의 생체리듬에 맞추어 재편되었다. 아이가 잠이 들 때만 내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아이를 혼자 두고 밖에 나갈 수도 없다 보니 신체활동이 확 줄어들었다. 하루에 만 보는 자연스럽게 채워졌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 절반도 채우기가 어렵다. 아이가 잠든 틈을 타서 짬짬이 책을 보거나 넷플릭스를 보는 것으로 소일하다 보니 찌는 것은 살이요, 느는 것은 갑갑함이다. 물론, 아이가 웃는 것을 보면 모든 피로가 싹 날아가는 느낌이지만, 신체 활동이 줄어든 만큼 활력도 감퇴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원래 달리기를 좋아하지도 않고, 조금만 뛰어도 숨을 헉헉대는 저질 체력이지만 요즘은 부쩍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몸과 마음이란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서, 적당한 신체활동은 마음도 건강하게 한다. 하루키가 달리기 시작한 이유도 그와 비슷하다. 본업인 소설을 잘 쓰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 처음의 목적을 뛰어넘어 삶을 더 풍요롭게 한 경우다.


내 경우, 이렇게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까닭은 '소설을 착실하게 쓰기 위해서 신체 능력을 가다듬어 향상시킨다' 라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므로 레이스나 연습을 위해서 작품을 쓸 시간을 빼앗겨버리고 나면, 그것은 본말이 전도된 일이라고 할까, 약간 곤란한 일이 되고 만다. 그런 이유로 현재로서는 비교적 온건한 단계에 나 자신을 머물게 하고 있다. _ 264쪽


  달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꾸준히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당장 오늘부터라도 매일 1~2시간의 여유를 확보했다고 하더라도, 이틀이 지나면 또다시 갖은 핑계를 대고 집 밖에 나가지 않을 수 있다. 이유야 충분하다. 중국발 미세먼지, 공원의 민폐견, 추레한 트레이닝복, 너무 맑은 날씨(덥다), 너무 흐린 날씨(우울하다) 등등. 시작이야 쉽지만 길을 들이는 것은 어렵다. 습관이 들 때까지 그저 계속하는 것, 하루키도 그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 -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_ 19쪽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책이다. 기껏해야 하루키의 달리기 습관을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달리기를 소재로 보여주는 하루키의 인생 철학이 정말 멋있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 고단하고 귀찮을 수 있는 일을 묵묵히 그리고 성실하게 반복하는 삶의 자세. 사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잠시 사회와 한 발 떨어진 침묵의 시간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집에서라도 몸을 움직이는 시간을 만드는 것, 그리고 바깥으로 나갈 기회가 있으면 만 가지의 핑계를 뒤로하고 성실히 걷고 뛰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반복하는 습관.


매일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선과 같은 것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인해 건너뛰거나 그만둘 수는 없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_ 115쪽


  남은 휴직 기간을 그렇게 잘 쓰고 싶다. 이 시간은 아이가 나에게 준 선물 같은 시간이므로.



계속하는 것 -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 P19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유익한 운동인 동시에 유효한 메타포이기도 하다. 나는 매일매일 달리면서 또는 마라톤 경기를 거듭하면서 목표 달성의 기준치를 조금씩 높여가며 그것을 달성하는 데 따라 나 자신의 향상을 도모해 나갔다. 적어도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두고,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해 매일매일 노력해왔다. 나는 물론 대단한 마라톤 주자는 아니다. 주자로서는 극히 평범한 - 오히려 그저 평범한 주자라고 할 만한 - 그런 수준이다. 그러나 그건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해가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장거리 달리기에 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 P27

타인으로부터의 고립과 단절은 병에서 새어 나온 산(酸)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고 녹여버린다. 그것은 예리한 양날의 검과 같은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보호하는 동시에, 그 내벽을 끊임없이 자잘하게 상처 내기도 한다. 그와 같은 위험성을 나 나름대로 (아마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말인데, 나는 신체를 끊임없이 물리적으로 움직여 나감으로써, 어떤 경우에는 극한으로까지 몰아감으로써, 내면에 안고 있는 고립과 단절의 느낌을 치유하고 객관화해 나가야 했던 것이다.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직감적으로. - P41

내 생각에는, 정말로 젊은 시기를 별도로 치면,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가야 할 것인가 하는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어느 나이까지 그와 같은 시스템을 자기 안에 확실하게 확립해놓지 않으면, 인생은 초점을 잃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 P65

몸이라는 것은 지극히 실무적인 시스템인 것이다. 시간을 들여 단속적·구체적으로 고통을 주면 몸은 비로소 그 메시지를 인식하고 이해한다. 그 결과 주어진 운동량을 자진해서(라고는 말할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수용하게 된다. 그 뒤에 우리는 운동량의 상한선을 조금씩 높여간다. 조금씩 조금씩 몸에 이상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 P84

매일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선과 같은 것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인해 건너뛰거나 그만둘 수는 없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 P115

아무리 달리는 스피드가 떨어졌다 해도 걸을 수는 없다. 그것이 규칙이다. 만약 자신이 정한 규칙을 한 번이라도 깨트린다면 앞으로도 다시 규칙을 깨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레이스를 완주하는 것은 아마도 어렵게 될 것이다. - P172

거기에 보이는 것은 언제나 같은 나의 성격일 뿐이다. 개인적이고, 완고하고, 협조성이 결여된, 때로 자기 멋대로인, 그래도 자신을 항상 의심하며, 고통스러운 일이 있어도 거기에 우스꽝스러운 - 또는 우스꽝스러움과 비슷한 - 것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은 나의 본성이다. 낡은 보스턴백처럼 그것을 둘러메고, 나는 긴 여정을 걸어온 것이다. 좋아서 짊어지고 온 것은 아니다. 내용에 비해 너무 무겁고, 겉모습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군데군데 터진 곳도 보인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짊어지고 갈 것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메고 온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애착도 간다. 물론. - P229

가령 그것이 실제로 바닥에 작은 구멍이 뚫린 낡은 냄비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허망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노력을 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효능이 있든 없든, 멋이 있든 없든,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는(그러나 마음으로는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공허한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어리석은 행위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감으로써, 그리고 경험칙으로써. - P256

내가 울트라 마라톤 쪽으로 가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내 경우, 이렇게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까닭은 ‘소설을 착실하게 쓰기 위해서 신체 능력을 가다듬어 향상시킨다‘ 라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므로 레이스나 연습을 위해서 작품을 쓸 시간을 빼앗겨버리고 나면, 그것은 본말이 전도된 일이라고 할까, 약간 곤란한 일이 되고 만다. 그런 이유로 현재로서는 비교적 온건한 단계에 나 자신을 머물게 하고 있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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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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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 되고 보니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나도 아이들을 참 싫어하는 어른 중에 하나였는데... 이제는 아이들 노는 모습이 귀여워서 한참을 바라보기도 하고,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보면 무슨 이유가 있나, 어디가 아픈가 생각하게 된다. 물론, 아직도 어떤 아이들은 딱밤을 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울 때가 있지만.


  요새 화제인 육아 방송프로그램만 봐도 말썽꾸러기 아이들의 원인은 대부분 '양육자의 어린시절'이나 '사랑과 관심의 부족'에 있다. - 물론, 아이들의 모든 문제를 다 '부모탓'으로 돌리는 데 대한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 주변의 자극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이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어떤 세계를 물려주느냐는 참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우리 어른들은 '우리의 책임'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고, '버릇 없는 아이들', '노키즈존 설치', '가정교육의 부재' 등등 '아이의 문제'로 결론짓고 만다. 이런 관점에서 지은이의 '노키즈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신선하고 공감이 갔다.


  어린이라는 세계가 있다. 이 세계의 룰이 모든 세계에 통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외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노인의 세계', '장애인의 세계', '빈자의 세계' 등 소외 받는 이들의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린이였다. 이해하려 하고 노력하면 보이기 마련이다. 재미있고  유익한 에세이다.


어린이도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며, 품위를 지키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으로서 어린이도 체면이 있고 그것을 손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린이도 남에게 보이는 모습을 신경 쓰고, 때와 장소에 맞는 행동 양식을 고민하며,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 P42

놀이터의 모래 때문에 뛰기 어렵고, 모래가 자꾸만 신발 속에 들어가 불편하다고만 생각했는데. 하준이는 바로 그런 모래를 믿고, 떨어져도 다칠 걱정없이 아찔한 정글짐을 올랐던 것이다. 나는 마치 격언인 것처럼, 하준이의 말을 그대로 외웠다. "밑에 모래 있으면 떨어져도 안 아파요." 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어른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 P63

어린이는 이성으로 가르친다! 이것이 나 자신의 사훈이다. 어린이 한 명 한 명을 존중하고, 그들의 지적 정서적 성장을 돕고, 좋을 때 좋게 헤어지는 것. 직업 윤리와 진실한 자세만 있다면, 굳이 ‘사랑으로‘ 가르치지 않고도 성과가 있다고 믿는다. 나는 어린이를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사랑‘이란 내가 다루기에 너무 크고 어렵고 조심스러운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마음이 드러날지도 모르니 늘 조심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 P151

다만 어린 나는 부모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에 사랑도 감사의 표현인 양 생각했던 것 같다. 고마워서 사랑한 게 아닌데. 엄마 아빠가 좋아서 사랑했는데. 은혜에 대한 보답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응답이었다. 어린 나도 몰랐고, 아마 부모님도 모르셨을 것이다. 어린이들은 부모님의 사랑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지 않는다. 다만 서툴러서 어린이의 사랑은 부모에게 온전히 가닿지 못하는지 모른다. - P179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누린 사람이 잘 모르고 경험 없는 사람을 참고 기다려 주는 것. 용기와 관용이 필요하지만, 인간으로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다. - P212

언제나 절망이 더 쉽다. 절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고, 무엇을 맡겨도 기꺼이 받아 준다. 희망은 그 반대다. 갖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 요구하는 것이 많다. 바라는게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외면하면 안 된다고, 심지어 절망할 각오도 해야 한다고 우리를 혼낸다. 희망은 늘 절망보다 가차 없다. 그래서 우리를 걷게 한다. - P219

어린이를 사랑한다고 해서 꼭 어린이를 존중한다고 할 수는 없다. 어른이 어린이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자기중심적으로 사랑을 표현할 때, 오히려 사랑은 칼이 되어 어린이를 해치고 방패가 되어 어른을 합리화한다. 좋아해서 그러는 걸 가지고 내가 너무 야박하게 말하는 것 같다면, ‘좋아해서 괴롭힌다‘는 변명이 얼마나 많은 폐단을 불러왔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어린이를 감상하지 말라. 어린이는 어른을 즐겁게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어른의 큰 오해다. - P227

어린이가 그림을 망쳤을 때 "다 소용없는 일이란다. 구겨 버리렴"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고칠 수 있는지 보고, 안 되면 새 종이를 주고, 다음에는 더 잘 그리도록 격려할 것이다. 우리 자신에게도 똑같이 말해야 한다. 실제로 어린이라면 어떻게 할까? 내가 새 종이를 주며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늘어놓기도 전에 어린이는 종이를 뒤집어 뒷면에 새로운 그림을 시작한다. 냉소주의는 감히 얼씬도 못 한다. - P256

‘김소영‘이라는 렌즈로 세계를 들여다보며 우리는 마침내 깨닫게 된다. 어린이를 온전히 마주하는 경험은 결국 우리 안에 오랫동안 꽁꽁 숨겨 둔 가장 작고 여린 마음들을 다시 꺼내 들여다보고 천천히 헤아리는 시간이라는 걸. 어린이를 대하는 우리의 시선과 태도와 마음,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우리 자신을 향해 있다는 걸. (윤다은 영화감독, 추천의 글)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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