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 에디션 D(desire) 9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그책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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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이제 이 이름은 사랑을 대신하는 말이 되었다. 그것도 평범한 사랑이 아닌 격정적인 사랑, 잊을 수 없는 사랑, 단 하나의 사랑 등 보통의 사랑을 넘어선 마치 광기와 같은 특별한 사랑이다. 사랑이란 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으로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가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그렇기에 사랑은 뜨겁고 열정적이다. 눈을 멀게 한다. 모든 것을 내던지고 사랑을 선택할 만큼 때론 잔인하다. 무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놓아버릴 수 없다. 이미 그 사랑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는 유일한 이유가 되어버린 터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렇게 우리 가슴속에서 시작된다.

캐롤은 번듯한 남편에 사랑하는 딸에 남부럽지 않은 저택에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그녀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언제부터인지 무기력하기만 하다. 열정이 식어버린 삶을 그저 의무의 책임으로 이어갈 뿐이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딸의 장난감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 들리면서 그녀의 삶에 변화가 찾아온다. 테레즈는 무대 디자이너가 꿈이지만 지금은 그저 한낱 백화점 점원에 불과한 그녀다. 그녀의 삶은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반복되는 일상이다. 무료한 일상.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뜻밖의 변화가 찾아온다. 캐롤과 테레즈. 테레즈와 캐롤은 이렇게 같은 시각 같은 공간에서 서로에게 첫눈에 빠지게 된다. 이 짧은 찰나와 같은 순간은 걷잡을 수 없는 격정 같은 사랑에 모든 걸 내던지게 되는 시작에 불과했다. 그렇게 서로에게 무의식적으로 끌리게 되는 두 사람은 미국 서부를 가르는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캐롤의 남편이 고용한 사립탐정에 의해 쫓기는 신세가 돼버리고 만다. 결국 탐정에게 붙잡힌 캐롤. 캐롤은 일생일대 중요한 선택 앞에 놓이게 된다. 진정한 사랑이나 가족이냐. 그녀는 사랑을 선택하는데.. 과연 두 사람 앞에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전을 맞이한 직후인 1950년대가 소설의 배경이다. 굳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 당시는 동성의 사랑이란 금기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설 속 주인공 캐롤은 남편과 딸을 둔 가족이 있는 여자였다. 무엇보다 '가족을 버릴 만큼 그 사랑이 중요한가'라고 아니 물을 수 없다. 온갖 시대적 편견이 난무하는 그 가운데 당당히 사랑을 택한 두 여인의 용기가 감탄스러울 뿐이다. 만약 내가 캐롤 또는 테레즈였다면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가족이 있는 내가 어느 날 뜻밖의 새로운 사랑을 만난다고 가정한다면 말이다. 글쎄. 지금은 어떤 결론도 단정 지을 수 없을 듯하다. 사랑이란 감정이 이렇다. 이렇게 아프면서 동시에 기쁘기 그지없다. 냉정하면서 한없이 따듯하다. 동전의 양면처럼 낮과 밤처럼 늘 두 개의 감정이 함께 자리한다. 그래서 사랑이란 아마도 격정적인 게 아닐까.

범죄소설의 대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쓴 로맨스 소설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더구나 그녀 자신의 자전적 소설이라니 더더욱 실감이 안 난다. 히치콕 감독을 비롯해 유명 감독들이 그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영화화를 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그려지는 그녀가 탄생시킨 캐릭터는 매력적이다. 그러나 사랑스럽진 않다. 하지만, 그녀의 유일한 로맨스 소설인 이 작품의 캐릭터들은 사랑스럽다. 두 사람의 사랑을 닮고 싶어질 정도로. 이 소설 또한 영화화가 되어 이전에 개봉했던 영화들처럼 작품성과 흥행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영화 <캐롤>을 보고 있자니 <델마와 루이스>가 떠오른다. 두 여인이 주인공인 영화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두 여인이 서로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여행을 떠나기 때문일까. 이유야 어쨌든 두 영화에서 느끼는 감동은 비슷한 듯하다. 편견을 넘어 그들의 누리고 싶어 하는 사랑, 자유를 찾아가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라면 영화 <캐롤>에선 테레즈와 캐롤은 해피엔딩을 맞이한다는 점이랄까. 올해 들어 감명 깊게 본 로맨스 소설과 영화가 아닐까 싶다.

캐롤. 이제 이 이름은 사랑을 대신하는 말이 되었다. 멋진 사랑. 뜨거운 사랑. 한 번뿐인 사랑. 자유로운 사랑이라는 새 이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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