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 상처받지 않고 사람을 움직이는 관계의 심리학
양창순 지음 / 다산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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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하다'라는 말이 주는 이미지는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다. 우리가 이 말을 언제 사용하는지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상대방과의 대화 도중 장난스럽게 웃자고 던진 말에 죽자고 덤벼들 때가 있다. 그럴 때 '왜 그렇게 까칠해?'하고 말하곤 한다. 그러고 보면 '까칠하다'라는 말은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인 성향의 말이다. 만약 당신이 '까칠해 보인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결코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까칠하다'라는 말이 꼭 부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듯하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까칠하다'라는 것은 상대방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해 난감한 상황을 겪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이 '까칠함'은 인간관계를 수월하게 해준다. 불필요한 것은 버리고 필요한 것만을 취하도록 말이다. 물론, 그 까칠함의 범위가 넘어서지 않는 한도 내에서 말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까칠함'을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좋은 솔루션이 되지 않을까.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간 관계만큼 쉬운 일도 없으나 한편으론 그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는 듯하다. 아무리 사회성이 좋은 사람일지라도 그 관계 속에서 나름의 어려움은 갖고 있기 마련이다.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피해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라도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거절을 잘 하지 못해 상대방에게 휘둘리는 사람에겐 정말이지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해본 적 있을 것이다. 친한 사람의 부탁이어서 어쩔 수 없이 들어주어야만 했던 일이나 회사에서 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떠맡게 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거절하지 못한 자신의 우유부단함과 나약함에 상처를 입는다. 왜 그래야 할까.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지 않고 거절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물음에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까칠하게 살아라'라고 말이다. 저자 본인도 당당히 말한다.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결심했다'라고 말이다. 단, 막무가내식의 까칠함은 아니다. 저자가 말하는 까칠함은 '건강한 까칠함'이다. 까칠한 거면 까칠한 거지 거기에 건강한 이란 수식어는 왜 붙는 걸까. 저자가 소개하는 '건강한 까칠함을 갖기 위한 5단계 솔루션'을 살펴보자.


건강한 까칠함을 갖기 위한 5단계 솔루션

1.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 SCE의 법칙을 따르자

2. 대인관계에서도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3.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그리고 간결하고 명료하게

4. 나는 나에게 자유를 허락할 의무가 있다

5. 삶은 직선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자

SCE의 법칙이란  STOP, CONTROL, ESCAPE. 즉, 멈추고 조절하고 벗어나라를 의미한다. 건강한 까칠함을 갖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하고 선행되어야 할 것이 바로 나라는 중심을 잡는 것이다. 나 자신과의 관계, 대인관계 속에서 균형을 잃지 않아야 한다. 지나친 생각이 들 때는 먼저 그 생각을 멈추고 내가 나를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윽고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에게 과감히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마크 트웨인은 "담배를 끊는 것은 쉽다. 나는 천 번도 더 했다."라고 말했다. 자신을 바꾸는 일이 담배를 끊는 일보다 더 어렵다. 자신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꾸준히 노력한다면 불가능하진 않다.

사실 인간관계가 점점 어려워지는 가장 큰 이유가 거절을 잘 하지 못해서가 아닐까 싶다. 부탁을 한다는 것 자체도 사실 쉽게 하는 일이 아니다 보니 거절을 당했을 때 그 당혹감과 수치스러움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상대방과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이런 경험을 해본 사람이 알겠지만 이는 결국 상대방과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만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하는 것만큼 부질없는 짓도 없다. 남의 기준에 맞추다 보면 자신을 잃어버리고 만다. 거절을 하든 싫은 소시를 하든 중요한 것은 내 기준에 맞추는 것이다. 내가 남의 인생에 해줄 것은 많지 않다. 앞으로 ​거절을 할 때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그리고 간결하고 명료하게' 하도록 노력해보자.


시인 앨프레드 테니슨의 말처럼 우리에겐 "자신에 대한 지식, 자신에 대한 존경, 그리고 자신에 대한 억제"가 필요하다. 자신에 대해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자긍심을 갖는다는 것은 인간관계 속에서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나다. 상대방의 기분과 기준에 맞춰 삶을 살아가기보다 내 삶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투사해버린 것들을 자신의 내면에서 다시 찾는 순간 성장한다. 단순한 까칠함이 아닌 건강한 까칠함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바꿔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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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뒤흔드는 크로스오버 아이디어 - 다른 산업에서 아이디어를 훔쳐라
레이먼 벌링스.마크 헬리번 지음, 정용숙 옮김 / 더난출판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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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영향일까. 이제는 Inovation, 혁신이란 말은 IT 업종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그런데 모든 제품, 기술 등에 혁신이란 말이 붙는다면 그것이 과연 혁신일까. 이제는 혁신이란 말 자체가 더 이상 진정한 혁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다른 말로 오로지 자기 분야에서의 혁신만을 고집하는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사고방식으로는 결코 그 이상을 추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제는 전혀 다른 산업 분야에도 관심을 쏟고 그곳에서 아이디어를 훔쳐 응용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노력 또는 아이디어를 '크로스오버 아이디어'라고 명명한다.

혁신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무엇보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변화는 지금껏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크로스오버 아이디어는 바로 낯선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 낯선 길은 도리어 지름길이 된다. 흔히 전문가라 함은 한 분야에서 그 누구보다 뛰어난 지식과 기술을 겸비한 사람을 일컫는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라는 속담도 있듯이 한 가지 분야에 집중하여 노력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요즘의 시대엔 시대착오적인 말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변화의 속도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빠르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자신의 분야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의 아이디어 접목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크로스오버 효과는 여러 실 사례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이동할 때 유모차는 유용하다. 그런데 그 커다란 유모차를 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란 쉽지 않다. 그럴 땐 가벼운 접이식 유모차를 애용한다. 지금이야 당연하듯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접이식 유모차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오웬 맥클라렌은 항공 엔지니어이자 비행시험 조종사로서 오랫동안 일해왔다. 은퇴 후 자신의 어린 딸을 돌보던 중 그는 기존의 커다랗고 다루기 힘든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채 비행기에 타고 내리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에 그는 비행기에 장착된 착륙장치에서 영감을 얻어 접이식 경량 유모차를 개발하게 되었다. 비행기와 유모차, 항공업과 유아산업.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상관없는 분야임에도 멋지게 크로스오버 아이디어가 접목되어 새로운 제품이 탄생했다. 행간에 이런 말이 있다. "위대한 아이디어는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다." 새롭게 출시되는 제품이나 기술을 보면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미 예전에 알고 있었던 것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응용 가능함을 발견하여 재가 공한 것이다. 또한, 피카소는 말했다. "좋은 예술가는 적당히 모방한다. 그러나 위대한 예술가는 통째로 훔친다."

"우리는 늘 남의 위대한 아이디어를 도용하기를 부끄러워한다. 하지만 매킨토시라는 대단한 제품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개발에 참여한 이들이 음악가나 시인, 아티스트, 동물학자, 그리고 역사학자로서의 재능을 가진 세계 최고의 컴퓨터 과학자였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비슷한 일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매너리즘이라는 함정에 빠지고 만다. 매너리즘은 곧 고정관념이라는 틀로 자리 잡게 되며 독창성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그렇게 변화 또는 혁신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세상을 뒤흔드는 크로스오버 아이디어는 직설적으로 말한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요소를 제거하라고 말이다. 동물이 사라진 서커스, 먼지 봉투가 없는 청소기, 물을 사용하지 않는 변기, 아이팟 셔플, 무인자동차 등등. 우리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것들이 빠져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이야말로 21세기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만들어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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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니다, 우주일지
신동욱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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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신동욱을 브라운관에서 처음 만난 건 드라마 <쩐의 전쟁>을 통해서였다. 내가 아는 그는 박신양이라는 대스타와 함께 출연한 신인 연기자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드라마에서 그의 역할은 큰 비중을 차지했다. 단순히 큰 키에 잘생긴 외모가 다가 아니었다. 박신양이라는 배우 못지않게 탄탄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드라마를 보면서 '아, 신동욱 뜨겠구나'하는 생각을 한건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그런 큰 기대감을 주는 배우였다. 그런 그가 돌연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배우로써 촉망받던 그에게 큰 아픔이 찾아온 것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희귀병에 걸려 투병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배우 신동욱은 팬들 앞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런데 그가 5년간의 투병 생활 끝에 배우가 아닌 작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왔다. 장르는 SF 우주 소설이다.

이 세상은 그를 이렇게 부른다. T 그룹의 CEO. 천재 사업가. 전기 자동차의 아버지. 우주인. 화성이주를 꿈꾸는 개척자. 영화 <아이언맨>의 실제 모델. 바람둥이. 그의 이름은 맥 매커천이다. 우주를 좋아해서 화성 이주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그것은 그의 어릴 적부터 꿈이었다. 하지만, 화성 이주 사업은 그의 생각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골머리를 앓고 있는 그에게 어느 날 구세주가 나타난다. 그녀의 이름은 한국인 김안나. 이론물리학자로 그녀 또한 우주를 사랑해서 우주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다. 그녀는 맥에게 불가능한 화성 이주 사업 대신 우주 엘리베이터 프로젝트를 제안(?) 하게 된다. 그녀의 섹시한 지적 미모에 첫눈에 반한 맥은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곧이어 그녀의 우주 엘리베이터 프로젝트를 실행해 옮기게 된다. 문제는 우주 엘리베이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내기 위해서는 약 2억 3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우주로 날아가 소행성 AC5680을 포획해와야 한다. 과연 맥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오랜 꿈을 위해 소행성 포획 작전을 성공적으로 끝마칠 수 있을까?

영화 <마션>으로 우주를 다룬 소설이나 영화가 한층 더 인기가 많아진 것 같다. 물론, <스타워즈>를 좋아하는 덕후들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그만큼 영화 <마션>은 앤디 위어의 소설을 리얼하게 재현했다.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가 실화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영화와 소설 모두 화성과 우주에 대한 묘사가 디테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작품이 또 나왔다. 아니 그보다 더 재미있는 우주 소설이다. 우주 어드벤처는 물론 유머와 로맨스까지 곁들어져 있다. 읽는 내내 유쾌하고 재미있다. 어려운 우주 용어들이 그렇게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 또한 소설의 재미를 위해 필요한 양념에 불과해 보인다.

작가 신동욱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수백 권의 우주, 물리학 책을 독파함은 물론 엄청난 자료조사까지 했다고 한다. 소설을 읽어보면 그가 이 한 권의 책에 쏟아부은 열정과 정성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다. 우주 탐사와 관련된 각종 이론과 용어들을 자연스럽게 소설에 녹여낼 수 있으려면 단순한 상상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더구나 투병 생활을 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소설 속 주인공 맥 매커천이 품고 있는 우주를 향한 꿈은 배우이자 작가인 그의 꿈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그의 꿈 이야기다.


우리는 현재의 인류와 더 나은 세상을 사고 있을 미래의 인류를 잇는 거대한  대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인류의 미래를 표상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선택한 현재의 결과에 따라서 미래에 대한 결과도 많이 달라질 테니. (중략) 미래는 절대로 정해져 있지 않다. 현재의 선택에 의해서 진화의 나무처럼 분화되고 갈라질 뿐이다. 그래야 공정하다. 미래가 단 하나의 세상으로 결정돼 있다면, 우주의 존재는 엄청난 시공간의 낭비일 뿐이니까. (중략) 나는 노력의 질량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미래의 결과조차도 휘게 만들 수 있는 무거운 중력이 만들어지지라 믿는다. 미래는 그 누구도 정말 모를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의 시간을 충실하게 달려서 미래를 바꿔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최선이다.

'나는 어두운 우주 속에 처박혀 일지를 쓰고 있는 우주 글쟁이다.'라고 맥을 목소리를 빌려 말하지만 결코 그는 현재 자신의 모습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후회는 어리석은 미래를 맞이하는 지름길이며 비겁한 변명'일 뿐이기 때문이다.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고들 말한다. 현재의 내 노력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고 말이다. 힘겨운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 배우이자 작가인 신동욱의 미래도 결코 알 수 없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지금의 우리가 지금의 위치에서 무엇에 최선을 다해야 할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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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씨, 시 읽어 줄까요 - 내 마음을 알아주는 시와 그림의 만남
이운진 지음 / 사계절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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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도화지에 붓 칠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내가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그렇다고 관심을 갖게 된 지금도 그림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저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한다. 뭐랄까 그림을 통해 나만의 위안을 얻는다고 해야 될까. 그런 느낌이다. 나란 사람은 지극히 동양적인 사람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림들은 서양화가의 그림들이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유명한 화가의 작품들 중에서도 특히 고흐의 그림들에 이상하게 끌린다. 그 이유를 나 자신도 설명할 수 없다. 그림이 나를 부르는 듯한 느낌이랄까. 아마도 나를 포함해 고흐의 그림들을 좋아하는 이들도 그러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그림을 보며 저마다의 해석이 존재하겠지만 말이다. 이 책의 작가 또한 그중 한 명이 아닐까 싶다.

어린 시절 학교를 오가는 골목에 자리한 미술학원에 다니고 싶었다던 작가다. 엄마에게 그 학원에 보내달라 떼를 써보지만 결국 학원의 문턱을 넘진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 미술학원에 가보지 못한 그 아쉬움은 그녀에게 그림에 대한 열정을 더욱 크게 만들었고 훗날 그림과 시의 멋진 컬래버레이션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된 듯한다. 그렇게 해서 결국 지금의 이 책이 탄생하게 된 것은 아닐까.

책에서 작가는 같은 주제로 얽힌 그림과 시를 소개한다. 고흐 자신이 '내 그림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남을 것'이라 했을 만큼 가장 아꼈던 작품인 <감자 먹는 사람들>과 김선우 시인의 <감자 먹는 사람들>부터 희망을 얘기하는 조지 프레더릭 와츠의 <희망>과 천양희 시인의 <희망이 완창이다>, 한국 미술사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윤두서의 <자화상>과 서정주 시인의 <자화상>까지. 이들 그림과 시는 원래부터 하나였듯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절묘한 어울림이 존재한다.

빛의 화가라 불리는 빈센트 반 고흐. 지금은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유명한 화가임에 틀림없지만 살아생전의 그는 결코 행복한 삶을 살지 못 했다. 그의 그림은 단 한점 팔린 적이 없었고 평생을 동생 테오에게 의지하며 그림을 그렸을 정도로 가난했으며 정신착란의 병까지 앓으며 결국 자신의 귀를 잘라버릴 정도로 힘겨운 삶을 살다 생을 마감했다. 그의 그림은 유난히 밝은 색감의 그림들이 많은데 앞서 얘기한 <감자 먹는 사람들>은 정반대다. 캔버스를 채운 색은 자칫 보는 이로 하여금 암울해질 정도로 온통 어두운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은 따뜻함을 전한다. 가난한 농부 가족의 단란한 한 끼 저녁식사의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투박한 손으로 아내에게 감자를 건네는 농부의 모습에서 고흐 자신처럼 가난한 삶을 살아가지만 서로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고흐의 작품 중에서 유독 어두운 색감의 그림이지만 가장 밝은 느낌을 전해주는 작품이다.

감자를 끼니로 먹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그때의 감자는 배고픔을 달래주는 소중한 음식이었다. 지금은 그것이 아련한 추억으로 다가온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한자리에 모여 감자로 끼니를 때운다. 그 와중에 엄마는 다른 가족들이 숟가락을 내려놓을 때까지 들지 못한다. 어릴 적 질리도록 먹은 음식은 싫어하게 된다지만 감자만큼은 도저히 그럴 수 없다. 시인에게 감자는 그리움을 의미한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식은 감자 냄새. 그 치명적인 냄새는 곧 치명적인 그리움으로 이어진다.

그림과 시. 전혀 다른 세계일 거 같으면서도 묘하게 어울리는 면이 있다. 둘 다 그 속에 의미를 감추고 있다는 점이 그럴까. 그림을 보고 시를 읽는 이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재해석 될 수 있다는 점이 그럴까. 다른 듯하면서도 닮은 그림과 시다. 그림을 읽는 방법으로 시를 읽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반대로 시를 보는 방법으로 그림을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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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자 1
장용 지음, 양성희 옮김 / 조율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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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국과 우리나라 양국 사이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이미 알고 있듯이 미국의 THAAD 배치 문제로 외교 관계마저 위태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형제의 나라라고 불렸다. 두 나라의 오랜 역사가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양국의 문화는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두 나라 모두 결코 잊지 못할 뼈아픈 슬픈 역사를 갖고 있는데 바로 일제 침략으로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독립하기 위해 항일 투쟁을 벌였던 기억이다. 그래서일까. 1930년대 일제 강점기 시대에 항일 투쟁을 벌이던 중국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이 결코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일제의 중국 대륙 침탈이 거세된 1930년대 상해. 이곳은 일본과 중국 첩보원들의 보이지 않는 첩보 전쟁터다. 일본은 중국의 식민지화를 위해 신정부를 세워 중국의 사회 경제를 쥐락펴락한다. 또한, 76호 기관은 조국을 배신한 친일파들을 앞세워 항일 분자를 잡아들이는데 앞장선다. 이런 혼란 속에 상해의 부호 명 씨 집안의 큰 아들인 명루는 파리 유학을 마치고 왕위가 이끄는 신정부의 재무부 장관에 취임한다. 일본을 위해 일하는 신정부의 하수인을 자처했지만 사실 그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공산당과 국민당에 속한 이중첩자다. 그 사실을 모른 채 맏딸 명경은 자신의 동생을 매국노라 오해하지만 동생의 숨은 뜻을 알아차린다. 그녀 또한 아무도 몰래 공산당의 자금 담당 역할을 해오는 붉은 혁명가였던 것이다. 한편, 명 씨 집안의 철업는 막냇동생 명대는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국민당 첩보원 왕천풍을 만나게 된다. 그 우연의 만남은 곧 그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그 또한 항일 투쟁을 위한 비밀 첩보원으로 다시 태어난다. 나라를 빼앗긴 어지러운 전쟁 속에서 서로의 신분을 감춘 채 나라의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명 씨 집안 남매. 과연 그들은 서로 속고 속이는 첩보 전쟁 속에서 서로의 안전을 지키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울 수 있을까.

중국 TV를 시청한 적이 없던 터라 이 소설을 만나기 전까진 드라마 <위장자: 감춰진 신분>가 어느 정도로 인기가 높은지 알지 못 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은 놀라웠다. 총 48부작으로 제작된 드라마가 중국 50여 개 도시에서 전 회차 동시간대 시청률 1위라는 기염을 토했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 중국에서 그와 같은 기록을 세웠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소설은 드라마의 인기를 바탕으로 새롭게 원작을 각색하고 살을 붙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드라마를 보진 못했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 느꼈던 긴장감과 스케일을 생각하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앞서 얘기했듯이 이 소설은 1930년대 일제 치하의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당시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기에 놓여있었으니 남일 같지 않다고 해야 될까. 소설을 읽는 동안 감정이입이 잘 되었던 것 같다. 항일 투쟁을 위해 목숨 바치는 첩보원들의 모습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며 돌아가신 우리의 독립투사들이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한편으론 이 소설은 비운의 소설이 아닐 수 없다. 한 가족의 남매 모두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뼛속까지 애국자이지만 결코 자신의 진짜 신분을 드러낼 수 없다. 하지만, 서로의 신념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것도 잠시 이별의 순간이 찾아온다. 전쟁이 낳은 슬픈 현실이다. 허구의 소설이지만 그 시대적 배경에서 오는 냉혹한 사실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역사가 말해주듯이 전쟁은 결코 행복한 결말을 가져오지 않는다. 또한, 정당한 전쟁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바로잡을 수는 있다. 어쩌면 그것이 전쟁의 역사를 거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해야 될 몫이 아닐까 생각된다. 잘못된 역사관을 바로잡고 용서와 화해를 도모하는 것만이 전쟁의 과오를 씻을 수 있는 길이다.

바로 이런 점이 소설 <위장자>가 가진 매력이 아닐까. 탄탄한 스토리와 스피디한 전개로 첩보 소설로서의 재미를 주는 동시에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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