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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배움의 발견』은 타라 웨스트오버의 자서전이다. 등장하는 사건들이―저자의 비의도적인 왜곡이 어느 정도 있음을 고려하더라도―모두 사실이라는 이야기다. 나는 이 책이 소설이었으면 했다. 정말 괴로웠다. 읽는 내내 아버지 진 웨스트오버에 대한 분노와 어머니 페이에 대한 실망, 오빠 숀에 대한 혐오가 일었다. 하지만 우리가 늘 실수하는 것 중 하나는 모든 사건을 개인에 대한 혐오로 치환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진’, ‘페이’, ‘숀’이 있다. 그 이름은 ‘박 아무개’일 수도 있고, ‘응우옌’일 수도 있다. 지은이의 경험이 극적이긴 하나, 종교와 가족이라는 이름의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은 많았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타라의 아버지 ‘진’은 모르몬교 신자인데, 괴팍한 원리주의자이다. 성경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기를 즐기며, 종말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믿고 있고, 학교나 병원 등 국가 제도를 불신한다. 그는 국가가 자신을 개종시키려 할지도 모른다는 피해망상에 빠져 ‘아이다호’주의 산골에 자신만의 성채를 만들었다. 그가 주력하는 일은 종말을 대비해 복숭아 통조림이나 석유 등 전략물자를 비축하는 일이다. 정말 의아한 일이다. 만약, 그날이 와서 ‘휴거’하게 된다면 하늘로 올라갈 텐데, 왜 그렇게 땅의 물건에 집착하는 것인지. 그의 광신은 자신과 가족을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구성원 모두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할 뿐이다. 과연 종교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
요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종교의 해악을 새삼 느낀다. 온 나라가 ‘사회적 거리 두기’를 통해 이 난관을 헤쳐나가려 하는 시점에서도 일부 교회에서는 예배와 소규모 그룹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 감염을 촉발하고 있다. 애초의 신천지 신도들의 비밀스러운 집회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확진자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3월 7일 자정 기준으로 종교 관련된 확진자 수는 6,593명 중 4,026명으로 61%에 이른다. 확진자들이 감염경로를 밝히기를 꺼리거나, 아직 조사 중인 경우를 포함하면 이 비율은 더 커졌으면 커졌지 작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전쟁과 환난 속에서도 예배를 게을리할 수 없다고 하겠지만, 과연 신이 있다면 자신의 신도들이 아프고 병들기를 원할 것인지 의문이다. 자식이 아프기를 바라거나 아픔을 통해서라도 성장하기를 원하는 부모가 없듯 말이다. 이 예배는 일부 종교인들의 헌금에 대한 욕심이거나, 권위를 지키기 위한 행동일 뿐이라고 말한다면, 신성모독인 걸까.
종교가 삶에 대한 폭압으로 작용할 때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나의 행복과 사회의 성숙을 바라지 않고, 그저 묻지마식의 복종과 헌신을 원하는 신이 있다면 그 권좌에서 끌어내려야 한다. 그런 신의 자식이 되는 것을 단연코 거부해야 한다. 그 거부를 통해 ‘저주’를 받더라도, 그 신에게 헌납하는 내 일생이 어쩌면 더 잔혹한 ‘저주’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타라의 아버지를 보더라도 말이다.
한편으로는, 가족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리를 얼마나 괴롭힐 수 있는지 이 책은 보여준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더 심하게 말하고, 더 아무렇지도 않게 대한다. 그리고 그런 행동들은 인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타라의 아버지는 위험한 일들에 아들과 딸을 밀어 넣고, 자식들이 절단이나 화상 등 심각한 상처를 입어도 병원에 보내지 않는다. 자식들을 사랑으로 대하지 않고, 도구로 여기는 듯하다. 학교나 병원에 보내지 않고, 어렵게 성장하려는 자식들을 기어코 다시 자신의 위압 아래 가두려는 것을 볼 때 너무 끔찍했다.
*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내게 미칠 수 있도록 허락하는지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다>라고 나는 일기에 썼다. 그러나 숀오빠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내게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내게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해 줬다. 그보다 더 큰 영향력은 존재할 수가 없었다. _ 315쪽
사실 사람은 어렸을 때 가족의 안락함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사춘기를 거쳐 반항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갖추게 된다. 기존의 질서를 의심하고 반항하지 않으면 성장하지 못한다. 나는 올해 아빠가 된다. 내가 아이에게 어떤 아빠가 될지, 걱정과 불안이 앞선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더욱더 그렇다. 자식을 방임하지도 지나치게 억압하지도 않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 언제든 뛰어넘을 수 있고, 돌아오면 안락한 ‘낮은 울타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나를 뛰어넘어야 할 것이다. 내 세계에 아이를 묶어두고 싶지 않다.
* 오빠(타일러)가 일어서며 말했다. “집 바깥의 세상은 넓어, 타라. 아버지가 자기 눈으로 보는 세상을 네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을 더 이상 듣지 않기 시작하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일 거야.”_196쪽
결국 종교와 가족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배움’이다. 부모와 종교가 말하는 품 안의 질서가 전부가 아니라는 깨달음,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는 순간 사람은 ‘더 나은 사람’이 된다. 사실 이것은 모든 종류의 성장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작은 질서만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배우기를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멈춘다. 이것은 사람이나 사회나 마찬가지이다. 기존의 방식이 전부라고 생각할 때, 성장은 멈춘다. 우리 사회가 정체되어있다고 느끼고, 언론과 종교가 나서 혐오와 불안을 부채질해도, 우리는 더 나은 세상에는 무엇이 있는지 탐색하고 배워야 한다.
타라의 선택은 그런 면에서 너무나 찬란했다. 우리도 배워야 한다. 우리의 삶의 성숙을 위해서,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과거가 아름다운 것은 우리가 경험을 하는 순간에 생기는 감정은 잘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확장된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현재가 아니라 오직 과거에 대해서만 완성된 감정을 지니게 된다. (버지니아 울프) - P7
"어떻게 된 거냐?" 아버지가 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으며 물었다. "떨어졌어요." 내가 숨 가쁜 목소리로 말했다. 숨을 쉴 수가 없었고, 등이 엄청나게 욱신거렸다. 몸이 두 동강 난 느낌이었다. "어쩌다 그런 거니?" 아버지가 말했다. 연민에 찬 목소리였지만 실망감이 묻어 있었다. 나는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거뜬히 해낼 수 있어야 했어.> 나는 생각했다. <간단한 일이었잖아.> - P112
그 순간 나는 나 스스로를 부서뜨릴 수 없는 돌과 같은 존재로 보게 됐다. 그런 다음에야 나는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그 경험이 내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오빠는 내게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내게 영향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생각이 얼마나 소름끼치도록 맞았는지 그때만 해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나 자신을 내 안에서 비워 낼 수 있었는지를. 그 밤의 경험이 끼친 영향에 대해 집착적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장 중요한 진실을 잘못 이해했던 것이다. 그 경험이 나에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 그 자체가 그 경험의 영향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 P182
오빠(타일러)가 일어서며 말했다. "집 바깥의 세상은 넓어, 타라. 아버지가 자기 눈으로 보는 세상을 네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을 더 이상 듣지 않기 시작하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일 거야." - P196
엄마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엄마의 시선에 실린 힘은 몇 년만에 느껴 보는 것이었다. 정신이 아뜩해졌다. "엄마가 낳은 모든 자식 중에서," 엄마가 말했다. "제일 먼저 집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떠날 아이는 너라고 생각했었다. 타일러가 그럴 줄은 예상하지 못해서 깜짝 놀랐었지. 하지만 너는 아니야. 여기 있지마. 가거라. 아무것도 네가 떠나는 것을 방해하도록 두지 마라." 나는 아버지가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엄마가 한숨을 쉬었고, 시선이 흔들렸다. 마치 최면 상태에서 빠져나오는 듯했다. 아버지가 부엌 식탁에 앉았고, 엄마는 일어서서 아버지 아침을 차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리버럴한 교수들에 대해 설교를 하기 시작했고, 엄마는 팬케이크 반죽을 만들면서 때때로 아버지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의미로 중얼중얼 장단을 맞췄다. - P216
나는 항상 아버지가 믿는 신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우리 가족이 읍내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은 교회에 가긴 하지만 종교는 같지 않다는 것을 의식했다. 다른 사람들은 겸양을 <믿었지만> 우리는 겸양을 실천했다. 다른 사람들은 주님의 치유 능력을 <믿었지만> 우리는 주님의 손에 치유를 맡겼다. 다른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믿었지만> 우리는 실제로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 나는 우리 가족만이 진정한 모르몬교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대학, 이 교회 안에서 처음으로 나는 그 간극의 거대함을 실감했다. 나는 그제야 이해가 됐다. 우리 가족과 함께하지 않으면 이방인들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이쪽 아니면 저쪽이었다. 그 사이에는 발을 걸칠 자리가 전혀 없었다. - P254
그렇게 아버지와 숀 오빠는 동지가 됐다. 두 사람이 의견일치를 본 것은 단 한가지였다. 대학 맛을 본 내가 주제넘은 아이가 됐고, 그런 나를 치료할 방법은 어떻게든 과거를 상기시켜 주는 것뿐이라는 사실 말이다. 그렇게 해서 이전의 내 모습에 다시 닻을 내리고 거기 고정시켜야 한다고 두 사람은 동의한 듯했다. - P280
나는 나 자신을 돌이켜 보기 시작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을 하지 않은 건 아닐까? 어떤 말을 속삭이고 어떤 말을 외쳤던가? 결국 내가 다른 방법으로 의사 표현을 했다면, 더 차분히 말을 했다면 오빠(숀)가 멈췄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그것을 스스로 믿을 때까지 일기장에 그렇게 써내려갔다.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나도 그 사실을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잘못이라는 결론은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그렇게 믿으면 상황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 P309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내게 미칠 수 있도록 허락하는지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다>라고 나는 일기에 썼다. 그러나 숀오빠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내게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내게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해 줬다. 그보다 더 큰 영향력은 존재할 수가 없었다. - P315
조울증이라는 용어를 처음 들은 것은 바로 그런 상황에서였다. 심리학 개론 수업 중에 교수가 영사기 스크린에 나열된 조울증 증상을 큰 소리로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우울증, 조증, 편집증, 희열, 과대망상, 피해망상, 나는 절박한 마음으로 교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 아버지다.> 나는 공책에 그렇게 적었다. <아버지를 묘사하고 있다.> - P327
내가 원한 것은 도덕적인 조언이었다.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내 소명을 다하라는 신의 부름과 내 마음속에서 나를 부르는 다른 목소리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에 대한 조언을 원했었다. 그러나 케리 박사는 그런 내 질문은 옆으로 밀어놓고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먼저 학생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 본 후, 학생이 어떤 사람인지 결정하세요." - P361
"바람을 받으며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바람을 받으며 서 있는 것에 관해 생각하지 않아서예요." 내가 말했다. "바람은 그냥 바람일 뿐이에요. 지상에서 이 정도 바람을 맞고 쓰러지지 않는다면 공중에서도 이 정도 바람에 쓰러지지 않아요. 아무런 차이가 없어요. 유일한 차이는 머릿속에 있을 뿐이지요." - P371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버려야 해요." 케리 박사가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학생은 가짜 사금파리가 아니에요. 그런 가짜는 특별한 빛을 비출 때만 빛이 나지요. 학생이 어떤 사람이 되든,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나가든, 그것은 학생의 본 모습이에요. 늘 자기 안에 존재했던 본질적인 모습. 케임브리지여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학생 안에 가지고 있는 거예요. 학생은 순금이에요. 브리검 영으로 돌아가든, 산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든 그 본질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다른 사람이 학생을 보는 눈은 변할지 모르고, 학생이 자신을 보는 눈도 변할지 모르지만. 어차피 순금도 빛에 따라서는 덜 빛나 보일 때도 있으니까. 하지만 빛이 덜 난다면 그게 허상인 거예요. 지금까지 항상 그랬어요." - P379
나는 의사의 모습과 그의 부패한 현대 의학을 떠올리고 몸서리를 쳤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전까지는 깨닫지 못했던 사실을 이해했다. 내가 아버지의 세상을 거부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세상이 아닌 바깥세상에서 살 용기를 아직 찾지 못했다는 사실 말이다. - P401
그날 밤 나는 오빠(리처드)를 자세히 관찰했다. 내가 보기에 오빠는 두 세상 모두에 살면서 모든 주의와 신념에 충실하려고 애쓰는 듯했다. 아버지가 의사들이 사탄의 하수인들이라고 욕을 하자, 리처드 오빠는 카미 언니 쪽을 보면서 작게 웃었다. 마치 아버지가 농담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러나 아버지의 눈썹이 추켜올라가자 오빠의 얼굴은 바로 진지한 사색과 동의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오빠는 아버지의 아들이어야 할지, 아내 카미의 남편이어야 할지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여러 차원을 왔다 갔다 하면서 끊임없이 변신하고 있었다. - P406
"부엌으로 너를 돌아오게 하기 위해 먼저 케임브리지로 보냈어야 했다는 걸 누가 짐작이라도 했겠냐? 부엌이야말로 네가 있을 곳인데 말이지."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 P407
<너는 내 딸인데, 내가 너를 보호했어야 했는데.> 그 말을 읽는 순간 나는 한평생을 다시 살았다. 그것은 실제 내가 살아 온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삶이었다. 나는 다른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다른 사람이 됐다. 나는 마술 같은 그 말의 힘을 그때도 이해하지 못했고,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은 이것뿐이다. 엄마가 자신이 되고 싶었던 엄마가 내게 되어 주지 못했다는 말을 한 순간, 엄마는 처음으로 자신이 되고 싶었던 엄마가 되었다. - P422
내가 대리석으로 지어진 콘세르바토리에서 공부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외교관이 아니어서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이고, 엄마가 그런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사람이어서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내 수치심은 철컥철컥 돌아가는 전단기의 칼날로부터 나를 밀어내는 대신, 오히려 그쪽으로 나를 밀어 넣는 아버지를 가졌다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었다. 내 수치심은 내가 바닥에 엎드려서 목을 눌리고 있는데도 바로 옆방에서 엄마가 눈과 귀를 막고, 그순간 내 엄마가 내 엄마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었다. - P424
과거는 영향을 끼칠 수 없는, 대단치 않은 유령에 불과했다. 무게를 지닌 것은 미래뿐이었다. - P425
부모님이 넘어갈 정도로 새로 태어나는 연기를 잘 해내면, 작년에 내가 한 모든 말과 행동을 내 것이 아닌 걸로 만들 수 있었다. 모든 말과 행동을 취소하고 악마의 탓으로 돌린 다음 새 출발을 하는 것이다. 새로 정화된 신자로서 얼마나 좋은 위상을 차지할 것인지 상상해 봤다. 얼마나 사랑을 받을 것인지도. 내 기억을 부모님의 기억으로 대체하기만 하면 나도 다시 가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P464
아버지와 나는 함께 사원을 바라봤다. 아버지는 신을 봤고, 나는 대리석을 봤다. 우리는 서로 바라봤다. 아버지는 저주받은 여자를 봤고, 나는 제정신이 아닌 노인, 글자 그대로 자신의 믿음 때문에 망가진 노인을 봤다. 그리고 그 노인은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득의양양했다. 나는 산초 판사의 말을 기억했다. <모험을 떠나는 기사는 패배를 한 후 자신이 황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 P465
그러나 나는 같은 선택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순간 알고 있었다. 내가 그때까지 해온 모든 노력, 몇 년 동안 해온 모든 공부는 바로 이 특권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내게 준 것 이상의 진실을 보고 경험하고, 그 진실들을 사용해 내 정신을 구축할 수 있는 특권. 나는 수많은 생각과 수만은 역사와 수많은 시각들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스스로 자신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믿게 됐다. 지금 굴복한다는 것은 단순히 언쟁에 한번 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것은 내 정신의 소유권을 잃는다는 의미였다. 이것이 내게 요구되는 대가였다. 이제 이해가 됐다. 아버지가 내게서 쫓고자 하는 것은 악마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 P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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