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전 -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
성철.법정 지음 / 책읽는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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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전. 그 의미가 자못 궁금하다. 편집자는 책 제목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차갑고 냉철하면서도 부드러운 수도자의 자세를 '눈'이라는 매개로 형상화하는 한편,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웃게 만드는 유일한 다툼인 '눈싸움'의 이미지를 통해 성철과 법정 두 사람 사이에 오간 구도의 문답과 인연을 표현하고자 했다. 살아생전 두 분의 성정을 생각해보면 의례 고개가 끄덕여지는 적합한 단어가 아닐까 생각된다. 성철 스님은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자신뿐 아니라 후학에게도 엄격했다. 반면에 법정 스님은 온후한 면이 없지 않았다. 두 분 모두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스님이지만 대중에게 좀 더 친숙한 분은 법정 스님이 아닐까 싶다. 모두가 다 알다시피 법정 스님이 쓰신 글은 여전히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지지 않고 있다. 다른 듯 보이지만 닮은 듯한 두 분의 모습이 책 속에 어떻게 그려졌을까.

이 책에는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의 살아생전 육성이 그대로 담겨 있다. 두 차례에 걸친 대담이라고 한다. 그 첫 번째는 1967년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열린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에서고 두 번째는 1982년 언론사 주관에 의한 성사된 대담에서다. 당대를 대표하는 선승인 두 분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치 않다. 더구나 이제는 두 번 다시 뵐 수 없기에 더더욱.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두 분의 문답에서 배울 점이 많은 듯하다. 종교적 관점을 벗어나 인간의 삶이라는 주제를 놓고 생각했을 때 많은 깨달음을 주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듯하다.

두 분의 대화록을 가만히 읽고 있자니 마치 지금 내가 앉아있는 이곳이 맑은 물이 흐르고 새소리가 들리는 산중의 절인 듯하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절의 사위는 무척이나 조용하다. 법당에서 울려 퍼지는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의 그윽한 목소리만 좌중을 울린다. 두 스님은 정확히 20년의 나이차가 난다고 한다. 사회생활에서 치자면 가히 말단 사원과 사장님의 관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성철 스님은 그만큼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분이시다. 그런 분에게 어쩌면 곳곳 할 정도로 자신의 심중을 묻고 말씀을 얻고자 하는 법정 스님의 모습은 마치 스승과 제자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실지로 두 분은 불교 사상적인 측면에서 스승과 제자의 길을 걸어오셨다. 비록 늘 함께 하진 못했지만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서로의 사상을 존경하고 따랐다. 그래서일까. 두 분의 대화가 한편으론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의 인연만큼이나 이 책이 출간되어 독자들을 만나게 된 것도 뜻깊은 인연의 연속이 아닐까 생각된다. 불교에 뜻을 두고 있지 않더라도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기에 좋은 교훈이 되는 내용들이다. 불교나 기독교를 포함해 이 세상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것은 '참된 진리'가 아닐까 생각된다. 단지 그것을 쫓아가는 방식이 다를 뿐이지 추구하는 바는 다르지 않다. 종교관에 상관없이 많은 이들이 두 스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다. 진리는 이미 내 안에 담겨 있다. 진리는 곧 부처다. 우리가 할 일은 단지 내 안에 부처가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두 스님의 짧은 대화 속에 담겨 있는 '진리'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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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파산 - 장수의 악몽
NHK 스페셜 제작팀 지음, 김정환 옮김 / 다산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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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노후를 준비한다. 그러나 누구나 행복한 노후를 맞이하진 못한다. 이제는 노후도 하나의 재테크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사실 예전에는 노년의 삶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자식들이 바로 원만한 노후 생활의 든든한 기반이었기 때문이다. 부모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들 또한 그러하리라 여겼다. 그러나 시대가 급변했다. 노후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달라졌다. 노후란 오롯이 나이 들어가는 나의 문제일 뿐 자식도 그 누구의 문제도 아니게 되었다.

서른 중반을 넘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후를 염두에 두고 연금, 보험, 저축 등을 하며 온갖 계획들을 세우게 된다. 그런 일련의 계획들을 세워 나가는 중에도 여전히 의문이 든다. 과연 내가 노후 준비를 잘 하고 있는 걸까. 이것으로 나의 노후는 안전한 걸까. 아직은 젊고 일할 수 있는 시간도 많이 남았다고는 하지만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는 게 바로 미래다. 그렇기 때문에 속속 일어나는 노후에 대한 불안은 점점 더 가중된다.

아니나 다를까 이러한 불안은 이미 현실화되어 문제시되고 있는 듯하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그 문제의 심각성을 집중 취재하여 보도되어 화제가 되었다.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의 주제는 바로 '노후 파산'이다. 그야말로 노후에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누리지 못하며 살아가는 노인들의 충격적인 삶이 고스란히 담겼다고 한다. 방송 직후 전 일본 열도는 마치 진도 9.5에 해당하는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온 국민을 뒤흔들었다. 젊은 세대는 물론이고 곧 노후 파산에 닥치게 될지도 모를 잠정적 세대인 중장년층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책은 그 다큐멘터리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노인들의 삶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노후 파산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 해결방안도 모색해본다.

현재 일본의 노후 파산으로 이어지는 노인 문제는 결코 강 건너 불 보듯이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가까운 미래 대한민국에서도 반드시 불거진 뜨거운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다. 곧이어 닥치게 될 나와 당신의 문제이다. 20대 초반부터 50대 중 후반까지 열심히 일해온 우리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 책에 실린 노인들의 삶이 결코 우리와 다르지 않다. 그 이유는 그들 또한 젊은 시절 우리와 똑같이 하루하루를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왔고 노후를 준비했던 이들이다. 그들 또한 자신의 노후가 파산에 직면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 했다. 자신의 노후는 결코 그럴 일 없다고 장담할 수 없는 이유다. 노후 파산의 무서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구도 노후 파산에 처할 수 있다.

책에서 소개된 노후 파산에 직면한 노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노후 파산에 대한 대비책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의 일본보다 연금 수령액이 조금 많다고 할 수 있으나 결코 안정적인 수령액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연금 수령 자체만으로는 안정된 노후를 누릴 수 없음이 현재 일본의 노인들이 겪는 문제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가령 연금 120만 원을 매달 수령하는 한 노인의 경우 한 달 지출 내역은 이렇다. 집세 35만 원, 생활비 55만 원, 의료비 15만 원, 공공요금 10만 원, 세금 및 보험료 5만 원으로 총 120만 원이 지출되고 잔액은 그야말로 0원이다. 이 노인의 경우 의료비를 충당하기 위해 하루 종일 식사를 거르며 물을 마실 때도 있다. 저축해놓은 예금이 있지 않고서는 연금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형편이다. 또한, 몸이 불편한 관계로 제대로 움직일 수 없기에 소일거리를 찾을 수도 없다.

우리나라는 OECD 가입 국가 중 노인 빈곤율이 ​1위라고 한다. 달라 말하면 노후 파산의 문제는 일본보다 한국이 더 심각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표면화되지 않았을 뿐이지 현실적으로 노인들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하다. NHK 다큐멘터리 제작팀에서 인터뷰한 노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한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빨리 죽고 싶을 뿐이다." 지금의 우리처럼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왔던 이들이 현재 겪고 있는 노후 파산의 문제는 인간으로 누릴 수 있는 삶의 권리와도 멀지 않아 보인다.

사회적으로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사회보장제도의 이념이다. 그러나 그 이념에 부합되도록 실현되고 있는지는 사실 의문이다.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연금제도, 생활보호 대상 제도, 돌보미 서비스 등 노후를 위해 마련된 정책 또는 제도들이 유명무실해 보이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나라는 현재 일본의 사례에 견주어 얼마만큼 정책적으로 확립되어 있을까.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후 노후 파산과 같은 문제에 직면에 있으며 그 대책 마련이 시급할 것으로 여겨진다. 날이 갈수록 고령화는 점점 그 속도를 빨리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대책은 미흡하기만 하다. 노후 파산의 문제는 결코 개인의 문제로 치부될 사안이 아니며 범국민적으로 지속적인 정책 수립과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이 책이 그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는데 일말의 도움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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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에디션 D(desire) 9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그책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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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이제 이 이름은 사랑을 대신하는 말이 되었다. 그것도 평범한 사랑이 아닌 격정적인 사랑, 잊을 수 없는 사랑, 단 하나의 사랑 등 보통의 사랑을 넘어선 마치 광기와 같은 특별한 사랑이다. 사랑이란 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으로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가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그렇기에 사랑은 뜨겁고 열정적이다. 눈을 멀게 한다. 모든 것을 내던지고 사랑을 선택할 만큼 때론 잔인하다. 무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놓아버릴 수 없다. 이미 그 사랑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는 유일한 이유가 되어버린 터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렇게 우리 가슴속에서 시작된다.

캐롤은 번듯한 남편에 사랑하는 딸에 남부럽지 않은 저택에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그녀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언제부터인지 무기력하기만 하다. 열정이 식어버린 삶을 그저 의무의 책임으로 이어갈 뿐이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딸의 장난감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 들리면서 그녀의 삶에 변화가 찾아온다. 테레즈는 무대 디자이너가 꿈이지만 지금은 그저 한낱 백화점 점원에 불과한 그녀다. 그녀의 삶은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반복되는 일상이다. 무료한 일상.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뜻밖의 변화가 찾아온다. 캐롤과 테레즈. 테레즈와 캐롤은 이렇게 같은 시각 같은 공간에서 서로에게 첫눈에 빠지게 된다. 이 짧은 찰나와 같은 순간은 걷잡을 수 없는 격정 같은 사랑에 모든 걸 내던지게 되는 시작에 불과했다. 그렇게 서로에게 무의식적으로 끌리게 되는 두 사람은 미국 서부를 가르는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캐롤의 남편이 고용한 사립탐정에 의해 쫓기는 신세가 돼버리고 만다. 결국 탐정에게 붙잡힌 캐롤. 캐롤은 일생일대 중요한 선택 앞에 놓이게 된다. 진정한 사랑이나 가족이냐. 그녀는 사랑을 선택하는데.. 과연 두 사람 앞에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전을 맞이한 직후인 1950년대가 소설의 배경이다. 굳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 당시는 동성의 사랑이란 금기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설 속 주인공 캐롤은 남편과 딸을 둔 가족이 있는 여자였다. 무엇보다 '가족을 버릴 만큼 그 사랑이 중요한가'라고 아니 물을 수 없다. 온갖 시대적 편견이 난무하는 그 가운데 당당히 사랑을 택한 두 여인의 용기가 감탄스러울 뿐이다. 만약 내가 캐롤 또는 테레즈였다면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가족이 있는 내가 어느 날 뜻밖의 새로운 사랑을 만난다고 가정한다면 말이다. 글쎄. 지금은 어떤 결론도 단정 지을 수 없을 듯하다. 사랑이란 감정이 이렇다. 이렇게 아프면서 동시에 기쁘기 그지없다. 냉정하면서 한없이 따듯하다. 동전의 양면처럼 낮과 밤처럼 늘 두 개의 감정이 함께 자리한다. 그래서 사랑이란 아마도 격정적인 게 아닐까.

범죄소설의 대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쓴 로맨스 소설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더구나 그녀 자신의 자전적 소설이라니 더더욱 실감이 안 난다. 히치콕 감독을 비롯해 유명 감독들이 그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영화화를 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그려지는 그녀가 탄생시킨 캐릭터는 매력적이다. 그러나 사랑스럽진 않다. 하지만, 그녀의 유일한 로맨스 소설인 이 작품의 캐릭터들은 사랑스럽다. 두 사람의 사랑을 닮고 싶어질 정도로. 이 소설 또한 영화화가 되어 이전에 개봉했던 영화들처럼 작품성과 흥행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영화 <캐롤>을 보고 있자니 <델마와 루이스>가 떠오른다. 두 여인이 주인공인 영화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두 여인이 서로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여행을 떠나기 때문일까. 이유야 어쨌든 두 영화에서 느끼는 감동은 비슷한 듯하다. 편견을 넘어 그들의 누리고 싶어 하는 사랑, 자유를 찾아가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라면 영화 <캐롤>에선 테레즈와 캐롤은 해피엔딩을 맞이한다는 점이랄까. 올해 들어 감명 깊게 본 로맨스 소설과 영화가 아닐까 싶다.

캐롤. 이제 이 이름은 사랑을 대신하는 말이 되었다. 멋진 사랑. 뜨거운 사랑. 한 번뿐인 사랑. 자유로운 사랑이라는 새 이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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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일푼 막노동꾼인 내가 글을 쓰는 이유 - 그리고 당신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
이은대 지음 / 슬로래빗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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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금껏 살면서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과연 몇 번이나 될까. 서른 중반을 넘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것이 글쓰기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렇다. 과연 누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 따위를 생각하겠는가. 글을 쓰는 게 생업인 이들을 제외하곤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 알 것도 같다. 글을 쓴다고 해서 소위 작가가 되고자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렇게 거창할 것까지도 없는 그저 '나만의 글쓰기'다. 내 머릿속에서만 맴돌고 있는 생각들을 글로 표현해보자는 것일 뿐이다. 그게 일기든, 에세이든, 소설이든 중요치 않다. 자유롭게 써 내려가는 것이 먼저다. 어쩌면 이런 내 생각에 가장 적합한 이유를 대신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쓴 이는 책 표지에서 보시다시피 전업 작가가 아니다. 그는 진짜 무일푼 막노동꾼이다. 한때는 소위 잘 나가는 대기업 영업사원으로 남부럽지 않은 인생, 노후가 보장된 미래를 꿈꾸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그저 하루 종일 거친 노동의 대가로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다.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하는 작가도 아닌 그가 글쓰기 전도사가 된 이유가 궁금하다. 남들처럼 평범한 아니, 이제는 더 힘들게 살아가는 그가 대체 무슨 이유로 글쓰기를 강조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글쓰기를 통해 180도 전혀 다른 삶을 경험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돈도 안되는 글쓰기에 도대체 어떤 큰 힘이 있길래 사람의 인생마저 바꿔놓는단 말인가. 어느새 저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과 같다. 내 안에 갇혀있는 또 다른 나를 들어내는 일이다. 거짓과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자신에게 하는 말과 생각도 결코 자신에게 불리하게 하지 않는다. 혼자 하는 생각일지라도 절대 한치의 불이익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인간이 갖고 있는 자기 보호 본능의 결과일까. 자기방어 또는 합리화를 통해 진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꾸며낸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자기 합리화는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오히려 더욱 답답해질 뿐이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오로지 한 가지뿐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글쓰기다. 말과 행동으로 하기엔 어려운 일도 글로 표현하기엔 쉽다. 그거도 오롯이 나 자신만 읽을 수 있다면 더더욱. 이것이 '나만의 글쓰기'의 시작이다. 굳이 잘 쓰려고 노력할 필욘 없다. 지금의 내 감정에 충실하면 그만이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저자의 글쓰기가 존경스러운 이유다.
저마다 글쓰기 어려운 이유는 하나씩 있다. 그 이유의 공통점은 바로 시간이 없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핑계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가 어떻게 글을 쓰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공사판 막노동 일을 하는 사람보다 힘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저자가 글을 쓰는 대부분의 시간은 막노동을 하고 집에 돌아온 이후다. 누우면 곧장 골아 떨어질 것만 같은 피로에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글쓰기를 실천해오고 있다. 그렇게 써온 글이 때론 소설이 되기도 하고, 에세이가 되기도 하며, 수필이 되기도 한다. 비록 독자가 자기 자신뿐이지만 말이다.
그가 인생의 나락에서 찾아낸 인생의 터닝 포인트랄까. 그것은 바로 글쓰기였다. 글쓰기를 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술로 하루를 보내던 자기 자신을 극복해냈다. 글쓰기를 한다고 당장 모든 것이 달라지진 않는다. 다만, 습관처럼 글쓰기를 하다 보면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글쓰기를 통한 저자의 경험이 이를 증명한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일단 흰 종이와 펜 하나만을 들고 무엇이든 써보라고 말한다. 이것이 '나만의 글쓰기'의 시작이며 가장 중요한 점이다. 맞는 말이다. 글쓰기에는 다른 방도가 없는 듯하다. 일단 써야 그것이 어떤지 알 수 있다. 당장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그저 오늘 있었던 일부터 조금씩 써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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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 - 하 - 조선의 왕 이야기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
박문국 지음 / 소라주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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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조선 역사의 중심에 있는 왕이다. 태조 이성계를 시작으로 27대 순종까지 파란만장했던 조선의 역사가 곧 한국사라 할 수 있다. 물론 조선 이전의 고대사도 역사학적으로 충분히 중요한 사료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한국사를 논할 때 조선의 역사에 가장 의의를 두는 것은 그만큼 지금의 대한민국의 기초가 된 역사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에 따라 조선의 역대 왕들의 행적을 쫓아가다 보면 자연스레 조선의 역사는 물론 한국사까지 이해하게 된다.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 조선의 왕 이야기>는 어쩌면 그런 맥락으로 접근한 새로운 역사 책이 아닐까 싶다.

상권에서 태조 이성계부터 14대 선조까지를 다뤘다면 하권인 이 책에선 15대 광해군을 시작으로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가 사라지는 27대 순종까지를 다룬다. 상권에서 다뤄진 역대 왕들이 조선의 기틀을 닦고 부흥시켰다면 이 시대의 왕들은 무너져 가는 조선의 역사의 기로에서 나름대로 분발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선 왕조의 역사가 고대 로마사의 흥망성쇠와 닮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로마의 건국부터 쇠망까지 일대 로마사를 재미있게 다룬 시오노 나나미의 <로만인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하권에서 다뤄지는 조선의 역대 왕들은 현 세계에서도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평가되는 인물들이 많다. 광해군, 인조, 영조, 정조 등 TV, 드라마, 소설, 영화 등에서 심심찮게 봐왔던 인물들이다. 그래서일까. 낯설지가 않고 지금껏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던 왕의 모습과 조금은 다른 듯 표현된 것에 신선함을 느꼈다. 특히, 역대 왕들의 모습을 특색 있게 재해석하여 그려낸 왕들의 초상은 압권이다. 이 책의 모든 이야기가 그 그림들에 다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완벽하고 철저한 모습으로 많이 비쳤던 정조가 술을 마시고 담배를 즐겨 피는 듯한 모습은 파격적이다. 한편으론 범접할 수 없는 왕의 이런 모습들에서 인간적인 면모가 느껴지기도 한다. 왕의 모습을 근엄한 초상이 아닌 그들의 성격이나 특색에 맞게 그려낸 초상은 아마도 최초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란 얼마나 정확한 것일까. 사실 알 수 없다. 개인의 역사관에 따라 인식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단지 교과서를 통해서만 배우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 소설, 영화 등 역사적 사실을 각색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낸 경우도 많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역사란 어쩌면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는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올바른 역사관 정립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올바른 역사관이란 무엇일까.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근거 있는 역사관'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양한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한 연구와 해석이 가능해져야 하는 이유다. 어쩌면 이 책은 그 시도의 일환으로 봐도 좋을 듯하다.

오랜만에 실로 재미있는 역사 책을 만났다. 그런데 이미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5분 한국사 이야기'로 무려 38만 독자들을 만나왔단다. 바쁜 와중에도 누구나 쉽고 간편하게 한국사를 공부할 수 있는 채널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 또한 '5분 한국사 이야기'의 독자가 되었다. 이번 '조선의 왕 이야기'를 시작으로 재미있는 한국사 이야기책이 꾸준히 발간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저자의 숨은 노력에 박수를 보내며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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