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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씨, 시 읽어 줄까요 - 내 마음을 알아주는 시와 그림의 만남
이운진 지음 / 사계절 / 2016년 10월
평점 :
언제부터였을까. 도화지에 붓 칠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내가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그렇다고 관심을 갖게 된 지금도 그림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저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한다. 뭐랄까 그림을 통해 나만의 위안을 얻는다고 해야 될까. 그런 느낌이다. 나란 사람은 지극히 동양적인 사람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림들은 서양화가의 그림들이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유명한 화가의 작품들 중에서도 특히 고흐의 그림들에 이상하게 끌린다. 그 이유를 나 자신도 설명할 수 없다. 그림이 나를 부르는 듯한 느낌이랄까. 아마도 나를 포함해 고흐의 그림들을 좋아하는 이들도 그러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그림을 보며 저마다의 해석이 존재하겠지만 말이다. 이 책의 작가 또한 그중 한 명이 아닐까 싶다.
어린 시절 학교를 오가는 골목에 자리한 미술학원에 다니고 싶었다던 작가다. 엄마에게 그 학원에 보내달라 떼를 써보지만 결국 학원의 문턱을 넘진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 미술학원에 가보지 못한 그 아쉬움은 그녀에게 그림에 대한 열정을 더욱 크게 만들었고 훗날 그림과 시의 멋진 컬래버레이션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된 듯한다. 그렇게 해서 결국 지금의 이 책이 탄생하게 된 것은 아닐까.
책에서 작가는 같은 주제로 얽힌 그림과 시를 소개한다. 고흐 자신이 '내 그림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남을 것'이라 했을 만큼 가장 아꼈던 작품인 <감자 먹는 사람들>과 김선우 시인의 <감자 먹는 사람들>부터 희망을 얘기하는 조지 프레더릭 와츠의 <희망>과 천양희 시인의 <희망이 완창이다>, 한국 미술사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윤두서의 <자화상>과 서정주 시인의 <자화상>까지. 이들 그림과 시는 원래부터 하나였듯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절묘한 어울림이 존재한다.
빛의 화가라 불리는 빈센트 반 고흐. 지금은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유명한 화가임에 틀림없지만 살아생전의 그는 결코 행복한 삶을 살지 못 했다. 그의 그림은 단 한점 팔린 적이 없었고 평생을 동생 테오에게 의지하며 그림을 그렸을 정도로 가난했으며 정신착란의 병까지 앓으며 결국 자신의 귀를 잘라버릴 정도로 힘겨운 삶을 살다 생을 마감했다. 그의 그림은 유난히 밝은 색감의 그림들이 많은데 앞서 얘기한 <감자 먹는 사람들>은 정반대다. 캔버스를 채운 색은 자칫 보는 이로 하여금 암울해질 정도로 온통 어두운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은 따뜻함을 전한다. 가난한 농부 가족의 단란한 한 끼 저녁식사의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투박한 손으로 아내에게 감자를 건네는 농부의 모습에서 고흐 자신처럼 가난한 삶을 살아가지만 서로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고흐의 작품 중에서 유독 어두운 색감의 그림이지만 가장 밝은 느낌을 전해주는 작품이다.
감자를 끼니로 먹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그때의 감자는 배고픔을 달래주는 소중한 음식이었다. 지금은 그것이 아련한 추억으로 다가온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한자리에 모여 감자로 끼니를 때운다. 그 와중에 엄마는 다른 가족들이 숟가락을 내려놓을 때까지 들지 못한다. 어릴 적 질리도록 먹은 음식은 싫어하게 된다지만 감자만큼은 도저히 그럴 수 없다. 시인에게 감자는 그리움을 의미한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식은 감자 냄새. 그 치명적인 냄새는 곧 치명적인 그리움으로 이어진다.
그림과 시. 전혀 다른 세계일 거 같으면서도 묘하게 어울리는 면이 있다. 둘 다 그 속에 의미를 감추고 있다는 점이 그럴까. 그림을 보고 시를 읽는 이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재해석 될 수 있다는 점이 그럴까. 다른 듯하면서도 닮은 그림과 시다. 그림을 읽는 방법으로 시를 읽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반대로 시를 보는 방법으로 그림을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