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내가 인생에서 두려운 것이 딱 하나 있는데
그건 언젠가 블랙이 레드를 삼켜버릴 거라는 거야. - 마크 로스코-
로스코가 자살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린 작품이다. 화염이 몰아치는 듯한 주홍빛, 마치 화장터의 불길을 연상케 한다. 일명 '피로 그린 그림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절절한 사연을 담고 있다. 미술사가이자 신학자인 제인 딜렌버거의 일화는 유명하다.
딜렌버거에게는 마크 로스코의 마지막 그림인 RED 작품을 본 것 자체가 비극이었다.
1969년 하나뿐인 아들을 잃고 깊은 슬픔에 잠겨 있던 그녀는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허전함을 채우고자 로스코의 그림을 사기로 한다. 그의 작업실로 찾아갔지만 당시 로스코는 말버러 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은 상태였기 때문에 직접 작품을 살 수 없었다. 갤러리로 직접 찾아간 제인은 로스코의 작품들을 보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아 통곡했다.
그녀가 그곳에서 본 것은 지나치게 선명한 레드 캔버스였다.
"난 공포에 사로잡힌 나머지 꼼짝 못하고 눈물만 흘린 채 자리에만 앉아 있었어요."라고 그녀는 당시를 회상했다.
그녀가 느끼기에 그 그림은 죽음을 말하고 있었다. 제인은 갤러리 주인에게 가서 말했다.
"누군가가 지금 당장 그를 잡아 줘야만 해요! 제발.."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예언같은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여길 뿐이었다. 그 사건이 있은 얼마 후 뉴욕의 신문들은 위대한 20세기 화가의 자살을 일면 톱기사로 다루었다. 로스코는 당시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명이었다. 1970년 2월 25일 로스코는 작업실에서 자살한 채로 발견되었다.
죽음을 깊이 인식하고 몰입하면 새로운 생명 에너지가 솟아오른다고 로스코는 느꼈다. 자살을 계획하고 죽음을 인지하던 화가가 새로운 생명 에너지와 충돌하는 인간적 고뇌와 연민이 가슴 깊이 파고드는 이 그림은 후에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되었다. 그림 또한 자세히 살펴보면 면도칼로 동맥을 그어 자살했던 당시의 모습과도 너무도 닮아있다. '피로 그린 그림'은 섬뜩하고도 로스코의 당시의 깊은 외로움을 공감할 수 있는 현대회화의 수작으로 남아 있다.