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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떡 건축 - 회색 도시의 미래
황두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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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부터 20년 넘게 살던 동네는 한창 재개발 중이다. 학교로 이어지는 조그만 골목길들은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예전에는 자유롭게 다녔던 길인데 지금은 울타리를 넘어서 아파트 동 사이사이로 걸어가야 한다. 골목길도 잃었고, 추억도 지워졌다. 비단 내가 살고 있는 동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생활의 편의를 떠나서 과연 이런 도시가 아름다운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한편 지금은 출퇴근이 문제다. 서울 직장으로 오고 가는데 왕복 4시간이 걸린다. 매일 가족들보다 일찍 일어나야 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이 책은 이런 고민들을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더 관심 깊게 읽었다.


한 사회가 그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가장 확실하게 높여줄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을 줄여주는 것이다. 아무리 문화시설을 짓고 공원을 조성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길면 소용이 별로 없다. 문제는 지금 서울을 비롯한 우리 도시들의 기본적인 구조와 건물의 유형으로는 도저히 그런 삶을 살고 싶어도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집에 들어오면 잠만 자고 다시 서둘러 나가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한국 남자들의 돌연사 비율이 높은 이유도 알고 보면 생명의 가장 기본적 요소인 잠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유난히 연장근무도 많고 술자리 등 사교활동이 많은 나라이기는 하지만, 그런 것들은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있다. 그러나 이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만큼은, 또 그것으로 인해 빼앗기는 부족한 잠은, 도저히 개인이 어찌할 수 없다. _ 51쪽

  저자가 말하는 무지개떡 건축이란 복합적인 기능이 한 건물에 수직적으로 밀집해있는 건물을 말한다. 저자는 5층 건물 100평 정도의 규모를 이상적으로 본다. 예컨대 1층에 상업시설, 2~3층에 업무시설, 4~5층에 주거시설이 결합한 건물이다. 출퇴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교통체증과 자원낭비를 줄이고 삶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늘일 수 있는 건물형태다. 물론, 땅이 있어야 하고 복잡한 규제를 뚫어야겠지만 책을 읽다보면 나중에 저런 건물 하나 지어서 살고 싶다는 욕망이 샘솟는다. 더불어, 다공성(多孔性)을 중요한 특징으로 이야기하는데 이 부분은 건축학도가 아니어서 정확히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진으로 보면 멋있기도 하고 보안, 통풍에 유리할 것 같다. 


  이 책에는 재미있는 정보도 많다. 가장 흥미로운 주장은 도시생활이 전원생활보다 친환경적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인 통념에 반하는 것인데, ‘에드워드 글레이저’라는 경제학자가 자신의 책에서 주장한 사실이다. 저자의 설명을 듣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또한, 고층빌딩이 즐비한 서울의 평균층수가 2.5층밖에 안 된다는 것도 재미있다. 도시의 영역이 무한대로 수평적 확장을 거듭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더욱이 우리나라 같이 국토가 좁은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무지개떡 건축’처럼 건물을 기능적, 구조적으로 밀도를 높인다면 해결책의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저자가 설계한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나 ‘과천 무지개떡 건물’의 사진을 보니 더욱 더 그런 생각이 든다. 


도시는 다층일 수 있지만 자연은 정의상 단층이다! 이렇게 자연은 오직 한 층밖에는 있을 수 없으니 그 자연을 보호하려면 결국 도시가 변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도시를 더는 수평적으로 확대하지 않으면서 그 안에서 필요한 건물을 짓고 인구를 수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드웨어의 평균적 밀도를 조금 더 높이고 그것에 담기는 기능들을 좀 더 다양하게 한다면 장기적으로 도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작고 조밀해질 것이다. 사람들의 이동거리는 짧아지며, 에너지 소비는 줄고 삶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도시가 고밀화될수록 도시의 평면적 규모는 작아지며 결국 역설적으로 그만큼을 자연으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도시 내에서 토지밀착형의 저밀도 삶을 고집하려는 사람들은 적어도 ‘누군가가 누리는 저밀도의 여유는 또 다른 누군가의 장거리 출퇴근’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_ 251~252쪽


  아쉬운 점은 사진자료가 생각보다 부족하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 책이 누구를 대상으로 한 것인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분명 동종업계인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닐 테고, 건축에 대해 잘 모르지만 도시환경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했을 텐데 용어나 개념 설명이 다소 부족하다. 어려운 내용은 크게 없었지만 아무래도 낯선 개념들로 인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부분이 있었다. 각주를 통해서라도 간단히 설명을 덧붙여주었으면 더 좋은 책이 되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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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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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이 화두인 요즘 누구나 다 나를 지키며 일하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어떻게 직장 생활을 할지 배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면 일단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저자는 아예 처음부터 이 책은 '하우투북(how-to book, 실용서)'이 아니라고 못 박고 시작한다. 분명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결론적으로 ‘인문학을 배우라’는 익숙한 가르침을 주는 책이라 실망할 사람도 있을 듯하다.


  저자는 우리 시대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고 진단한다. 그야말로 ‘비상시’가 일상화된 시대, 불안정하고 역경이 예고된 시대다. 안정적이었던 지난 시대에는 ‘높은 학력’이 좋은 직장을 얻는 보증 수표였고, 좋은 직장은 안정적인 삶과 편안한 노후에 대한 입장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보호해주는 조직에 대해 충성하고 헌신하는 것이 이 시대의 가치이자 도덕이었다. 하지만 우리 시대에는 조직을 위한 헌신이 반드시 나의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미래가 불확실하므로 더 이상 조직은 개인을 보호해줄 수 없다. 각자도생의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특징을 ‘학력 사회 모델’이 종언을 고하고, ‘개인 경력 모델’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고 표현한다.


  이제 하나의 일에 전부를 쏟아붓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 되었다. 불도저와 같은 몰입 이전에 ‘일의 의미’를 묻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리고 ‘다양한 시각’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저자는 의미를 찾고 다양한 시각을 기르는 지름길은 인문학이라고 말한다. 여기저기서 ‘제4차 산업혁명’이다, ‘불확실성의 시대’다 하는 와중에 한가하게 인문학이라니 황당하지만, 저자는 눈앞의 일들에 급급해하지 말고 조금 돌아간다 싶어도 인문학을 공부하라고 조언한다. 고전을 읽어야 우리 앞에 놓인 어려움들을 이해할 수 있고,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바로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처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터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하는 일을 일반적인 의미의 경제 행위로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란 무척 어려운 일일 테고, 그것을 경제사 안에서 조망하기란 아마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눈앞에 직면한 일과 시대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지금 곤란한 상황에 직면했고 역경에 처해 있다면 더더욱 눈앞의 일에 급급해하지 말라고, 멀리 돌아가는 느낌으로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을 펼쳐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역경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고, 역경의 참된 의미조차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_ 142쪽



  평상시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같다. 말이야 바른 말이고, 책 읽고 생각하는 데 진정 길이 있다고 믿는다. 다만,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이라는 말처럼 고민하고 질문하는 만큼 얻는 것이 달라진다. 내가 부족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저 책을 뚝딱 읽어서 해치우는 것만을 능사로 알고, 1년에 100권 읽기와 같은 목표에 매몰되지 않는가. 역시, 시대를 읽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고, 고전을 읽으면서 시야를 길고 넓게 보고 공부하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당장 맡은 일들을 충실히 하는 태도도 중요하지만, 여유를 가지고 차분히 공부하는 자세야말로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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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책 어디에 밑줄을 긋는가 - 고수들의 미니멀 독서법
도이 에이지 지음, 이자영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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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베스트셀러에서 배울 점은 있었다. ‘그들은 책 어디에 밑줄을 긋는가’라는 제목과, ‘더 많이 읽을수록 성공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라!’라는 문구에 반해서 내용을 살펴볼 것도 없이 장바구니에 담았던 책이었다. 다 읽고 나니 약간의 허무함과 씁쓸함, 그리고 조금의 분노와 쓴웃음이 남는다. 저자는 잘 팔리는 책은 뭔가 이유가 있으니, 내용이 허접하다고 덮지 말고, 하나라도 읽어서 배우고 느끼라고 한다. 혹시 자기 책에 쏟아질 비판을 의식해서 미리 변명을 한 것일까? 그런 이유였든 아니었든 이제는 상관없다. 모금과 사기에 있어 늘 선택권은 듣는 사람에게 있다고 한다. 모금가와 사기꾼은 상대방이 자기가 원하는 결론을 내리도록 판을 깔아줄 뿐, 결국 듣는 사람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그의 허영이든 욕심이든 간에. 이 책의 제목에 속았다면 내 잘못이고,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것은 이 책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에서 무엇인가를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베스트셀러는 책의 수준이 낮다고 평가절하해 버리고, 읽지 않으면 좋은 ‘배움’의 기회를 놓쳐 버리고 만다. 세간에서 좋다고 평가하고 있는 이상 거기에는 틀림없이 배울 것이 있다. 설령 내용이 없더라도 파는 방법이나 팔리는 방법에 힌트가 있을 수 있다. 한 번 더 이야기하고 싶다. 밑줄을 그을 부분은 책의 ‘내용’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책의 ‘밖’에 밑줄을 그을 만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_ 167쪽


  이 책이 제안하는 독서법은 다음과 같다. 몇 권을 읽었는지, 얼마나 빨리 읽어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들과 조금이라도 ‘차이’가 있어야 하고, 그 차이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독서’를 무기로 삼아라. 전체적인 줄거리보다는 관심이 가는 부분에 집중하고, 수평 전개하는 독서를 하라. 그리고 지금껏 두려워서 도전하지 못했던 분야의 책도 도전하라. 어려운 책, 두꺼운 책, 고전들을 피하지 마라. 차이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런 책들을 읽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내 생각과 다른 것에 밑줄을 긋고, 그것들에서 배우려고 노력해라. 말이야 바른 말이고, 하나같이 옳은 지적이다.


  하지만 성공하기 위한 독서법이라니 너무 식상하지 않은가. 남들보다 조금 더 앞서가는 ‘차이’를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더 열심히 달려왔다. 선행학습은 차이를 만들기 위한 좋은 방법이었다. 그래서 초등학생이 미분을 공부했고, 우리말을 하기도 전에 영어로 꿈을 꿔야 했다. 그런데 성공하기 위한 다른 독서법이 있다고 한다. 더 많이, 더 빨리 읽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흥분했겠지만, 그게 아니라 ‘두꺼운 책’, ‘고전’을 읽어야 한단다. 비즈니스 세계는 속고 속이는 것이 일상이니 더 강해지고, 차이를 만들어야 한단다. 이 미친 세계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성공하려고 책을 읽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꼭 성공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위선이라고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책은 성공을 위한 교재가 아니다. 이 책에 점철되어 있는 저자의 자신감과 패기는 아마 젊어서부터 성공한 그의 이력에 원인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하나 거침없었고, 자기 생각대로 풀려가는 삶을 살아온 저자에게 성공하지 못하는 비즈니스맨들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그리고 그들에게 차이를 만들어내라고 독려하고 다그치는 것이 자기 삶의 사명이라 느끼지는 않았을까. 저자의 말대로 그의 삶과 책에서 한 수 배우고 싶다. 하지만 나는 시야를 멀리 두고 겸손해지면서, 아무 의도 없이 책을 읽고, 그 안에서 희열과 안식과 고민과 해답을 얻고 싶다. 때때로 중요하다 생각하는 부분에 밑줄을 그으면서. 성공하면 좋겠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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