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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이중성의 살인미학
김상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3월
평점 :
품절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책117p, 출처 위키디피아]
2년 전 프랑스의 한 다락방에서 카라바조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그림이 하나 발견되었는데 이 그림의 진위 여부가 최근 밝혀졌다. 이 그림은 실제 카라바조의 그림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명되었고 프랑스 정부는 더 정확한 감정을 위해 이 그림을 30년간 국외 반출 금지 시켰다. 실제 이 그림이 진품으로 판명난다면 프랑스 정부가 이 그림을 사들일 기회를 갖게 된다고 한다. 이 그림의 가격은 무려 1,570억이다. 잭슨폴록의 그림이 1,468억이니 이 그림의 가치가 어느정도인지 알 법도 하다. 사실 카라바조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거의 전시회가 열린 적이 없을 정도로 그림이 고가이다. 그림을 판단하는 기준이 거기에 매겨진 가격이라고 생각하는게 얼마나 무식한 방법인줄 알면서도 나는 도무지 가격을 무시할 수 없다. 이 책은 카라바조의 작품을 연대기적으로 따라가면서 그의 작품이 나타내는 화가 자신의 환경과, 주변 여건에 따라 변화하거나 발전하는 작품의 변천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의 그림이 대단한가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물음이 되겠다. 저자는 단순히 기술적인 설명에 그치지 않고 그러한 기술적 차이가 이전의 화가들에게서 볼 수 없던 어떤 특이점을 가졌는지 설명한다. 그 점이 이 책의 장점이면서 동시에 카라바조가 다른 화가들과 차별성을 갖는 부분이다. 가장 특이한 기술적 차이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는 '알라 프리마 방식'이고, 두번째는 '테네브리즘'이다. '알라 프리마' 방식이란 16세기 베네치아 출신 화가들이 기초도안이나 밑그림 없이 바로 채색하는 방식을 말한다. 카라바조는 평생 도안 없이 그림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르네상스 작가들이 '회화는 내적 디자인을 표현하는 예술 장르'라고 생각했던 당시의 '미학이론'에 반하는 것이었다. 이는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완벽한 그 무엇'을 미리 상정하는 기존의 가치에 대한 철저한 반발이었다. 이를 그의 작품의 특징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의 작품활동이 바로 형이상학적 모든 가치에 대한 거부를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테네브리즘'이라는 방식은 빛과 어둠의 극명한 차이를 바탕으로 등장인물을 강조하는 극적인 표현 방식을 말한다. 이는 특히 이중적 특징을 보인 카라바조 그림의 상징적인 특징이다. 롬바르디아의 '자연주의 미술 양식'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그의 그림 배경이 암흑으로 그려지는 가장 큰 이유이다. 위의 그림에서도 등장인물의 외부 색상은 어두운 색으로 채색되어 유디트의 단호하면서도 겁에 질린 표정과 홀로페르네스의 비극적 표정이 부각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방식을 극대화한 카라바조의 뒤는 이후에 렘브란트 같은 대가가 이어받으며 그림의 3차원적 깊이를 부여한다.
카라바조가 스무 살 무렵이 되었을 때 그는 로마로 갔다. 그는 그곳에서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로나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보며 감탄했을 것이다. 그 당시 그림들이 추구하는 바는 한 가지였는데 그것은 종교개혁으로 강력하게 몰아치던 프로테스탄트 교회에 맞서, 가톨릭 신앙을 고취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과거의 화풍을 흉내내는 매너리스트들과는 달리 카라바조는 그만의 고유한 영역을 만들어 나갔다. 그가 만든 고유한 영역은 이후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리베라 같은 대가들에게 전승되면서 17세기 유럽 미술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림의 방식 뿐만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카라바조의 독창성은 두드러졌다. 이 시기의 그림들은 인간의 욕망을 배제하고 신앙심을 고취시키고자하는 가치를 우선적으로 드러내면서, 정작 인간에 대한 진실한 접근은 소외시켰다. 그에 반해 카라바조는 '카드놀이 사기꾼'이나 '점쟁이 집시' 같은 그림처럼 일상의 소재를 채택해 그림을 그림으로서 그만의 독특한 바운더리를 형성한다. '도마뱀에 물린 소년'을 통해 동성애적 암시를 주거나, '병든 바쿠스 신'을 그릴 때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고, 막달라 마리아를 그리면서 거리의 창녀 필리데의 모습을 그려넣는 식으로 '성(聖)'과 '속(俗)'의 절묘한 조화를 추구한다. 소재의 선택은 '성(聖)'스러우면서도, 제재나 주제의 선택은 '속(俗)'스럽게 표현하면서 이 둘을 자연스럽게 융합시킨다.
카라바조의 성공은 그의 광적인 행동 때문에 여러차례 위기에 직면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매장'으로 일약 스타가 되지만, '성처녀의 죽음 혹은 영면'에서 마리아의 그림을 그릴 때 '신성'을 배제하고 '인성'을 강조하고, 물에 빠져 자살한 매춘부의 시신을 보고 마리아를 그려 로마의 종교 지도자를 격노케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수차례 감옥에 들어가고 타인과 분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살인까지 저지르는 등 기이한 행동들을 했다. 하지만, 가끔은 오히려 그러한 기행이 그의 신화를 완성시키는 마지막 한 조각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작품들을 시대별로 나열하면서 그 배경과 숨겨진 의미를 해석하는 저자가 마지막으로 해석을 시도하는 것은 카라바조의 마지막 작품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이다. 여기서 잘린 골리앗의 머리가 카라바조 자신의 머리이기 때문에 많은 해석의 여지가 있는 그림이다. 카라바조를 읽어 나가는 동안 그가 남긴 이야기와 그림을 보다보면 마치 알았던 사람처럼 그가 생생하게 살아남을 느낄 수 있다. 그의 그림을 직접 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